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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덫에 걸린 여우가 한 마리 있다. 평소 자주 다니던 길목에 모피 사냥꾼이 덫을 놓은 것이다.  

'아뿔싸, 당했구나!'

여우는 필사적으로 덫을 물어뜯는다. 하지만 강철로 된 덫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입 안이 피로 흥건해진다. 덫은 점점 더 다리를 옥죄어온다. 고통으로 숨이 턱턱 막힌다. 그렇다고 바로 숨이 끊어질 것 같지도 않다. 여우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대로 죽어야 하나? 운이 나쁘면 사냥꾼이 돌아올 때까지 숨이 끊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꼼짝없이 고통을 견뎌야 한다.

이대로 있으면 죽을 목숨, 차라리 죽을힘으로 다리를 물어뜯어 끊어버릴까? 그렇게 도망쳐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까지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집에서 어린 것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여우에게는 두 가지 선택뿐이다.

다큐 <증인>의 한 장면
▲ 모피 사냥꾼의 덫에 걸린 동물 다큐 <증인>의 한 장면
ⓒ TribeofHe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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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반대 활동가 에디 라마는 다큐멘터리 <증인>(Witness)에서 두 가지 모피생산 방식을 알려준다. 그 중 하나는 모피동물을 사육하는 것이다. 야생의 동물을 더럽고 비좁은 철장에 가두는 것 자체가 학대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삶 자체가 지옥이지만 고통 없는 죽음마저 사치인 경우가 많다. 모피의 품질을 위해 대부분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덫을 놓는 것이다. 조악한 덫이 몸통, 얼굴, 주둥이 등 숨통이 바로 끊어지지 않는 부위를 압박해서 몇 시간 또는 몇 날 동안 몸부림치다 죽는 경우가 많다. 사체를 수거하러 온 사냥꾼이 가슴을 짓밟거나 몽둥이로 두들기면 그제야 비로소 숨이 끊어진다.

이렇게 모피는 학대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소위 '인도적인 모피'는 가해자를 위로하는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모피동물을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방법은 그들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모피는 '근절'의 대상이다.

문틈에 손가락만 끼어도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다른 존재의 고통에 그토록 무심할 리 없다. 서구에서는 일찍이 모피근절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모피코트가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에디 라마는 모피산업이 묘안을 강구해냈다고 말한다. 모피를 장식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목깃, 모자에 달린 털 장식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런 모피는 한낱 장식물로 인식되어 크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퍼 한 벌을 구입해도 동물의 고통을 소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리에는 동물의 시체로 장식된 옷을 입은 사람들이 흔해졌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 따르면, 장식용 모피가 부착된 제품은 소비자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구매하기 때문에 모피코트보다 회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 모피 장식을 두른 코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 따르면, 장식용 모피가 부착된 제품은 소비자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구매하기 때문에 모피코트보다 회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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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이스라엘에서는 모피의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상정되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스라엘은 세계 최초의 모피금지국이 된다. 다만 외국에서 수입되었거나 종교, 과학실험을 목적으로 생산된 모피는 예외로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트 할리우드에서도 작년 9월부터 모피의류 판매가 금지되었다.

미국 폭스 뉴스에 따르면, 영화배우 파멜라 앤더슨은 지난 22일(현지시각)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이 법안의 지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녀는 모피동물의 고통이 유대교 교리에 반한다고 주장하면서, 온정 있는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촉구했다.

모피반대를 외치는 파멜라 앤더슨
 모피반대를 외치는 파멜라 앤더슨
ⓒ Fox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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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는 유명인들이 솔선수범하여 대중의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그리고 시민의식의 성숙은 제도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연예인들이 방송에 입고 나온 모피가 순식간에 품절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곤 한다. '완판녀'라고 불리는 이들이 모피산업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이리라. 그러나 단 하나의 고통이라도 막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가슴이 무너진다.  

"동물을 해치는 품목이 모피만이 아니지 않냐?"며 모피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마리라도 덜 해치는 게 좋다"는 전제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굳이 이런 질문이 필요할까? 모피반대 캠페인의 취지는 가능한 고통부터 줄여나자는 것이지 여타의 것은 방관하자는 것이 아니다. 작가 안소니 더글러스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을 도울 수 있는 조건을 누구나 갖출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을 해치지 않을 조건은 누구나 갖추고 있다."

패션 아이템일 뿐이라고? 구입 전에 생각해보자. 그것도 한때는 누군가의 '가족'이었다. 고통 속에 죽어가는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가? 거울 앞에서 웃음 짓는 당신을 감싼 모피에 피와 눈물이 맺혀 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태그:#모피, #라쿤야상, #완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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