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왕가네 식구들>의 왕봉(장용 분)과 이앙금(김해숙 분).

KBS 2TV <왕가네 식구들>의 왕봉(장용 분)과 이앙금(김해숙 분). ⓒ KBS


KBS 2TV <왕가네 식구들>이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극 초반에 잠시 비쳤던 홈드라마 분위기는 불과 2~3 회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고, 어이없는 캐릭터들이 고개를 들어 활개를 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벌이는 이야기는 볼썽사납게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어느 캐릭터 하나 제대로 된 이가 없다. 일관성, 당위성은 찾을 길이 없으며, 그저 누가 막장 캐릭터의 일인자가 될 것인가 하는 경쟁을 두고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듯하다. <왕가네 식구들>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인물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몇몇 캐릭터들은 답답한 호흡에 숨통을 트이게 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결국엔 그들마저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때리기에 이르렀다.

허구한 날 막돼먹은 막말이 일상 대화가 되어버린 시어머니 안계심(나문희 분)과 며느리 이앙금(김해숙 분), 정신병에 가까운 허영과 사치에 바람기까지 지녀 결국 이혼을 당하고 만 왕수박(오현경 분), 일생 돈 한 번 벌어본 적이 없이 엄마의 치마폭에서 자란 허풍의 대가 허세달(오만석 분), 그는 급기야 '부부 강간'이라는 새로운 막장 요소까지 등에 업은 희대의 막가파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최상남(한주완 분)의 친모는 눈 뜨고 못 봐줄 인물이며, 최상남 역시 이해할 수 없는 효자 노릇으로 시청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친모 때문에 그토록 사랑해서 얻은 아내 왕광박(이윤지 분)과의 부부관계에 금이 가게 되는 설정.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그렇다 해도 이건 참으로 유치하고 납득할 수 없는 캐릭터의 전환이며 스토리 전개다.

그 중에서도 시청자들의 눈살을 가장 찌푸리게 만드는 인물은 단연 왕수박이다. 그녀는 수 십 년을 "나 미스코리아에 나갔던 여자야!"라는 한 마디로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해온 인물이다. 반반한 인물 때문에 건실한 사업가 고민중(조성하 분)과 결혼에 골인했고, 남편의 성공적인 사업수완 때문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호의호식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그들의 가정에 부도라는 시련이 닥쳐오고, 하루아침에 형편이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마는 위기를 겪게 된다. 처가살이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순간부터 고민중은 처가인 왕가네 식구들이 퍼붓는 온갖 비난과 수모를 고스란히 당하게 된다. 무엇보다 고민중을 향한 왕수박의 토악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끔찍하기만 했다.

돈에 눈이 멀어 집문서를 들고 뛰쳐나가 사기꾼에게 갖다 바친 건 왕수박이 저지른 일들 중에서 그나마 납득이 갈만한 일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자신이 조금이나마 가세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던 끝에 생각했던 것이었을 테니까. 그녀가 막장 캐릭터인 이유는 집문서 때문이 아니라 그 집문서를 담보로 다른 남자와의 사랑을 꿈꿨다는 데에 있다. 이로써 왕수박이라는 캐릭터는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패악의 아내이자, 무개념 딸의 자리에 오르고 만다.

그녀의 만행은 드라마가 시작이 된 이래 쭉 이어져왔었다. 어쩌면 왕수박이야말로 일관성을 지닌 캐릭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처음부터 막장 캐릭터였고, 마지막까지 막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으며, 이제 와서 후회의 눈물을 뚝뚝 흘린다고 해도 밉상으로 비쳐질 뿐, 일말의 동정심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마음이 선뜻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지 않은 실망을 하게 된 이는 왕봉(장용 분)이다. 막장 스토리의 중심에 서서 그나마 입바른 소리를 줄곧 해왔던 캐릭터. 제 자식 소중한 만큼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고 있는 듯했던 그가 돌연 옹졸하고 편협한 마음을 지닌 이기적인 아버지가 되어 고민중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왕수박의 막장 행보보다 답답했던 왕봉 캐릭터의 변모다.

왕봉은 고민중을 만나 다시 한번 설득을 하기에 이른다. 낳은 자식들은 어쩔 셈이냐고 하면서, 살다 보면 살아지게 되는 것이 부부라고 타이르기도 하면서, 그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애를 쓴다. 그런데 고민중이 끝까지 죄송하다며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하자, 왕봉의 설득은 원망 어린 비난으로 돌변해버리고 만다. 아내인 이앙금과 같은 노선임을, 부부는 일심동체임을 확인시켜주면서 말이다. 

왕봉은 고민중이 만나고 있는 오순정(김희정 분)을 들먹이며 질타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였고 그래서 미리 계획한 이혼이 아니었냐는 억측을 토해내면서 그를 궁지로 몰아넣고 말았다. 모든 잘못을 자신의 딸이 아닌 남의 자식에게 떠넘기는 못난 억지를 왕봉 역시 부리고 만 것이다.

이앙금이야 애당초 답답한 캐릭터였으니 그렇다고 치자. 역지사지의 의미를 새기며 살아간 듯한 왕봉은 어찌하여 이토록 편협한 캐릭터로 뒤바뀌어져야 했을까?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을 말하려 했던 걸까? 세상의 모든 부모는 제 자식 처지만 안쓰러워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왕가네 식구들> 속의 수많은 막장 캐릭터들이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들보다도 더 형편없어 보였던 장면이었고, 왕봉은 줄곧 막장으로 치달았던 다른 인물들보다 더 씁쓸함을 안겨주는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막장은 아예 말도 안 된다며 무시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왕봉의 돌변은 그렇게 쉽게 치부할 수만은 없는 묘한 구석이 존재한다. 아마도 그건 편협하게 돌아서는 그의 모습이 바로 우리에게도 문득문득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여하튼 왕봉은 막장을 넘어 그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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