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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이석태 변호사와 함께 법정을 나오고 있다.
이날 강기훈 씨의 곁에서 23년 동안 변론을 맡아온 이석태 변호사(오른쪽)는 그 누구보다 더 기뻐했다.
▲ 23년 동안 강기훈 씨 변론 맡은 이석태 변호사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이석태 변호사와 함께 법정을 나오고 있다. 이날 강기훈 씨의 곁에서 23년 동안 변론을 맡아온 이석태 변호사(오른쪽)는 그 누구보다 더 기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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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달 16일 열린 '유서대필 강기훈 사건'의 재심 결심공판에서 이석태 변호사의 최후 변론요지서 전문이다. 이 변호사는 이 글을 읽다가 중간에 목이 메어 다 끝마치지 못했다.... (편집자 주)

지금부터 23년 여 전인 1991. 5. 8.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 후 건물 아래로 몸을 던져 자살한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노태우 정권과 민자당을 비난하는 내용 등이 쓰여 있는 김씨 명의의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김씨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 전민련 동료 간부인 피고인이 김씨의 자살을 부추길 목적으로 대신 써 준 것이며, 그렇게 해서 피고인이 김씨의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것이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입니다. 

검찰의 공소는 재심 전의 제1심 판결에서 유죄로 인정되었고, 이는 제2심 판결과 1992. 7. 22.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서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보통의 예였더라면 이로써 피고인 사건은 종결되고 곧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랬습니까. 법원이 판결로 그렇다고 확정했으니, 피고인이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 준 것으로 사람들 또한 받아들였습니까.

아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이 끝났는데도 이 사건의 공소 유지를 둘러 싼 의혹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눈덩이처럼 점점 커졌습니다. 국회의 국정조사가 이루어지고 신문과 방송 등에서 끊임없이 이 사건을 재조명했습니다. 김기설씨의 부친도 피고인이 억울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도처에서 이 사건은 다시 심리되어야 한다고 말해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사건이 진실과 허위의 싸움이며, 정의와 불의,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던 운동권 동료의 자살을 만류하기는커녕 유서를 대신 써 주어 자살하도록 유도하였다는 이 사건의 가설은 그 비인간적인 발상에서 참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건은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도덕과 양심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가를 정면에서 묻고 도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둘러 싼 날조와 허구의 거짓 그물을 걷어내고 마침내 진실을 드러내어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은 피고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 보통사람 모두의 도덕률과 양심임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법원이 드레퓌스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했을 때 에밀 졸라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재판입니까. 한 인간이 그러한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을 수가 있다면 이것은 불의의 극치입니다. 나는 양심 있는 사람들에게 그 판결을 받고 분노에 떨지 말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궁극적 승리에 대해 조금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력한 신념으로 거듭 말합니다. 진실이 행군하고 있고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피고인 사건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진실의 행군이 가다가 주저앉지는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밀 졸라의 예언대로 우리 또한 진실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행군은 고난을 뚫고 전진하여 이 사건 재심에 이르렀고, 거기서 나아가 스스로 허위의 탈을 결정적으로 벗어야 할 책무가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까지 닿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그 과학 수사의 명징함에 바탕 하여 과거의 오점을 씻고 새롭게 진실의 외침에 공명하자, 이제까지 지체되었던 진실의 본 모습이 이윽고 우리 모두에게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여기서 굳이 반복할 필요 없이 이 사건 종전 유죄 판결이 근거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직접 증거는 김기설씨의 분신 직후 검찰의 요구에 따라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이던 김형영씨가 한 필적 감정 결과입니다. 그는 김기설씨가 남긴 유서와 검찰이 압수한 피고인의 진술서 등의 필적이 동일하다고 판정하였습니다. 반면 유서와 김기설씨 이력서 등 김씨의 다른 필적은 서로 상이한 필적이라고 감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김형영씨의 필적 감정 결과와 모순되는 많은 필적 자료들이 현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종전 재판에서 법원은 이를 모두 배척하였습니다. 법원은 오직 김형영씨의 필적 감정 결과만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피고인이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하였다는 오도된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더불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쌓아 온 과학적 신뢰와 명예 또한 바닥으로 추락하였습니다.   

