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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있는 해여서 정초부터 정치인들의 출판 기념회다, 의정 설명회다 뭐다... 평소 코빼기도 보기 힘들던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시골 마을에서도 심심찮게 느껴진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쇼'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터라, 정치인들의 그런 분주함이 그나마 세월의 흐름을 알게 해 주는구나 하고 넘어가고 만다.

정치인의 여러 '쇼' 가운데 택시기사 체험 만한 게 더 있을까 싶던 때가 있었다. 15, 16대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자마자, 택시운전대를 잡고 10개월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민심을 훑었던 박계동 전 의원은 택시운전 체험의 원조 격이다. 10개월 동안 민심을 살핀 결과인지 모르나, 그는 17대에 1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그 후 뭍 정치인들이 택시기사 체험을 한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가령, 대통령이 돼서도 택시기사 체험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같은 경우는 택시운전을 하며 나름 민심을 살피고자 했던 정치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도지사나 국회의원들은 택시기사 체험 이후, 다른 민생 업무를 챙겼을까? 다른 건 모르지만, 택시 운송 사업과 관련하여 어떤 개선점이 도출된 바 있는지, 택시기사들의 처우와 수입이 나아진 바 있는지, 연료 정책이 바뀌었는지, 정책적 개선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보좌관이나 비서, 연구진들을 통해서라도 종합보고서가 만들어졌는지 들어본 바가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치인의 택시기사 체험은 간단하게 '쇼'라고 치부해 왔다.

7만 킬로미터를 달린 택시 노동자

2012년 여름부터 1년간 울산 시내부터 외곽까지 총 7만 킬로미터를 달린 택시기사가 있다. 매일 평균 열두 시간, 300km씩을 달린 셈이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경남도의원, 광역시의원, 울산 동구청장을 지낸 바 있는 정치인 김창현이다.

김창현 저, 오마이북 출판
▲ 달리는 인생 김창현 저, 오마이북 출판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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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 역시 2012년 총선 낙선 이후 당직에서 물러나 택시기사로 노동자 생활을 했으니, 정치인이 쇼를 한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그가 택시 노동자 생활을 하는 동안 달린 거리에 주목했다. 개인적으로 11년간 타던 출퇴근용 승용차를 교통사고로 폐차했을 때, 주행거리가 20만km를 조금 넘었었다. 그런 면에서 달린 거리로만 보면, 실제 택시 노동자로 치열하게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정치인 김창현이 택시 운전을 하며 만난 이웃들이 사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한 '택시일기'를 통해 "소통 공간의 방식이 변했다"는 말을 한 데서 그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고, 이제 그를 택시 노동자 출신 정치인이라 불러도 무당하다고 본다.

김창현에게 있어서 택시기사로서의 삶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행위였다. 기득권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가 되고자 했던 것은 정치인 김창현이 아니었다. 그가 되고자 했던 것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였고, '땀 냄새에 대한 그리움'을 찾고자 했다. '땀'의 소중함이 배어나오는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살아오면서 생긴 기술, 혹은 인간관계, 일정 수준의 연봉은 모두 자기의 기득권이다. 어떤 결단을 내리려 할 때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바로 그것이다. 그 알량한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보수성이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을 가로막기 마련이다. 아울러 두려움 또한 중요한 방해 요소다. 누구나 익숙한 자기 일을 버리는데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의 벽을 넘지 못해 망설이게 되면 맴돌다 결국 주저앉게 된다. 이 기득권과 두려움을 내려놓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삶에 대한 가치는 스스로 부여해야겠지. 그리고 변화에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소득이 있음을 깨닫는 것도 자기 몫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택시 노동자들에게 김창현의 꿈은 어쩌면 부르조아적 낭만이었을지 모른다. 김창현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택시 기사들의 자조적인 이야기가 있다. 너무 열심히 하면 과로사하고 너무 쉬면 아사하고, 정신줄 놓고 일하면 사고사한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적당히 쉬어가며, 적절히 돈 되는 곳을 찾아다니는 요령이 필요하다."

세상에 적당히 쉬어가며, 적절히 돈 되는 곳이 어디 있을까? 세상은 손쉽게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는 요령도 없고, 말해 주는 이도 없다. 현실은 낭만이 아니다. 김창현 역시 그 '요령'이 없음을 알고 있고, 뼈 빠지게 일하고 사납금 채우기에 급급한 택시 노동자로서의 삶을 1년간 살았을 뿐이다.

택시기사를 시작한 것이 부르조아적 낭만이건, 일정 부분 정치적 쇼가 가미된 것이든 간에, 김창현은 택시 안에서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김창현의 <달리는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연사로서의 정치인의 모습을 내려놓고, 뒤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귀를 세워 듣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의미라면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말이라도 이뻐야 산다

그 가운데 그 동안 정치인으로 살았던 김창현도 여느 가장과 다를 바 없는 아내의 눈치를 보는 중년 남성임을 보여주는 모습에선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된다.

"나에 대한 아내의 평가가 궁금해진 것이다. 나?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늘 듣는 평가는 '아이고, 말이나 못하면' 이지 뭐, 우리는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그러나 후배에게 하지 않은, 아내의 덧붙인 말이 있다. 말이라도 예쁘니 데리고 산다. 내가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말이라도 이뻐야 산다."는 말은 어느 한 가장의 독백을 넘어서 정치인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입만 열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정쟁으로 치닫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말이라도 이뻐야' '쇼'를 해도 눈 감아 줄만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안보란 국민을 안심시키고 생업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내가 훨씬 용감하다면서 살벌한 군사훈련을 벌이고 주먹을 흔드는 모습이 아니라, 진중하게 접근하여 대화로 문제를 타결하는 높은 위기관리 능력을 보고 싶어 한다."

택시 노동자로 1년 가까운 세월을 운전대를 잡았던 김창현은 어떻게 변했을까? 좀 더 새롭고, 부지런하고, 겸손하게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모습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있다.

"자기의 낡은 습관, 사고방식, 게으름은 그대로 고수하고, 그러면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도둑눔 심보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나이와 직업과 정견을 넘어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그곳에 어떤 꿈과 희망이 있는지 진지하게 존중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민생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정책이든 행정이든 반영하면 좋지만, 정치인들의 쇼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그러한 모습이 자주 노출되어야 한다고 본다. 혹시 아는가? 그를 통해서 초심을 회복하고, 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귀가 열리는 일이 있을지.

바라기는, <스노우맨> 의 저자인 '요 네스뵈'가 했던 말처럼, 택시기사 체험이 모든 정치인들이 택시 체험을 통해 '사회적 약자가 사회 구성원들 속에서 보호받고, 배려받고, 함께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작가이자 뮤지션이며 경제학자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한 일은 바로 택시 기사였다. 조그만 택시를 몰아 내가 사는 작은 동네를 몇 시간이고 돌았다. 사람들을 관찰했다. 사람들이 가진 이야기를 파고들었다. 그 관찰의 시간이 해리 홀레의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한 영감이 되어주었다."-요 네스뵈

덧붙이는 글 | <달리는 인생> 김창현 저, 오미이북 출판



달리는 인생 - 김창현의 택시일기

김창현 지음, 오마이북(2013)


태그:#김창현, #달리는 인생, #택시기사, #택시 노동자, #요 네시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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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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