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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를 가진 A씨는 요즘 아이 이름 지을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시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아이 이름 첫 자를 돌림자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돌림자는 총 4가지였지만 사주에 좋은 돌림자로 따지니 '순'자 돌림 하나만 남았다. A씨는 "권순우, 권순호, 권순원 이 세 가지 중 선택하라는데 하나도 맘에 안 든다"며 "요즘 세상에 돌림자가 뭐라고, 신랑이 시아버지를 설득해 봐도 소용없다. 자식 이름도 맘대로 못하는 신세가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B씨는 돌림자에 맞춰 지은 자신의 촌스러운 이름 때문에 늘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만은 예쁘고 세련된 이름으로 지어주고 싶었다.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걸 감안해 영어로 발음하기 쉬운 이름 몇 개를 골랐다. 하지만 "돌림자는 꼭 써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말에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시아버지는 "족보와 주민등록상의 이름은 동일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남편이라도 나서서 말려주면 좋으련만 "부모님과 문제 만들기 싫다. 이해하자"며 수수방관이다. B씨는 "내가 겪었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아이에게 줘야 하나 싶어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살아가면서 평생 불리는 이름. 이름은 한 사람을 부르는 수단을 넘어 사람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엄마들은 아이의 이름을 놓고 골머리를 앓는다. 남편의 성과 본에 맞는 돌림자를 사용하는 문화 때문에 자녀의 이름을 부모 마음대로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많이 찾는 육아카페에는 아이 이름 돌림자때문에 고민인 엄마들의 글들이 수두룩하다.
 엄마들이 많이 찾는 육아카페에는 아이 이름 돌림자때문에 고민인 엄마들의 글들이 수두룩하다.
ⓒ 네이버 카페 '맘스홀릭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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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이름도 마음대로 못 지어?" 세대 갈등 심각

실제 임산부, 육아맘이 많이 찾는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는 아이 이름을 둘러싼 갈등, 고민에 대한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거의 대부분은 시댁에서 요구하는 돌림자 이름 때문에 고민이라며 해결책을 묻거나 불만을 터트리는 글들이다.

한 엄마는 "정말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조선시대도 아니고 엄마아빠가 행복하게 불러줘야 될 이름인데 왜 돌림자를 써야 하느냐"며 "내 자식 이름을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족보 때문에 마음대로 짓지도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안 쓸 방법 좀 알려 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엄마는 "임신했을 때부터 시부모님은 아이 이름을 지어왔다고 보여주셨다. 끝 이름이 '태'자 돌림인데 정말 맘에 안 들었다"며 "내가 짓겠다고 말씀드리니 아이 이름은 시부모가 짓는 거라며 펄쩍 뛰신다. 친정에선 아무 말도 없으신데 시부모님은 왜 이렇게 이름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왜 손자 이름은 당연히 시부모가 지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돌림자(항렬자)는 같은 혈족의 직계에서 갈라져 나간 계통 사이의 대수 관계인 항렬을 나타내기 위해 이름에 넣는 글자다. 돌림자는 자손 순서 별로 주어지는데, 동일 자손은 공통적으로 특정한자 혹은 부수를 사용한다. 과거 한 조상을 갖는 혈족이 관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쓰였지만, 친족 간의 규정일 뿐 법적으로 정한 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

최근 젊은 세대들은 개성과 본인의 선택을 중시하면서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는 추세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세대부터 해왔던 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들이 절대 다수인 상황으로, 아이 이름 짓기를 놓고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조부모와의 갈등이 부부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한 엄마는 "성은 한, 돌림자 구 넣어서 '한구○'가 된다. 정말 촌스럽다. 손주에 앞서 저랑 제 남편의 아이 아닌가. 돌림자 쓴다는 것도 정말 싫은데다가 우리 두 부부의 권리를 침해받는 것 같아 불쾌하다"며 "돌림자 안 쓰려면 이 집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고 소리치시는데 정말 미쳐버리겠다. '아버님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말하고 출생신고 해버릴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아이 이름 짓기, 현명한 해결책은 없을까?

아내가 출산을 위해 분만실에 있는 동안 남편과 가족들은 대기실에서 분만실 산모현황을 보여주는 모니터와 TV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아내가 출산을 위해 분만실에 있는 동안 남편과 가족들은 대기실에서 분만실 산모현황을 보여주는 모니터와 TV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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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학 전문가들은 아이의 이름은 돌림자가 아닌, 아이 사주에 맞춰 지어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성명학자인 윤정문 대한역학학회 원장은 "돌림자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오행을 가지고 내려오는 순환에 따라 임의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 돌림자를 따르다보면 아이의 사주에 맞는 좋은 이름이 아닐 수 있다"고 밝혔다. 윤 원장은 "사람마다 돌림자가 사주에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기에 당사자의 사주에 맞게 사용해야 하며, 사주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돌림자를 그대로 쓰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름은 과거와 달리 서열을 위해 짓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을 상징하는 중요한 호칭이라는 인식이 많아지면서 성명학자들 사이에서도 돌림자 사용보다는 아이의 사주에 맞는 이름을 권장하는 것이다.

윤 원장은 "아이의 사주와 돌림자가 맞는지를 먼저 본 뒤 발음이나 한문 부수를 고려해 이름을 짓는 게 좋다"며 "아이의 사주에 안 좋다면 돌림자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오행 중 '목(木)'이 들어가는 '기'자 돌림이라면 굳이 이름에 '기'를 안 넣고 한문 부수에만 '목'이 들어가게끔 지을 수도 있다는 것.

최근에는 돌림자는 족보용으로만 사용하고 이름은 호적에 등재하는 경우도 많다. 윤 원장은 "뜻이 안 좋은 한문이나 예쁘기만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쓰기 어려운 이름은 피하는 게 좋다"며 "둘째 아이에게 큰 대자를 쓰거나 으뜸 원을 쓰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족상담 전문가들은 아이 이름 문제로 인한 시부모와 부부의 갈등 소지가 있을 때, 부부가 주체가 되는 자세를 갖는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김미영 서울가족문제상담소 소장은 "전통적인 문화들이 시대에 맞춰 변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며느리와 아들이 시댁에 종속된 존재였지만 지금은 독립적인 존재다. 시부모세대에서는 이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소장은 "부부중심으로 아이 이름을 지으려면 먼저 남편과 아내의 의사 합의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시부모가 불만을 가질 경우에는 남편이 이해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권리만 주장하기에 앞서 부모를 공경하는 태도로 나서야 한다"며 "시부모는 내 아들이 행복하길 원한다면 며느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부부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ibabynews.com)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태그:#아이 이름, #이름 돌림자, #시부모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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