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인과 머털도사'... 전광인 선수(왼쪽)의 폭발적인 공격력은 머털도사의 괴력을 연상케 한다.  사진제공 l 한국배구연맹

'전광인과 머털도사'... 전광인 선수(왼쪽)의 폭발적인 공격력은 머털도사의 괴력을 연상케 한다. 사진제공 l 한국배구연맹 ⓒ 한국배구연맹


Kwang-In JEON(등록명 전광인). 출신국가 대한민국.

"전광인은 한국 선수가 맞을까요?" (KBSN Sports 2014.1.12 중계 멘트)
"전광인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공격수다."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

이제는 누구도 그를 국내 선수라고, 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믿기지 않아서다. 그래서 '한국산 용병'이라 부른다. 쭈뼛한 헤어 스타일에 똘망똘망한 얼굴 표정, 경기 중에 솟구치는 괴력을 보고 있으면 마치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만화의 주인공 '머털도사'를 연상케 한다. 전광인(한국전력·24세·194cm) 선수의 이야기다.

현재 성균관대 4학년에 재학 중(2월 졸업예정)인 그는 올 시즌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갓 프로배구 무대에 데뷔한 새내기다. 이런 선수가 2013~2014 NH농협 V리그에서 지금까지 달성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30일 현재 공격성공률 부문에서 외국인 선수 포함 전체 2위(56.2%), 득점 6위(408득점·경기당 20.4점), 후위공격 1위, 오픈공격 2위, 서브 5위에 올라 있다. 이들 부문에서 국내 선수 중에는 단연 1위다. 또 디그 7위를 기록하며 수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공격성공률 수치는 프로배구 사상 국내 선수 1위의 기록이다. 지금까지 국내 선수 최고 기록은 김학민의 55.6%(2010~2011시즌)였다.

또 삼성화재를 우승으로 이끌며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군림했던 가빈 슈미트의 2009~2010시즌(55.5%), 2010~2011시즌(55.4%) 기록보다도 높다. 이 부문 최고 기록은 레오(삼성화재)가 작년 시즌에 세운 59.7%다. 2위는 가빈(전 삼성화재)이 2011~2012시즌에 기록한 59.3%다. 이쯤 되면 '외국인 선수급'이 아니라, 그냥 외국인 선수다. 어지간한 외국인 선수보다 훨씬 낫다.

프로배구 출범 이후 신인 선수가 데뷔 첫해부터 공격과 수비 전 부문에서 이런 엄청난 기록을 보인 적이 없다. 남자배구 간판 스타인 박철우, 김요한, 김학민 등도 V리그 데뷔 첫해는 경기당 평균득점이 10점 미만이었다. 해외리그에서 활약하다 V리그로 돌아왔던 문성민도 데뷔 첫해(2010~2011시즌)에 경기당 17.3점·공격성공률 55.0%를 기록했다. 전광인이 지금 상태로 활약을 계속 한다면, 그의 기록들은 남자 프로배구 역사에 신인으로서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전천후 공격수다. 높은 점프력과 체공력, 빠른 스윙 스피드, 강력한 중앙후위 공격(파이프 공격), 블로킹을 이용하는 테크닉, 강서브, 리시브·디그 등 수비능력까지 뛰어나다.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공격력에 수비 능력까지 겸비한 레프트 선수는 흔한 게 아니다. 그만큼 배구 선수로서 가치가 높고 희귀한 존재로 평가받는다.

국제무대에서도 검증된 '국가대표 에이스'

스포츠 선수는 국내에서 아무리 활약이 뛰어나도 국제대회에서 시원치 않으면 '국내용'로 낙인찍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광인은 정반대다. 프로에 데뷔하기도 전에 이미 국제대회에서 실력이 검증된 선수다.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광인은 시니어(성인) 국가대표 데뷔 첫 경기부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11년 5월 28일 월드리그 국제배구대회. 한국은 27년 만에 처음으로 강호 쿠바(당시 세계랭킹 4위)를 격파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쿠바에 세트 스코어 3-0으로 압승을 거둔 것도 한국 배구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날 전광인은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20득점을 쏟아부으며 팀 승리의 선봉장이 됐다.

당시 전광인은 21살의 대학 2학년생이었다.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이후 첫 경기였다. 그해 월드리그에서 전광인은 이탈리아, 쿠바, 프랑스 등 세계적인 강팀의 쟁쟁한 선수들과 맞대결을 펼쳤음에도 득점랭킹 전체 1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남자배구 차세대 간판 스타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에도 전광인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자리를 굳혔다. 전광인은 작년 7월 열린 2013 월드리그 예선라운드에서 득점랭킹 세계 7위와 공격성공률 세계 2위에 오르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9월에는 한국이 홈팀 일본을 3-0으로 완파하며 8년 만에 2014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따냈고, 10월 남자배구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10년 만에 결승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기존 주공격수 문성민 등이 부상으로 빠진 악조건 속에서 전광인의 활약은 단연 일등공신이었다.

비소토-전광인-서재덕 3각 편대 괴력... 현대캐피탈 사상 첫 3-0 완파

 비소토-전광인-서재덕...공포의 3각 편대 완성.  사진제공 l 한국배구연맹

비소토-전광인-서재덕...공포의 3각 편대 완성. 사진제공 l 한국배구연맹 ⓒ 한국배구연맹


전광인의 괴력이 극명하게 드러난 건 작년 12월 8일 현대캐피탈전이었다. 이날 한국전력은 용병도 없이 국내 선수만으로 세계적인 용병 아가메즈가 버티고 있는 현대캐피탈을 3-2로 격파해 파란을 일으켰다. 전광인은 팀내 가장 많은 28득점을 올렸다. 그 많은 공을 때리고도 공격성공률이 62.8%에 달했다.

