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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국민, 보육은 국가에서, 4대 중증질환은 무료 진료!"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 캐치프레이즈다. 성별, 나이, 소득 수준에 상관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은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당선에도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대표적 공약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과 어르신 임플란트 등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의료 부분의 핵심 공약은 거의 파기되거나 국고 예산 반영 없는 생색내기 수준이다. 대표적 공약이었던 4대 중증질환 보장은 계속 진행되었던 희귀난치성질환 보장성 확대를 계속 유지하는 정도다.

공약 속에 숨겨진 '민영화'라는 폭탄

지난 11일 오후 서울 이촌동 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 의사 총파업 출정식'에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의사 총파업 출정식에 참석한 대표자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이촌동 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 의사 총파업 출정식'에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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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하지 않겠다던 민영화를 최우선 추진 과제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산업 활성화 정책으로 추진했던 의료민영화 과제들을 이름만 바꿔서 재추진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 비해 박근혜 정부의 추진 의지가 훨씬 강력하다는 것과 이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제어 장치가 더 허술하다는 점이다.

보장성과 공공성 강화를 통해 더 좋은 의료를 더 저렴하게 공급함으로써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재정과 합리적 의료공급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의료민영화 정책은 합리적 보건의료공급체계를 완전히 무너트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는 이미 충분히 영리화되어 있으며, 그 결과 불필요한 의료 이용으로 의료비 폭증과 필수 의료 부족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그 원인은 시장화된 의료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또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다. 국민건강증진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경제성장을 표방하지만 그 배경에는 대기업이 있다. 삼성을 필두로 한 대기업들은 새로운 IT, 전자 등의 뒤를 이을 효자산업으로 하나 같이 헬스케어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를 위한 발판을 깔아주는 것이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이다. 복지부는 이러한 정부의 대책에 대해 당연지정제 폐지 등 건강보험을 직접 약화 시키는 내용이 빠졌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상 민영화와 다름없다.

민영화가 진행되면, 의료비가 비싸지므로 취약계층은 건강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되고 건강보험 역시 보장성을 계속 늘릴 수 없다. 그 틈새를 민영보험회사가 파고드는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에 속해 있는 것이 부유층과 고급 병의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당연지정제와 의무가입이 유지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가는 것이 유리해지면 건강보험제도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 재정확충 없이 보장성 늘리는 마술

박근혜 정부의 재정확충 없는 건강보장성 확대 계획을 보면 5개의 떡과 2마리 물고기로 수 천 명을 먹이셨다는 예수님의 기적이라도 행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적절하게 기획된 관리시스템이나 예산 확충 없이, 시장 경쟁에 의료를 완전히 맡기면서 동시에 보장성 확대도 하겠다고 한다. 여기에는 건강보험 흑자의 비밀이 숨어 있다.

정부에서는 정책시행에 있어서 5년간 9조 원 정도의 금액이 소요되고 그 중 국고 보조 금액을 2억 원 규모(의무보조 금액 20% 내외에서 약간 상향)로 기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재원 마련을 철저히 건강보험 흑자분으로 하겠다는 계산이다. 실제 건강보험은 몇 년째 흑자를 내고 있다. 2013년 3사분기까지 건강보험은 사상 유례없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누적적자는 9조 원에 육박하며 현물자산 등을 모두 포함할 경우 11조 원이 넘는다.

연도별 건강보험 수지율과 누적 수지
 연도별 건강보험 수지율과 누적 수지
ⓒ 국민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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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에서의 흑자는 예상치에 비해 의료이용률이 적을 때 발생한다. 쉽게 생각해서 걷은 돈에 비해 해당년도 의료 이용이 많으면 적자, 의료 이용이 적으면 흑자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의료 이용은 물가상승률, 소득증가율,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았으며 건강보험요율 역시 10년 동안 평균 4.123% 증가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침체되면서 건강보험 흑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흑자 폭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건강보험 흑자의 원인은 간명하다. 의료비 부담으로 의료 이용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의료수요가 높은 노인층이 증가하고 만성질환 등이 빠르게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 이용을 크게 줄이고 있다. 본인 부담이 40% 넘어가는 재정적 부담이 제1 원인이다. 비정규직 등 노동조건이 불안정해 제때 병의원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보장성 문제를 국민들이 주로 납부하는 건강보험에만 맡겨 온 셈이다.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범인은 기업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원조달에서 문제는 일반 국민, 특히 서민층이 내는 금액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바꿔 말해 국가나 기업, 고소득층이 부담하는 비율은 낮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보장 재원조달에 있어서 사회보험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사회보험방식에서 중요한 점은 ① 사회보험재원에서 기업, 노동자, 자영업자, 농민 등 각 경제주체가 각각 얼마만큼 분담하는가 ② 국고지원의 규모와 내용은 어떠한가 하는 점이다.

