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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나하(那覇) 시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모노레일인 유이레-루(ゆいレール)를 타고 나하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마키시코우세쯔이치바(牧志公設市場), 즉 마키시 시장에 가기 위해서 미에히바시역(見栄橋駅)에서 내렸다. 고쿠사이도리(國際通り)의 남쪽에 바로 붙어 있는 마키시 시장은 나하시 도심 여행에서 빠트릴 수 없는 곳이다.

고쿠사이도리를 걷다보면 시장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 마키시 시장 가는 길 고쿠사이도리를 걷다보면 시장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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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 고쿠사이도리의 중앙에 서니, 마키시 시장으로 들어가는 조그마한 시장길 입구가 보인다. 여행자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남국의 관광지, 고쿠사이도리에서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서자 오키나와 현지인들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재래시장이 나왔다.

국제화 된 고쿠사이도리와 바로 연결된 시장의 가게들은 유리천장 아래에 잘 정비되어 있었다. 나는 여기저기 시장의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시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마키시 시장에서는 신선한 오키나와 생선과 각종 고기, 과일 등 다양한 먹거리들을 사고 즐길 수 있는 가게들이 많다. 그리고 이곳에는 재래시장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있었다.

유리 천장 아래에 각종 기념품과 식료품 가게들이 있다.
▲ 시장 내부 유리 천장 아래에 각종 기념품과 식료품 가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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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입구 쪽에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식료품 가게들이 몰려 있다. 각종 양념장과 함께 바다의 캐비어라고 불리는 해초인 우미부도우(うみぶどう), 오키나와의 웰빙 해초 모즈쿠(もずく)를 주로 팔고 있다. 아내가 파인애플 파크에서 샀던 국거리용 해조류를 이 가게에서 더 사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에 포장된 해조류를 가방에서 꺼내 가게 주인에게 보여주며 이 제품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해초류인 우미부도우와 모즈쿠가 인기 품목이다.
▲ 식료품 가게 해초류인 우미부도우와 모즈쿠가 인기 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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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게주인은 이 제품을 처음 본다는 듯 플라스틱 케이스를 앞뒤로 돌려가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옆 가게 주인을 불러 한참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 느긋한 상인들은 손님인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우리가 준 말린 해조류 제품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우리가 찾는 해조류는 이 가게에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우리가 준 해조류를 건네받고 다시 시장의 고기 코너로 발길을 옮겼다. 나는 시장 안으로 걸어가면서 이 사람들은 참으로 성격들이 느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의 시장 모습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
▲ 마키시 공설시장 입구 과거의 시장 모습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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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야채코너와 반찬가게 뒤로는 정육코너가 나온다. 정육코너에서 보면 오키나와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식습관을 알 수 있다. 작은 섬나라 오키나와는 옛적부터 소가 많이 살지 않았고 돼지가 키우기 쉬웠다.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유독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데, 이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못 말릴 정도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돼지 울음소리만 빼고 돼지고기의 모든 부위를 먹는다고 한다. 돼지의 모든 부위에 모두 수요가 많으니, 가게에 걸린 돼지고기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문화와 너무도 비슷함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오키나와 현지인들이 먹는 조리 반찬들을 팔고 있다.
▲ 반찬가게 오키나와 현지인들이 먹는 조리 반찬들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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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돼지족발도 보일 뿐만 아니라 돼지 머리고기까지 팔고 있다. 돼지 귀, 내장까지도 식당에서 인기가 많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부위라는 돼지 머리고기는 압축 포장까지 해서 잘 팔리고 있다. 한 정육점에서는 선글라스를 낀 돼지머리가 손님을 부르고 있다.

이 돼지머리는 누구나 사람을 웃음 짓게 하는데 죽은 동물의 머리가 괴기스럽지 않은 것은 돼지가 항상 웃는 모습을 하고 친근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키시 시장의 선글라스를 낀 명물 돼지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돼지같이 선글라스를 끼고 사진을 찍는다. 마치 돼지가 선글라스 끼고 나오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가가 귓속에서 들리는 듯 하다.

돼지 머리고기를 압축 포장해서 파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돼지 머리고기 돼지 머리고기를 압축 포장해서 파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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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해산물, 예술작품을 보는 듯

마키시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남쪽 나라 수산물 코너의 총천연색 생선들이다. 나는 싱싱한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는 생선가게로 향했다. 어물전에서 생선을 파는 젊은 가게 주인들이 나와 아내를 보자 먹고 싶은 생선을 고르라며 한국말로 계속 말을 건다. 생선을 사가라고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는데 일본의 다른 곳에서는 겪어보지 못하는 활기가 느껴진다. 나는 일본어를 잘 모르지만 띄엄띄엄 들리는 일본어 단어와 표정을 보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생선 정말 싸게 줄테니 꼭 사가라는 것이다.

