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이 속담은 정말일까요? 왜 저는 열 번 이상을 찍었는데도 그녀는 내게 넘어오지 않는 걸까요? 나를 보기만 하면 자꾸 도망가는 그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요. 처음 봤을 땐 저도 이렇게 생각을 했었죠.

'아, 그녀는 부끄러움이 많구나. 무슨 이유인지 더 사랑스러운 걸?'

서로 얼굴을 대면한지도 1년이 다 돼 가요. 혹 지금도 그녀가 도망간다면, 그건 아마도 수줍음 때문이 아니고 저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제 생각이 지나치다고, 성급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여전히 저를 피하고 있어요. 그러니 저의 생각이 지나치거나 성급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저의 어떤 면이 그녀를 도망가게 하는 걸까요.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창문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아무 탈 없이 밤을 잘 보냈는지 확인하는 것이지요.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제가 있는 방향으로 향해 있어요. 그런데 자세히 그녀를 관찰하면 저를 바라보는 것 같지 않아요. 그녀는 도대체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제가 그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녀는 왜 몰라주는 걸까요? 

먼저 다가갔지만, 외명당했어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 허락하는 마루다.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갈까봐 나는 조심스레 사진을 찍어야 했다.
▲ 나의 그녀 마루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 허락하는 마루다.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갈까봐 나는 조심스레 사진을 찍어야 했다.
ⓒ 김윤희

관련사진보기


처음에는 덩치가 큰 그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주인장의 집을 살펴보느라 그녀를 쳐다볼 여유도 없었고 작고 앙증맞았으면 하는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녀와 자주 얼굴을 대면하게 되다 보니 정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먼저 다가갔어요. 그러나 그녀는 저를 외면했어요. 저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버리는 겁니다. 고개를 조금 내밀다가도 제가 거기 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나오려던 발걸음을 되돌렸어요. 외출을 했다가도 그녀가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해 빨리 집으로 들어가곤 했는데도 말이지요. 먹고 싶은 과자를 먹다가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다가도 그녀가 생각나면 작은 봉지 속에 담아오곤 했지요.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어요.

제 생에 이런 외면은 처음입니다. 제가 의외로 동물들에게 인기가 많거든요. 어떨 때는 '왜 나를 이렇게 좋아하지? 내가 전생에 얘네들과 같은 종종이었든가?'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제 유일한 친구 그녀, 하지만 절 보지 않아요

제게는 자주 만나던 두 명의 친구가 있었어요. 저희 셋은 강둑을 거닐고 있었어요. 길을 가다 맞은편에서 닥스훈트와 함께 산책을 하는 여성을 보게 됐어요. 제 옆에 있던 지선이라는 친구가 닥스훈트에게 다가가더라고요. 그 친구는 원래 동물을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개는 으르렁거리며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짖어대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친구는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만 봐야 했지요.

저는 개주인 눈치도 보이고 제게도 짖을 것 같아 1미터 거리에서 '쫑쫑' 소리를 내며 그 개를 불렀어요. 놀랍게도 녀석이 제게 다가오는 거 아니겠어요?

이 상황을 지켜보던 또 한 명의 친구도 닥스훈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죠. 녀석은 정말 우리를 웃겼어요. 제 앞에서 몸도 비비고 손을 핥아대던 녀석이 친구가 다가오자 몸을 틀어 주인에게 가버리는 겁니다. '너에게는 관심 없어'라고 하듯 시선도 주지 않고 총총 걸어갔어요. 저희 셋은 웃었고, 친구들은 제 전생이 개라고 말했죠.

이 정도면 개들이 저를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졌어요. 자신을 길러주던 주인이 섭섭하게 느낄 정도로 제 곁에 붙어 애교를 부리느라 정신이 없던 녀석들이 정말 많았다니까요. 이런 제가 그녀에게 외면을 당했으니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저는 이대로 있을 수 없었어요. 이 집에 주인장을 빼면 그녀가 제 유일한 친구입니다. 겨울이 되면 시골 어르신들 대부분이 도시에 있는 자녀들의 집으로 떠나십니다. 그러니 주인장이 없을 때 저와 그녀는 서로를 위로해주는 사이가 돼야죠. 사실 그녀는 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입니다.