지난 12일에도 올 시즌 최다인 36득점을 몰아치며 또다시 현대캐피탈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갔다. 그리고 세계적인 외국인 선수 비소토가 가세한 이후 다시 만난 29일. 공격 부담이 한결 가벼워진 전광인은 공격성공률 88.2%(16득점)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현대캐피탈을 3-0으로 완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광인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단점으로 지적됐던 체력 문제와 서브 범실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안정화돼가고 있다. 멘탈도 강하다. 공격이 집중돼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더 많이 때리고 싶다. 오히려 공을 많이 안 올려주면 서운하다"고 할 정도로 당돌하다.   

한국전력이 어떤 팀인가. 해마다 최하위와 연패를 밥 먹듯이 하는 '만년 꼴찌' 팀이었다. 작년 시즌에는 전체 30경기 중 고작 2승(28패)밖에 거두지 못 했다. 그것도 모자라 25연패라는 프로배구 사상 최다 연패 기록을 2번째로 작성했다(1번째는 2008~2009시즌). 1945년 남선전기 배구부로 출발한 한국전력은 창단 역사가 가장 오래된 팀이지만, 불명예스런 기록이 훨씬 많이 쌓여 있다.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투자에 소극적이다 보니, 무늬만 프로지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팀이라는 혹평이 따라다니곤 했다.

70년 동안 '만년 꼴찌', 과감한 투자로 환골탈태

다행히 올해부터는 한국전력 구단의 배구팀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선수들 연봉 협상과 숙소 아파트 추가 등이 신속하게 진행됐다. 외국인 선수의 태도나 기량이 성에 안 차자 2번이나 과감한 교체를 단행했다. 공기업의 시스템상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비소토(32·212cm·현 브라질 국가대표)의 영입은 많은 배구 관계자와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비소토는 프로배구 사상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외국인 선수다. 세계 배구계에서 그랜드슬램에 가까운 업적을 달성한 선수다.

2012 런던올림픽 은메달, 세계선수권 우승(2010), 월드리그 우승 3회(2003·2009·2010), 유렵 챔피언스리그 우승(2009~2010). 비록 지금은 나이가 많고 최전성기에서 하락세에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하락세인 선수도 아니다. 아직 한창 뛸 수 있는 기량을 갖추고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인 러시아 리그 등에서 그를 원하는 팀도 많다.

그만큼 한국전력이 배구단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수십 년째 계속되는 치욕을 더 이상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구단의 방침과 전광인이라는 팀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가 입단함으로써 기대감이 급상승한 데 따른 것이다. 그 결과 한국전력은 올 시즌 180도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아직 4라운드 초반이지만 작년 시즌 성적을 2배 이상 초과달성했다. 패한 경기들도 대부분 3-2 풀세트 패이거나 접전을 펼쳤다.

'아름다운 꼴찌' 한국전력, TV 시청률은 '우승후보'급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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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국


가장 놀라운 건, 한국전력 팀의 치솟는 인기다. TV 시청률에서 연일 대박을 치고 있다. 올 시즌 1%를 넘긴 게 벌써 4번이나 된다. 1위 삼성(9번), 2위 현대(6번)에 이어 가장 많은 횟수다. 1월 12일 한국전력-현대캐피탈 경기의 시청률은 1.26%를 기록했다. 리그 최고 빅매치인 삼성-현대전 시청률(1.31%)과 거의 대등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리그 최하위 팀에 대한 팬들의 열풍은 프로배구 전체의 인기 상승으로 직결되고 있다. 특히 2014년 새해 들어 프로배구의 시청률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자 프로배구의 경우 대부분의 경기가 케이블TV 대박 시청률인 1%대를 넘나들고 있다. 최근 2주간 평균 시청률은 '꿈의 1%'마저 돌파했다. 총 8경기에서 평균 1.02%를 기록했다. 더 고무적인 건 상위권 팀과 최하위권 팀을 가리지 않고 고공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은 혜성처럼 등장한 초대형 신인 전광인 때문이다. 여기에 비소토-전광인-서재덕 3각 편대의 위력은 우승후보인 현대캐피탈을 프로 출범 이후 처음으로 3-0으로 완파하면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배구가 아니고 아트였다", "저런 배구는 처음 본다. 신기하다"…. 경기를 본 많은 사람들은 비소토의 현란한 공격 테크닉에 놀라움과 감탄사를 연발했다. 팬들의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비소토는 경기 내내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제쳐놓고 한국전력 팀이 올 시즌 배구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이유는 '아름다운 투혼' 때문이다. 매 경기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붓다 보니 3-2 풀세트 경기를 무려 8번이나 치렀다. 풀세트 경기가 가장 많은 팀이 한국전력이다. 죽기 살기로 싸우지만 늘 막판에 한 끗 차이로 패했다.

언더독(Underdog). 투견(鬪犬)에서 밑에 깔린 개를 말한다. 즉 경쟁에서 패배자나 약자를 의미한다. 일반 대중들은 일방적으로 몰리는 약자가 강자를 이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갖기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대부분이 사실상 언더독이기 때문이다. 프로배구에서도 최강 삼성화재가 지는 날은 상대팀이 누구든 시청률 1%가 넘어간다. 올 시즌 삼성이 패한 4경기 모두 시청률 1%를 넘겼다.

최강 팀이 자주 져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가볍게 이기고, 쉽게 지는 팀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모든 스포츠에서 최상의 팬서비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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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전광인 비소토 한국전력 시청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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