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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맏며느리 그릇이 아닌데 맏며느리가 됐네."

내 말을 듣던 언니가 기어코 한 마디 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시댁에 내려갈 걱정에 머리가 아프다는 내 말에 맏며느리 자격이 없다면서 한심하다는 듯 한 마디 툭 던졌다.

명절이면 고향에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언니에겐 마치 내가 가기 싫어하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그러니 지차 며느리로 가야 될 사람이 맏며느리가 되었다면서 타박을 하지. 언니는 사돈어른들이 얼마나 자식들을 보고 싶어 하시겠느냐면서 길이 먼 게 뭐 그리 대수냐는 듯 시큰둥하게 내 말을 받았다.

언니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명절에 고향 오가느라 길에서 고생을 해본 적이 없으니 우리 처지를 알 리가 없다. 만약 한 번이라도 귀성행렬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면 내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듣지는 않았을 텐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언니의 시댁이 있으니 어찌 내 심정을 알 수가 있겠는가.

명절 걱정 했더니 맏며느리 자격 없다고...

잠시 허리라도 펼까 하고 휴게소에 들릴라치면 또 한바탕 난리를 쳐야 한다.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차들이 들어서있고 화장실 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형국이다.
 잠시 허리라도 펼까 하고 휴게소에 들릴라치면 또 한바탕 난리를 쳐야 한다.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차들이 들어서있고 화장실 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형국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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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우리 집에서 경북 의성에 있는 시댁까지 가자면 빨리 가도 네댓 시간은 잡아야 한다. 명절에 귀성 차량들로 길이 막히면 예닐곱 시간을 길에서 보낼 걸 각오해야 한다. 그러니 명절이 다가오면 오가는 길이 힘들까봐 지레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명절이 돼 고향에 내려갈 때면 언제 출발해야 길이 막히지 않을지 고심을 한다. 뉴스에 귀를 기울이면서 계산을 하고 나서지만 우리의 예상은 항상 빗나가곤 했다. 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는데 길이 막히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남편은 주로 밤에 출발하기를 즐겼다. 그 사람 나름으로는 길이 덜 막힐 것이라 생각하고 그리 하지만 그것은 잠 부족으로 이어졌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고 하면 밤새 운전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가 그러느냐고 핀잔을 듣기 일쑤다. 하기야 운전하는 사람에 비하면 그래도 나는 쪽잠이라도 잤으니 할 말은 없다.

잠시 허리라도 펼까 하고 휴게소에 들를라치면 또 한바탕 난리를 쳐야 한다.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차들이 들어서있고 화장실 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형국이다. 이렇게 해마다 두 번씩 생난리를 치며 고향에 오가노라면 명절이 설렘과 기쁨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댁이 가까워서 차 안에서 몇 시간씩 보내본 적이 없는 언니는 명절에 고향 내려오는 게 뭐 그리 큰일이냐고 나무란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떠서 나의 불효함을 꾸짖는다.

"니도 한 번 생각해봐라. 부모님들은 자식이 얼마나 보고 싶겠노? 일 년에 해봐야 명절 두 번에 생신 등을 다 합해도 몇 번 못 보는데, 고생스러워도 내려오는 게 당연하제."

언니는 어느 결에 시어머니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몇 달 뒤면 아들을 장가보내니 벌써 시어머니처럼 생각을 하는 것일까. 예전 새댁 시절에 명절을 치르던 일들은 다 잊고 며느리에게 어른 대접을 받을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잠 한 숨 못 자고 달려가는 고향

"나도 전에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 남성 위주의 문화에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뭐 그저 그러네."

명절이면 억울한 마음이 안 들었냐는 내 물음에 언니는 그리 답했다. 30여 년의 결혼생활이 그렇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것은 시댁의 풍습에 자연스레 녹아들어가서 이제는 완전한 그 집 사람으로 동화(同化)가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좋은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니가 아들 가진 사람의 권리를 누리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는 아들만 셋을 두었으니 딸을 가진 사람들의 고충을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내친 김에 언니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언니, 그런데 이제는 좀 바꾸어야 안 되겠나? 젊은 애들에게 우리 시대를 그대로 물려주면 안 되잖아. 평등한 명절을 만들어 줘야제."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식구들>의 한 장면.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식구들>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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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내 주변의 젊은 엄마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최근 30~40대 주부들과 명절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명절이 평등하지 않다고 했다. 명절에 일이 많아서 몸이 고단한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그것보다는 남성 위주의 명절 문화 때문에 비애감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아무리 '남녀유별'이라지만 그것은 남녀 간에 차이를 두는 것이지 차별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차등 대접을 받는다고 느껴지니 어찌 명절이 즐겁고 기다려지겠는가.

그래도 요즘 젊은 남편들은 중용의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딸을 시집보내면 명절이 더 쓸쓸하고 허전할 것이다. 그런 경우 사위가 처가에 가서 명절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설에 본댁에 먼저 갔으면 추석에는 처가에 먼저 가는 식으로 조화롭게 보내는 젊은이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어른들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 말을 듣던 언니도 수긍이 가는 모양이었다. 아들을 장가보내면 그 점도 생각해봐야 겠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이 영 돌려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러면 아들들이 하나는 처갓집으로 가고 또 하나는 집에 오고 그러면 저거 형제들끼리는 못 보잖아. 애들도 장가가면 형제간이라도 일 년에 몇 번 못 볼 텐데 명절에라도 만나야제."

또 원점으로 돌아갔다. 언니가 아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딸을 가진 집 역시 똑같이 생각할 텐데, 그 점을 알면서도 그래도 선뜻 허용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리 말을 하는 나 역시 막상 내 아들이 명절에 처가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집에는 나중에 오겠다고 하면 좋게 여겨지지는 않을 듯하다. 말로는 쉬운데 막상 내 일로 닥치면 나 역시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즐거운, 평등한 명절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명절의 모습도 바뀌어 가고 있다. 명절을 쇠러 고향으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찾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명절 연휴를 보내기도 한다. 또 종교적인 이유로 명절을 간소하게 지내는 집도 있다. 핵가족화와 1인가구의 증가로 명절은 연휴의 개념으로 변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다양성의 시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명절의 모습이 이처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러나 그 본질은 하나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것이다. 본가에 갈 수도 있고 처가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명절이란 '전통적으로 그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마다 즐기고 기념하는 날'이니 모두가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누군가가 차별과 부당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명절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다. 가족 간에 불협화음이 없어야 진정한 명절이리라. 그러니 명절에 한 번씩은 아들을 사돈댁으로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들만 셋을 둔 언니는 어찌 나올까. 혼기 찬 자녀들을 둔 우리 세대 앞에 다가온 숙제다.


태그:#명절,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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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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