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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화장실(델리)
 인도의 화장실(델리)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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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난 인도에 다시 가야할 것 같다.
떠나온 곳을 다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건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너무 좋아 마음을 거기 두고 왔거나,
우연히 만난 그곳 사람과 작은 인연을 맺었거나,
돌아와 확대한 사진에선 너무나 또렷한 걸 그곳에선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거나,
낯설었던 풍경이 시간이 쌓일수록 선명해져 문득 그리워진다거나
혹은 다시 가도 새로울 만큼 훌쩍 낯설어졌다거나.

나는 그렇다.
사랑하고 이별했는데, 돌이켜 보니 충분히 안아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

인도의 화장실에 가면 흔히 발견하는 것 하나.
샤워기나 물통,  아니라면 키 낮은 수도꼭지와 낡은 컵.
오른손은 밥 먹는 손, 왼손은 뒷물하는 손.
그들의 견고하고 오랜 습성은 먼 곳에서 온 여행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자신의 손이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인디언들은 다른 도구 없이 밥을 먹는다. 찰기 없고 날렵한 밥알에 커리나 달(콩 스튜)을 부어 조물조물 뭉쳐 입으로 가져가는 일은 온전히 오른손의 임무.

볼일을 본 후 엉덩이에 물을 흘려 구석구석 닦아내는 일은 겸손한 왼손의 임무.
하여 부정(不淨)한 왼손으로 그들은 어린아이의 머리를 결코 쓰다듬지 않는다.

그런데 난 그 두 가지를 모두 외면했다는 걸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맨손으로 밥을 먹어보지도, 휴지없이 맨손으로 엉덩이를 씻어보지도 못했다.
인디언들이 북적대는 음식점이라곤 구경삼아 기웃거린 기차역의 구내식당이 전부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화장실에서는, 내 몸에 밴 내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왜 난 한 달이나 그곳에 있으면서 여행자로만 머물렀던 걸까?
어쩌자고 난 그런 나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로, 두고 가지 못한 일상 속에 빠져 있었던 걸까?

그곳에 있으면서 그곳과 충분히 사랑에 빠지지 않았던 거다.
더럽다고 익숙하지 못하다고 뿌리쳤던 거다.
도구 대신 내 손, 휴지 대신 한 컵의 물이 더 위생적이고 환경적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더 문명인가?

어쩌면 나는, 저 사진을 볼 때마다 한동안 시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화장을 지우고 다가 온 맨얼굴의 연인을 힘껏 안아주지 못한 내 어리석음에.

그러니 나는 다시 인도에 가야 한다.
두 팔 벌리고 후회 없는 사랑을 하기 위해, 문명 위의 문명을 만나기 위해.

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인도, #인도여행, #인도의 화장실, #인도에서 오른손과 왼손의 용도, #인도 화장실의 수도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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