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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캘커타에 있는 자선에집 한켠에 위치한 마더 테레사의 무덤.
 인도 캘커타에 있는 자선에집 한켠에 위치한 마더 테레사의 무덤.
ⓒ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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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Love your enemy)."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로 불렸던 마더 테레사, 그의 무덤 위에 꽃잎으로 수놓인 글귀다. 지난 1월 14일, 인도 콜카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의 무덤 앞에 남한과 북한에서 온 13명의 청년들이 나란히 섰다. 북한이탈청년(여명학교 소속)들과 남한의 대학생(한국기독학생회 소속)들로 구성된 인도 평화캠프 참가자들이다.

"종교를 편 가르는데 사용하지 말게 하소서. 이웃을 사랑하도록 어떻게 우리를 부르시는지 그것을 보게 하소서"라는 마더 테레사의 말을 떠올리며, 캠프 일정을 앞두고 그의 무덤 앞에서 화해와 평화를 기렸다. 한동안, 아니 지금도 남한과 북한은 원수다. 하지만 인도라는 제3의 공간에서 이들에게 남북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인도 평화캠프 일정을 앞둔 팀원들.
 인도 평화캠프 일정을 앞둔 팀원들.
ⓒ 안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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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는 마더 테레사의 무덤 앞에선 남북 청년들

캠프의 핵심키워드는 평화였다. 그래서 캠프 이름도 샨티였다. 샨티는 힌디어로 평화를 뜻한다. 하나누리 화해협력팀과 한국갈등전환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진행한 인도평화캠프는 남과 북이 함께하는 여행으로 구성됐다. 

남북이 함께 꾸린 평화캠프팀은 인도의 가장 가난한 곳으로 찾아가 평화를 누리고 연습하고 실천했다. 평화캠프팀이 향한 곳은 인도의 절대빈민 중 약 25%가 거주하고 있다는 비하르 주. 4420만 명의 절대빈민이 살고 있다는 집계가 나오기도 했다. 캐나다 전체 인구보다 1000만 명이나 많은 수치다.

비하르 주는 아동 노동 착취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한해에 비하르 지역에서 약 3만5000~4만 명의 아이들이 실종됐다는 경찰의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들 대다수는 다른 도시로 팔려가 아동 노동에 동원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인도의 학생들의 일일교사가 된 평화캠프 참가자들.
 인도의 학생들의 일일교사가 된 평화캠프 참가자들.
ⓒ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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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어린이들과 주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북한식 태권도

평화캠프팀이 방문한 학교는 문맹인구 비중은 70%에 육박하는 시골마을이다. 불가촉천민과 빈농 출신의 어린이 중 편부모와 고아들이 학생들의 대부분이다. 예체능 교육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도 학교에서 평화캠프팀은 일일 교사로 봉사하며, 평화, 음악, 미술 등을 가르쳤다.

인도 어린이들과 함께 티셔츠에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는 북한이탈청년.
 인도 어린이들과 함께 티셔츠에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는 북한이탈청년.
ⓒ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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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가르쳤다기보다 함께 놀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비누방울을 불고, 줄넘기를 했다. 한국에선 대수롭지 않은 놀이지만 빈민가 학교 어린이들에겐 더없이 흥미로운 장난감이었다. 또 학생들과 함께 준비해간 티셔츠 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려보도록 했다.

북한이탈청년인 김은성(가명) 군은 어린이들에게 태권도를 선보이며 학생들과 지역주민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군은 학생들에게 북한식 태권도의 기본 품세를 가르쳤고, 학생들은 품세보다 김은성 군의 입에서 나오는 기합소리를 더 재미있어 하며 따라했다.

북한이탈청년이 인도 어린이들에게 기본 품새를 가르치는 모습.
 북한이탈청년이 인도 어린이들에게 기본 품새를 가르치는 모습.
ⓒ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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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람들은 힘들고 가난에 찌들었을 줄 알았는데

캠프 이후, 남북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더욱 두드러졌다. "캠프 후 북한 혹은 남한(이웃)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거의 모든 참가자가 변화가 있었다고 답했다.

"북한을 약자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저의 모습을 발견하고, 평등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캠프에 참여했던 북한이탈청년들을 가까이서 만나면서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북한사람들은 힘들고 가난에 찌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북한 이웃에게도 기회가 있다면 남한 사람들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을 많이 가지게 됐다."


또 다른 참가자들은 "북한과 북한이웃에 대해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함께 하면서 가까워지고, 대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  

비하르 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도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평화캠프 팀원들.
 비하르 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도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평화캠프 팀원들.
ⓒ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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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남한 친구 생겨서 좋아요"

북한이탈 청년들도 캠프 이후에 얻은 인식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한 북한이탈청년은 남한 대학생들과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남한 청년들과 거리감 없이 지내면서 서로가 힘이 되고 배워갈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

한국에서는 늘 도움을 받는 대상이었던 자신들이 인도에서는 자신이 무언가를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북한이탈청년들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한 북한이탈청년 참가자는 자신의 사명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의 사명을 찾았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내가 북한을 위한 일만이 아닌 넓게 생각해서 지구촌의 가난을 위해 공부해야 되겠다는 중요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었다."

또 다른 청년은 한국 와서도 북한에서 온 친구들과 주로 어울렸고 한국 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 캠프 이후에 언제나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남한) 친구가 있어서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홍익대에 진학이 결정된 북한이탈청년 안지민(가명) 양은 같이 캠프에 참여했던 홍익대학교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신입생에게는 까다로울 수 있는 수강신청을 무사히 마무리하기도 했다.

인도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내보고 있는 평화캠프 참가자들.
 인도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내보고 있는 평화캠프 참가자들.
ⓒ 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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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캠프, 그 이후... 더욱 두터워지는 연결의 끈

북한이탈청년들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비율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3분의 1이 넘는 28.4%(2008년 기준)의 북한이탈청년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일반 대학생들의 학업 포기율이 4.5%인 데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그래서 전문가 그룹에서는 "대학 생활의 부적응은 곧 한국 사회의 부적응을 의미한다"며 "남한 대학생과 일대일 멘토 시스템을 마련해 이들이 무리 없이 대학 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평화캠프에서는 북한이탈청년들과 남한 대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사회 적응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작점을 마련해준 셈이다.

평화캠프 이후에도 연결의 끈은 계속 연결되며 더 두터워지고 있다. 캠프에 참여했던 북한이탈청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에서 밤기차를 마다않고 모여들어 축하하기도 했고, 최근 개봉한 <신이 보낸 사람>을 함께 관람하며 북한 상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4년 만에 어렵게 재회한 북한이탈청년의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하자 캠프 참여자들의 위로가 이어졌다.

까티하르 시골길에서 울려퍼진 "우린 하나의 겨레"

평화캠프의 일정을 마치고 비하르를 떠나던 날, 까티하르 시골길을 달리는 소형버스 안에서 함께 불렀던 <다시 만납시다>라는 노래는 인도를 떠난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 헤어져서 얼마나,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 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 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태그:#평화캠프, #인도 , #북한이탈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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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 기상청 갈등관리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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