'너를 유혹하고 말겠어. 너는 이제 나의 포로가 될 거야.'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서 저는 '파블로프의 개'를 이용한 실험으로 종과 먹이에 관한 실험을 떠올렸지요. 먹이를 줄 때 종을 울렸더니 나중에는 먹이를 주지 않고 종만 울려도 개가 침을 흘린다는 요지의 실험이지요.

제가 그녀를 이런 실험대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도 도망가지 않도록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녀는 먹는 것에 매우 약한 존재였죠. 그래서 식탐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저는 매일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요. 아, 그녀의 이름은 '마루'입니다.

"안녕? 안녕? 먹자~ 먹자~"... 열심히 노력했어요

마루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잽싸게 자신의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그러더니 고개만 살짝 내밀고는 나를 보고 있다.
▲ 그녀가 숨다 마루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잽싸게 자신의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그러더니 고개만 살짝 내밀고는 나를 보고 있다.
ⓒ 김윤희

관련사진보기


"마루, 안녕! 마루. 잘 잤어? 마루."

매일 아침마다 그녀를 불렀죠. 그리고 오후에는 틈틈이 마당으로 나갔죠. 물론 손에는 그녀를 위한 간식이 준비돼 있었지요. 제가 다가가면 그녀가 몸을 숨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가가기 전에 말을 걸었어요.

"마루~ 먹자. 마루~ 먹자. 마루~ 먹자."

그렇게 세 번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손에 든 것을 보여주며 걸어가지요. 그런 다음 그녀의 방 입구에 먹을 것을 내려놓습니다. 몇 달 동안 이것을 반복했지요. 외출을 할 때도 빈 통을 챙겨 들고 나갔어요. 남은 음식을 버리는 것보다는 가져가면 식당 주인들도 좋고, 나의 그녀도 사료만 먹는 것보다는 가끔 색다른 음식을 먹어서 좋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기분이 좋았죠. 통에 가득 찬 음식들을 보면 그녀가 기뻐할 테니까요. 그렇게 몇 달을 보냈죠.

그녀가 달라지긴 했어요. 제가 문을 열고 마당을 마가면 꼬리를 흔들며 원을 그리며 도는 겁니다. 삥삥. 삥삥. 제가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그렇게 계속 돌지요. 그런데 그녀의 집 앞에만 서면 겁에 질린 사람처럼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먹을 것이 앞에 있어도 제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면 먹지 않아요. 아니오, 먹지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자기를 잡아먹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래요. 꼬리를 흔들고 제자리에서 돌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이것으로 만족하고 싶었지만 다시 도전했어요. 아침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종 대신 나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음식을 줬어요.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어 이렇게 10개월째 해오고 있습니다.

누가 방법 좀 알려주세요, 그녀와 친해지는 방법

지금쯤 우리는 서로의 몸을 부비고 핥아주는 사이가 돼야 맞겠지요? 그녀는 지금도 제가 가까이 가면 집안으로 줄행랑을 칩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녀는 내가 문을 열고 마당을 걸어 나오는 소리만 들려도 혀를 날름거린다는 것이죠. 저를 향해서 말입니다.

외출하고 돌아와도 혀를 날름, 저가 지나가도 혀를 날름, 이름을 불러줘도 혀를 날름. 이것은 제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보면서 혀를 날름거리라고 먹을 것을 준 것도 아니었지요. 그녀는 제가 주는 음식만 날름하고는, 저는 외면합니다. 그녀와 종종 눈이 마추칠 때마다 그녀의 마음의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먹을 걸 내려놨으면 갈 것이지. 왜 서 있는 거야? 왜 나만 보면 떠들어대는 거야. 아무래도 저 여자는 이상해.'

누가 좀 알려주세요. 그녀를 유혹할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태그:#마루, #개, #친구, #유혹, #방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