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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을 청소한 대가로 받은 돈 1029만원 전부를 장학금으로 내놓은 김광연 한추향 어르신 부부. 어르신들의 장학금 기부는 서민들이 울린 희망의 고동소리였다.
 공중화장실을 청소한 대가로 받은 돈 1029만원 전부를 장학금으로 내놓은 김광연 한추향 어르신 부부. 어르신들의 장학금 기부는 서민들이 울린 희망의 고동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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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12월 23일), 진도군인재육성장학회에 1029만 원이 전달됐다.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만금리에 사는 한추향(76)·김광연(68) 어르신 부부가 내놓은 돈이었다. 이 돈은 어르신들이 지난해 10개월 동안 진도대교 녹진광장과 충무공공원 등 5곳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받은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남을 도울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 그렇지만 10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받은 돈을 전부 내놓았다. 기업가나 재력가의 억(億)대보다도 더 큰 감동을 불러온 이 기부는 서민들이 울리는 희망의 고동소리였다.

지난 10일, 어르신들을 찾아 진도에 갔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한 어르신은 그 날도 녹진광장의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 이 칸, 저 칸을 드나들며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밀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화장지 걸이에 화장지가 조금밖에 남지 않은 것은 새것으로 바꿔 걸었다. 이렇게 일하고 받은 돈 전부를 장학금으로 내놓은 배경이 궁금했다.

진도 녹진광장에 있는 공중화장실. 한추향 김광연 어르신 부부가 날마다 청소를 하고 있는 곳이다.
 진도 녹진광장에 있는 공중화장실. 한추향 김광연 어르신 부부가 날마다 청소를 하고 있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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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추향 어르신이 진도 녹진광장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한추향 어르신이 진도 녹진광장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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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계기는 없어라. 손자 하나를 데리고 사는디. 긍께 조손가정이제. 손자가 학교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았소. 학용품도 받고 책, 옷, 쌀도 받아오고. 너무나 고마웠제.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길이 뭘까 생각하다가 내논 거여. 집사람도 동의했고. 다른 뜻은 없어."

한추향 어르신의 얘기다.

한추향·김광연 두 어르신은 손자(중1)와 함께 살고 있다. 손자는 지적장애를 겪고 있다. 며느리는 손자를 낳아놓고 바로 집을 나갔다. 얼마 뒤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하나뿐인 아들도 교통사고로 숨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르신들의 몸도 갈수록 쇠약해져 농사짓기가 힘들었다. 생활이 녹록할 리 없었다. 지난해 3월부터 공중화장실 청소에 나선 이유다.

"작년 2월 중순이었제. 면장이 제안을 해왔어. 공중화장실 청소해 볼 생각 없냐고. 면장이 우리를 생각해준 거였제. 그러고 3월부터 청소를 시작했응께. 나 혼자서. 근디 여자화장실 청소할 때 불편하더라고. 그래서 집사람한테 같이 하자고 했제. 나는 남자화장실을, 집사람이 여자화장실을 맡아서 한 거여."

한추향 어르신의 얘기다.

한추향 어르신이 진도 충무공공원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한추향 어르신이 진도 충무공공원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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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새벽 3시 30분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청소를 나갔다. 어르신은 "나이 들어 잠이 없어진 탓"이라지만 이른 시간부터 밀려드는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화장실 이용객들을 위한 배려였던 셈이다.

요즘 같은 겨울엔 5시쯤 나가서 청소를 한다. 5개 화장실을 모두 청소하고 나면 2시간 남짓 걸린다. 집에 돌어오면 손자를 챙겨 학교에 보낸다.

어르신들의 화장실 청소는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점심때쯤 할아버지 혼자서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2차 청소를 한다. 해질 무렵 또 한 차례, 모두 세 차례 청소를 한다. 이렇게 지난 10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청소해서 받은 돈이 1029만 원이었다.

한추향 어르신이 진도 충무공공원 공중화장실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한추향 어르신이 진도 충무공공원 공중화장실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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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한추향 어르신이 문정배 군내면장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자의 사진을 함께 보며 웃고 있다.
 김광연 한추향 어르신이 문정배 군내면장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자의 사진을 함께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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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이었습니다. 이웃돕기 일일찻집을 하고 있는데, 어르신이 찾아 오셨더라구요. 그 돈을 전부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으시겠다고. 처음에 말렸죠. 형편도 넉넉지 않고, 또 청소하러 다니면서 든 비용도 있고 해서. 그런데 의지가 워낙 완고하셔서 장학회 기부로 유도를 했죠. 어르신들의 고귀한 뜻이 오래도록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문정배 진도군 군내면장이 들려준 어르신들의 장학금 기부 배경이었다.

덕분에 진도군인재육성장학금 기부자 가운데 최초의 1000만 원 이상 개인 기부자가 됐다. 그날은 또 어르신들의 결혼 50주년 기념일 이튿날이기도 했다. 항간에 결혼 50주년을 기념해 장학금을 기탁했다는 잘못된 소문이 나게 된 연유다.

장학금을 내놓고 오자 다음날부터 언론사의 전화가 빗발쳤다. 진도군에서 장학금 기부소식을 담은 보도자료를 낸 탓이었다. 전화의 내용은 인터뷰나 촬영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취재요청을 거절하는 게 일상이었다.

김광연 한추향 어르신이 집에 있는 의자를 겸한 침대에 함께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다.
 김광연 한추향 어르신이 집에 있는 의자를 겸한 침대에 함께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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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지라. 그런 뜻이 아니었는디. 그동안 우리 손자가 학교에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았는디요. 그걸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쁨을 맛봤는디. 그 기쁨에 대한 작은 보답이였지라. 다른 사람들한테 우리가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소. 남들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상관할 바도 아니고."

김광연 어르신의 얘기다. 할머니는 3년 전 관절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제대로 못해 아직도 두 다리가 불편하다. 방바닥에 앉기도 힘들다. 침대를 겸한 의자에 걸터앉아서 생활을 해야 한다. 바깥나들이도 전동차에 의지하고 있다.

"내가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디요.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 같애라. 그래서 더 기쁘고요. 앞으로 언제까지 화장실 청소를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겄는디. 장담은 못한디. 앞으로도 다소나마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계속 하고 싶소."

한추향 어르신의 말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어르신들의 기부는 이뿐 아니었다. 재작년 한추향 어르신이 마을이장으로 일할 땐 월 20만 원씩 받은 월급 1년분(240만 원)을 마을 경로당에 다 내놓았다. 이장단협의회의 단체복 구입비로 100만 원을 내놓는 등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도 늘 앞장서 왔다는 게 문정배 면장의 귀띔이었다.

한추향 어르신이 진도 충무공공원에 있는 공중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마침 찾아온 문정배 군내면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추향 어르신이 진도 충무공공원에 있는 공중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마침 찾아온 문정배 군내면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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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추향, #김광연, #기부, #장학금, #문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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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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