김형영씨는 이 사건 감정 후 다른 사건의 감정에서 뇌물을 받고 구속되었습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이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그 뒤 여기 저기 자신이 한 감정의 진실성을 추궁 받는 자리에서 궁색한 변명과 허위 진술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김형영씨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떠나자, 자칫하면 영원한 추문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 그 치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스스로 바로 잡을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즉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필적 감정을 의뢰한 것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감정을 마치고 김기설씨가 분신 현장에 남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이 과거 수감 중에 쓴 엽서 등의 필적이 서로 다르다고 회신했습니다. 또 김씨의 오랜 친구가 김씨의 필적으로 제출한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의 필적이 유서의 필적과 동일하다고 감정하였습니다. 이들 감정으로 피고인이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는 검찰의 공소는 그 기반이 허물어졌습니다.

이어서 종전의 연구소에서 2010. 8. 연구원으로 승격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사건 재심 재판 중인 지난 해 12월 검찰의 신청에 따라 한 감정에서 검찰이 압수한 김기설씨의 이력서 등의 필적이 앞서의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의 필적과 동일하다는 취지로 감정하였습니다. 검찰은 이 재심 재판에서 유서와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의 필적은 검찰이 보기에도 동일한 사람이 쓴 것이라고 자인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이번 감정 결과는 논리적으로 검찰이 그동안 국민들에게 내 보인 김기설씨의 이력서 등의 필적과 김씨가 분신 현장에 남긴 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검찰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유서는 김기설씨 본인이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김씨의 안타까운 죽음 무렵부터 이미 공유해 왔던 진실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고 되풀이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기설씨가 남긴 유서는 김기설씨 본인이 쓴 것입니다.'

그 유서는 피고인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 의하여서도 대필되지 않았습니다. 종전 재판에서 피고인의 결백을 위하여 제출된 필적 자료들은 예외 없이 본래의 자료들 그대로이며, 그것이 진실하다고 한 증인들의 진술 또한 모두 사실대로 증언한 것입니다. 피고인과 전민련 동료들을 비롯한 그 누구도 이 사건에서 사실을 꾸미거나 진실을 감춘 바 없습니다. 그들은 정직하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 보였다가 불의한 정권에 의해 일시적으로 패배한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이름을 빈 잘못된 감정에 의해 오명을 쓴 피고인이 바로 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지금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신의,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감정 결과에 의하여 누명을 벗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사실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우리의 최후의 의지처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사회의, 우리들 자신의 건전한 상식과 양심임을 웅변해 줍니다.   

우리는 이 사건 기소로 인해 한창 때의 피고인이 강제로 접게 된 꿈과 희망, 그렇게 해서 상실한 젊음과 그가 감내해 온 고통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통한과 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드레퓌스가 작성하여 적국에 넘겼다고 한 문제의 군사기밀명세서는 드레퓌스의 필적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드레퓌스는 반역죄로 체포되어 기소된 지 12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되었습니다. 드레퓌스가 그의 부대로 복귀하던 날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질랭 준장이 도열한 병사들 앞을 지나와 그의 칼을 빼들었다. '공화국의 대통령의 이름으로 본관은 그대 드레퓌스에게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한다.' 장군은 이렇게 선언하고 칼로 드레퓌스의 어깨를 세 번 두드렸다. 식의 종료를 알리는 트럼펫이 세 번 울렸다. 만장의 프랑스인들은 외쳤다. '프랑스 만세! 진실 만세!' 드디어 드레퓌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직 이 법정에서 우리는 피고인에 대한 무죄를 선고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저 쉼 없이 불의에 대한 저항의 행군을 계속해 온 이들의 염원이 모여 다시 시작한 이 재판을 마무리하는 순간, 우리 모두를 두껍게 에워쌌던 근거 없는 의심의 장막과 권력의 불순한 검은 그림자가 마침내 한 점의 그늘도 남기지 않고 거두어지고 물러 난 이 순간, 적어도 우리는 그간의 오랜 고통 속에서 초인적으로 인내하며 진실을 지켜 온 피고인에 대한 뜨거운 경의와 공감, 그리고 참된 연대와 지지의 표시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훈장을 피고인에게 수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 같이 피고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우리도 이렇게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 만세!"

2014. 1. 16.
피고인의 변호인


태그:#강기훈, #이석태, #유서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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