기업의 건강보험 부담은 점점 줄고 있다.
▲ 건강보험 비용 부담 과정 기업의 건강보험 부담은 점점 줄고 있다.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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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험재원에서 기업은 건강보험 가입자 중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별히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국민 의료비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규모는 매우 낮다. 그 비밀은 국고보조와 비정규직에 있다. 건강보험을 비롯해 4대보험에 기업이 50%를 공동 부담하는 대상은 정규직에 해당할 뿐이다. 그 결과 전체 의료비에서 기업이 부담하는 비율은 크게 줄어든다.

다음으로는 세금을 덜 내는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는 세금, 그 중에서도 기업과 부유층이 내는 세금이 매우 적다. 따라서 건강보험에 국고가 지원하는 비율이 대략 14.8% 가량으로 매우 낮다. 다른 나라의 경우 기업이 해당 노동자의 건강보험료를 대부분 담당하거나(프랑스, 미국 사례), 기업, 부유층 부담이 큰 세금을 통해 대부분의 의료비를 부담하는 반면(영국 등), 우리나라는 정규직을 최소화하고 부자감세를 계속하면서 기업의 노동자 건강에 대한 책임을 줄여왔다.

이 메커니즘이 건강보험료는 계속 오르면서도 의료 이용할 때 직접 내야하는 본인부담금이 계속 증가하는 이유이며, 민간보험에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안심할 수 있는 이유이다.

2014년엔 안녕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 2년을 전망해본 결과, 공약은 대부분 파기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국민들이 부담한 남은 건강보험료로 재정을 충당함으로써, 실질적인 비급여는 손도 대지 못함으로 인해 4대중증질환자들의 의료비 경감 수준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임플란트 등은 대대적으로 홍보하겠으나 임플란트를 계속할 수 있는 고소득 노인에게 진료비를 할인해 주는 효과 정도일 것이며 실질적인 필요가 높은 노인틀니는 75세 이상에게 그나마 50% 밖에 할인을 해주지 않는다. 또한 간병비와 요양비용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가계에서는 노인 돌봄 문제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흑자를 기록중인 건강보험 흑자규모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한 비급여 부담과 취약한 생활여건은 병원 문턱을 높게만 할 것이다. 한편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저소득층 의료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 몇몇 생색내기 공약 이외에 잘 드러나지 않는 취약계층 의료 예산을 줄인 것이다.

반면 정부는 대기업 헬스산업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역량을 의료민영화에 집중시키고 있다. 당장 2월 국회에서 영리자회사 설립과 법인약국, 원격의료, 민영보험 활성화 등을 위한 법률개정을 추진할 전망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강력한 반대를 조직되지 못하게 하면서 총력을 다해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계획된 민영화 정책이 추진되면 의료비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사라진다. 의약품과 기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 전망이며 의료기관에서 불필요한 검진, 시술, 처치, 입원 등을 조절할 유인도 없어진다. 병원에 가면 내야하는 기본 금액이 오르게 되면 서민층에게 병원 문턱은 더욱 높아진다. 필수 의료를 받지 못하는 계층이 더 증가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국민이 의료비 부담 없이 필수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뿐 아니라 예방·건강증진, 만성질환 관리 등 일차의료, 응급의료, 재활 및 요양서비스 등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공적으로 확대 공급해야 한다. 불필요한 고가 비급여 의료 상품 등은 합리적 기준을 두어 관리해야 하고 의료 기관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 인력을 확보하고 보건의료 노동자들에 대한 충분한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이런 전망이 현실화되지 못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이미 충분히 영리화 되어있고 그 피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더욱 촉진시킬 민영화정책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시장화된 의료체계가 완전히 구축되는 기간이 되지 않으려면 의료 보장성 강화와 일차의료, 공공의료 확대, 의료체계 개혁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이미 시간이 많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은경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가공된 것이므로 표 및 그림을 포함한 전문의 보고서를 보시려면 새사연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그:#의료민영화,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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