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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은 손해배상 소송에 가로막혀 있다. 노조의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사측이 청구하는 손배 규모가 1천억 원을 넘어섰다. 파업 손배소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일상이 돼버렸다.

법원에서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에게 수십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조합만을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묻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조합원 개인에게까지 손배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도 손배소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사측이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법원의 판결 결과는 어떻게 나오고 있을까. 전국의 대표적인 사업장에서 벌어진 파업 사건을 중심으로 파헤쳐본다. 또한 파업과 관련된 법률과 판례 분석을 통해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배경과 수십 억대 손배소가 가능한 원인을 찾아본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이라는 기획을 통해 노동조합과 사측, 법률사무소 등을 통해 입수한 통계자료, 판결, 소송서류, 관련논문 등을 분석하여 파업 손배소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이 2013년 11월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 정부와 사측의 손해배상·가압류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쌍용차 해고자 "손배가압류 즉각 철회하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이 2013년 11월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 정부와 사측의 손해배상·가압류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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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는 이른 새벽 공장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사측이 노동조합과 간부들을 상대로 6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단행하자 분노하고 있었다. 손배소를 "노동조합을 말살할 악랄한 정책"으로 규정한 그는 결국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항거한다.

이후 노동단체는 파업 손배소를 신종노동탄압으로 규정하고, 철폐투쟁에 나선다. 그 무렵 노사정위원회와 정부도 손배소와 가압류 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말 뿐이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쯤인 2012년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가 "손해배상 철회하라"고 절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측은 2010년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을 단행한 최씨를 비롯한 노조 측에게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을 청구했던 것이다.  

2014년 현재 파업 손배소는 더 이상 '신종' 노동탄압이 아니다. 노사관계에서는 일상이 돼버렸다.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억대 손배소는 노조에겐 해고나 감옥보다 공포스런 존재가 돼버렸고, 사측에게는 파업과 노조활동을 막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① 파업 손해배상 청구, 전체 1천억 넘었다


1128억8802만4953원.

연봉 4천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한 푼도 쓰지 않고 2822년을 모아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이 금액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사측이 법원에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 걸려있는 총액(2014년 1월 현재 민주노총 잠정집계)이기도 하다. 1천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은 대한민국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표 1> 참고).

또한 노동조합이나 노조원 개인 명의 재산을 대상으로 사측이 가압류한 금액도 168억 원대에 달한다. 가압류된 부동산, 통장계좌, 채권 등은 사측이 풀어주지 않는 한 재산권을 행사할 수가 없으며 패소할 경우 곧바로 강제집행 대상이 된다. 

손배청구액을 민주노총 산하 조직별로 보면 쌍용차, 한진중공업, 현대차 등이 속해 있는 금속노조가 705억여 원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사업장은 파업이나 점거농성이 있으면 사측이 형사고소와 징계를 추진하는 것은 물론이고, 반드시 민사로 손배소송을 제기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 다음이 철도노조가 속해 있는 공공연맹으로 총액이 200억 원을 넘었다. 언론노조의 195억 원은 MBC 사측이 2012년 파업을 단행한 노조원을 상대로 청구한 것이다.

이 통계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소송을 토대로 집계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장이나 민주노총이 파악하지 못한 조합원 개인을 상대로 한 소송까지 감안한다면 손배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② 역대 파업 손해배상 청구 순위는?


그렇다면 역대 파업 손배소 최고 청구액은 얼마일까. 2000년 이후 사건 중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었거나 현재까지 진행 중인 사건을 모두 파악하여, 높은 금액 기준으로 10위까지 선정했다(<표 2> 참고).

단일 사건으로 역대 파업 손배소 청구액 1위를 기록한 업체는 반도체 전문회사인 주식회사 케이이씨(KEC)였다. KEC는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KEC노조)와 조합원 88명을 상대로 무려 301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2010년 10월 노조가 14일간 공장점거 파업 등을 벌여서 손실을 보았다는 것이다. 2011년 시작된 재판은 아직도 1심이 진행 중이다. 사측은 소송 도중 손해액 입증 곤란 등을 이유로 청구금액을 156억 원으로 줄였다.

KEC, 노조 상대 301억 청구로 역대 1위

역대 2번째 손배사건의 원고는 195억 원을 청구한 MBC가 차지했다. 2012년 MBC노조가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를 내걸고 약 6개월간 파업을 벌인 데 따른 소송이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사측이 전부 패소,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 밖에 100억 원대의 손배청구 사건으로는 ▲ 2013년 민영화 반대 철도노조 파업(162억 원) ▲ 2010년 정리해고 반대 한진중공업 노조 파업(158억 원) ▲2009년 정리해고 반대 쌍용차 평택공장 파업 (100억 원(회사 청구액)) 등이 있다.

