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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이 역사적인 재판인 것을 고려해 시작전 10분가량 언론에 공개되었다.
▲ 언론에 공개된 '내란음모' 결심공판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이 역사적인 재판인 것을 고려해 시작전 10분가량 언론에 공개되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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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내란음모사건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20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징역 20년은 살인과 같은 흉악 범죄에 적용되는 중형이다. 과연 이석기 의원은 살인자보다 위험한 존재일까? 이 의원은 정말 내란을 모의했을까?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현역의원의 내란예비음모에 대한 '세기의 재판'은 1심 기한인 6개월을 거의 꽉 채워 진행됐다. 6개월여 동안 열린 45차례의 공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재판은 예상 외로 싱거웠다. 국정원과 검찰의 연이은 헛발질로 '세기의 재판'은 '세기의 희극'으로 끝났다.

재판 시작부터 검찰과 국정원의 '개그콘서트'는 대한민국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국정원은 내란예비음모의 사실상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녹취록 원본을 분실(?)했다. 그리고 변호인 측 증인으로 출석한 IT 전문가는 녹취록의 조작 가능성을 법정에서 입증했다. 검찰은 원본과 위본을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게다가 녹취록은 온통 누더기였다. 무려 670곳이 오기됐다. 오기는 결정적이고 의도적이며 악의적이었다. '통일'은 '폭력'으로, '시 단위'는 '실탄'으로, '선전'은 '성전'으로 '전쟁반대투쟁'은 '전쟁에 관한 주제'로, '구체적 준비'는 '전쟁준비'로, '절두산 성지'는 '결전성지'로 위조됐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의 '전쟁반대' 강연을 내란음모로 '조작'했다. 그리고 언론은 누더기 녹취록으로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난도질했다. 결국 검찰은 녹취록을 수정했다.

45차례의 공판... 내란음모는 없었다

공판 과정에서 녹취록을 제공한 내부제보자(혹은 프락치)가 국정원 직원을 150차례나 만나 그때마다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는 명백한 매수행위다. 매수된 제보자의 증언은 당연히 신뢰할 수 없다. 매수된 자가 불법적으로 취득한 녹취록도 증거능력이 미약하다. 제보자는 이른바 RO의 실체도 확인하지 못했다. 이 의원이 'RO의 총책'라는 주장도 자신의 상상에 불과했다. 심지어 RO의 내란음모도 국정원의 발표 이후에 알았다고 증언했다. 국정원은 현장에 있었던 제보자도 몰랐던 내란음모를 누더기 녹취록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45차례의 공판을 통해 검찰과 국정원은 오직 자신의 무능을 입증하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RO는 없었다. 내란음모도 없었다. 내란음모는 오직 그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 이석기의 혐의는 한마디로 '내란음모상상추정죄'였다. 이석기 의원은 최후진술에서 "대한민국 현역 의원이, 선거로 선출되었고 취임 첫해를 맞아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 정권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전복하려 했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이냐며 검찰의 주장은 "토끼에게서 뿔을 찾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12·12및 5·18사건에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1996.12.16)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으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12·12및 5·18사건에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1996.12.16)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으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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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토끼뿔'은 있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3>의 이안 헌트는 '토끼발'을 끝내 못 찾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은 기어이 토끼뿔을 찾아냈다. 그들은 불가능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영화 <겨울왕국> 엘사의 마법보다 더 놀라운 '레이디 가카'의 마법은 토끼뿔도 만들어냈다. 그들은 '혼외자'도 만들 수 있다. '레이디 가카'의 겨울왕국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이 의원이 북한과 연계된(혹은 추종하는) 혁명조직(RO)의 총책으로 조직원들에게 내란을 지시했다면 검찰의 20년 구형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내란을 모의하고 지시한 '반국가단체 수괴'에게 겨우 징역 20년이라니! 그것은 내란을 모독하는 것이다. 검찰은 내란음모와 관련된 판례조차 검토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 의원과 피고인들에게 반국가단체 가입·구성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결국 RO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검찰은 RO가 "반국가단체(북한)과 직접 연루됐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독자적으로 정세를 판단, 정무 수집과 군사행동을 모의할 수 있는 조직이 실재한다는 게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토끼뿔'을 찾았다

북한과 연계되면 위험하고, 연계되지 않으면 더 위험하다? 그럼 대한민국에 위험하지 않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북한과 연계도 없이, 혁명조직도 없이 내란을 모의하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는가? 만일 가능하다면 그것은 예수의 처녀수태보다 더 신비로운 기적이다. 검찰의 주장이 맞다면 이 의원은 21세기의 붉은 예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란음모혐의에 대한 구형은 무죄(혹은 법정 최소형량인 3년) 아니면 사형(혹은 무기징역)일 수밖에 없다. '적당히 위험한' 내란음모가 가능한가? 징역 10년짜리 내란음모와 징역 20년짜리 내란음모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가?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적어도 법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20년이라는 절묘한 구형은 이번 재판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있다면 사형, 적어도 무기징역을 구형해야 했다. 아니라면 법정 최소형(검찰이 무죄를 구형할 수는 없으니까)을 구형했어야 한다. 만일 검찰이 법정 최고형을 구형했다면 아마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 것이다. 반대로 최소형을 구형했다면 청와대의 벼락을 맞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20년이라는 절묘한 숫자를 찾아냈다. 요즘 검사들은 법학보다 정치학에 더 탁월한 듯하다.

내란음모재판의 결과는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진보당의 해산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유신시대로 후퇴시키게 될 것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자유민주의의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립의 잔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사법부의 판단은 자명하다. 검찰이 20년을 구형한 상황에서 재판부는 무죄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만일 유죄라면 구형보다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란음모의 '수괴'로 사형 이하의 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아무쪼록 토끼는 뿔이 없다는 상식을 재판부가 입증해주기 바란다.


태그:#이석기, #내란음모, #통합진보당, #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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