코레일은 청구액 상위 10위권 안에서 4건이나 차지했다. 4건의 합계액은 무려 374억 원이나 됐다. 코레일은 2003년, 2006년, 2009년, 2013년 등 철도파업이 있을 때마다 노조를 상대로 거액의 손배소송을 걸어왔다. 이 중 2009년, 2013년 사건은 1심이 진행 중이다.

7위와 10위를 차지한 현대차는 2건 모두 단일 파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0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울산공장 점거파업을 감행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를 상대로 한 소송이다. 현대차는 2010년 파업과 관련해서만 총 200억 원에 가까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2013년 2월 개최한 "183억 손배소송 철회, 강제휴업 중단, 노조탄압 분쇄,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정신계승 결의대회" 장면.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2013년 2월 개최한 "183억 손배소송 철회, 강제휴업 중단, 노조탄압 분쇄,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정신계승 결의대회" 장면.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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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쌍용차, 현대차, 한진중 등 100억대 소송만 6건

역대 파업 손배소 중에서 청구액이 100억 원을 넘는 소송만 6건이었다. 거액 손배소는 대부분 2010년 이후 최근 사건이라는 점, 노동조합 뿐 아니라 노조원 개인에 대한 청구도 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청구액 기준 상위 10건 중 사측의 청구금액이 전부 인정된 사례는 2010년 현대차 파업 사건(90억 원 인정)이 유일하다. 그런데도 천문학적인 손배소가 남발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측으로서는 거액을 청구할수록 승소와 관계없이 노조를 압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100억 원 안팎의 청구가 느는 것은 노조활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2년 파업으로 195억 원을 청구했던 MBC는 지난 1월 1심에서 전부 패소해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MBC는 상급심 판결을 통해 노조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입장이다.

2002년 전력산업 민영화방침에 반발해 발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사측은 31억 원의 소송을 냈으나 전부 패소했다. 또한 서울지하철노조의 1999년 총파업 때도 서울지하철공사(현 서울메트로)는 57억 원을 청구했다. 법원이 최종 인정한 손해액은 2억여 원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수년간 진행되는 소송은 결과를 떠나서 노조를 압박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손배소가 노조 활동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301억 원 손배소를 당한 KEC 노조는 지난 2012년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퇴사하거나 노조에서 탈퇴하면 손해배상 대상에서 빼주겠다'고 종용했고, 협박을 못이겨 회사를 떠난 노동자가 부지기수"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노조파괴를 위해 손해배상을 활용한다는 계획이 사측 일지에도 나와 있다"고 의심했다.

실제로 KEC 사측은 소장에서 "공장점거자 약 212명 중에서 회사에서 자발적으로 퇴사하거나 사측과 합의한 사람들은 제외했다"고 밝혔다. 노조 측 소송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도 "이미 퇴사했거나 노조에서 탈퇴한 이들을 제외한 조합원 88명만 피고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③ 역대 파업 중 법원 손해배상액 순위는?


역대 파업 손배소 사건 중에서 법원 배상 최고액은 얼마일까. 법원이 판결한 사건 중에서 손해배상액 10억 원이 넘는 사건을 금액순으로 정리해봤다(<표 3> 참고).

역대 배상액 1위는 90억 원이었다.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울산공장 점거 파업 사건의 판결에서 나왔다. 6위를 차지한 20억 원도 같은 기간 파업으로 인한 배상액이다. 현대차는 2010년 파업과 관련 현재까지 7건의 소송을 제기, 5건에서 115억 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단일 파업사건 배상액이 100억 원을 넘어선 것이다(현대차와 관련된 내용은 별도의 기사로 분석할 예정이다). 

2위는 2006년 철도노조 파업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확정된 손해배상액은 69억 원이다. 철도노조는 이 사건으로 이자 포함 1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사측에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한진중공업(59억 원), 쌍용차(33억 원), 유성기업(12억 원) 등이 노조를 상대로 거액의 배상판결을 받았다. 

2013년 이후 10억 원 이상 손배판결 6건

<표 3>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배상액 10억 원 이상 8건 중 철도파업 2건을 제외한 6건이 모두 2013년 이후 판결이 나왔다는 점이다. 최근 사측의 청구액이 높아진 것과 비례하여 법원 판결이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상당히 넓게 인정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국가가 파업 참가 노조원들을 상대로 직접 손배청구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국가와 경찰공무원들은 2009년 쌍용차노조의 정리해고 반대 파업시 경찰들의 부상과 장비파손 등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노조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14억 원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사측의 손해배상액 33억 원을 포함, 47억여 원의 배상판결에 불복,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역설적이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받아냈다. 복직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복직소송에서 승소하고도, 복직을 위한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수십억 원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이 40여 명이나 된다. 당사자 중 한 명인 이창근(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씨는 법원 판결 당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지금은 해고무효 판결을 받고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리해고 자체가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파업 손배소송에서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배소송은 복직판결의 기쁨을 앗아갈만큼 강력했다.


태그:#파업손배, #가압류, #손배소, #노동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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