남국에 자리한 대표 어시장답게 해산물은 형형색색이다. 색상이 참으로 화려한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몸통 전체가 모두 알록달록한 녀석도 있다. 마치 서울의 노량진 수산시장같이 생선들이 없는 것 빼고 다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꼼꼼하게도 각 생선의 위에는 붉은 글씨로 물고기들의 이름을 크게 적어 놓아서 이 물고기가 어떤 물고기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이 봤을 때는 생선이 파랗고 빨간데다가 생김새도 해학적이다. 비늘을 덮은 물고기들의 색상이 너무 화려하고 너무나 현란하다. 마치 관상용 물고기같이 아름다워서 차마 먹기가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이 생선들이 정말 먹는 생선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수족관에 있어야 할 열대 물고기를 꺼내서 먹는 것만 같다. 색상이 화려한 물고기들을 보면서 식욕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마도 한국 생선의 색상에 익숙해진 내 뇌 속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새파란 열대고기를 회로 먹는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 이라부치 새파란 열대고기를 회로 먹는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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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생선 중 단연 압권은 파랑비늘돔, '이라부치(イラブチ)'다. 이 열대의 물고기는 너무나 파란, 파란색을 가지고 있다. 생선의 고정관념을 깨는 녀석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물고기인데 보면 볼수록 색깔이 참으로 화려하다. 나는 이 녀석의 강렬한 형광색 푸른빛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혹같이 툭 튀어나온 이마에 입도 새의 부리 같이 뭉툭하다. 마치 새를 닮은 얼굴에 눈동자는 아직도 살아서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물고기 치고 되게 못생긴 얼굴이다.

왠지 맛있을 것 같이 생기지 않은 이라부치의 맛이 궁금하다. 시장의 2층 식당에서는 1층 수산물 코너에서 자기가 고른 생선을 가져가서 조리를 부탁할 수 있다. 2층 식당에는 횟감 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요리도 팔고 있고 한국어 메뉴판도 있다. 나는 이라부치 회를 부탁했다. 살이 도톰한 이라부치 회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묘하게 함께 살아 있다. 이라부치의 쫄깃한 맛은 오키나와에서만 맛볼 수 있다.

생김도 못난 복어, 애처로워 보인다

껍질을 모두 벗겨버린 가시복어가 처량하다.
▲ 가시복어 껍질을 모두 벗겨버린 가시복어가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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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의 생선 비주얼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비주얼을 가진 것은 하리센본(はりせんぼん)이라고 불리는 가시복어이다. 큰 복어 옆에 껍질을 앙상하게 벗겨버린 복어가 불쌍하게 진열되어 있다. 가시복어의 가시는 먹기가 힘들기 때문에 가시가 달린 비늘을 모두 벗겨버리고 파는 것이다. 눈만 남고 껍질이 벗겨진 복어의 외양이 처량함을 넘어 너무 무섭게 생겼다. 가시를 자르기 전의 가시복어는 참 귀엽게 생겼는데 가시를 잘라버리니 너무 비참해 보인다. 아무튼 벌거숭이의 가시복어는 몸통에 살은 별로 없고 머리에 살이 몰려 있는 대두이다.

생선 외에 새우에도 눈길이 간다. 아무리 봐도 랍스터 같이 생긴 이세에비(伊勢えび)는 일본 중부의 이세(伊勢)에서 많이 잡히는 새우이다. 바다의 생선들 옆에 새우가 있는데 새우의 크기가 생선의 크기와 비슷할 정도로 크다. 새우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덩치가 크지만 랍스터 같이 큰 집게발이 없는 분명한 새우이다. 입쪽의 더듬이가 엄청나게 크고 생긴 모습도 마치 닭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일본 사람들은 이 새우를 금닭새우라고도 부른다.

새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한다.
▲ 이세에비 새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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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조개, 먹기만 하는 게 아니구나

이세에비 몸통의 검붉은 갑옷은 무척이나 강인해 보인다. 갑옷 속의 속살을 이층식당에서 함께 맛보았다. 이세에비의 투명하고 실한 속살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맛은 신선함과 탱클탱글함 그 자체이다. 전체 몸의 거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이세에비의 머리는 미소시루(味噌汁)에 담겨서 나오는데 새우 맛이 풍기는 된장국 맛이 일품이다. 

한 수산물 가게 주인이 커다란 조개를 가리키면서 '야과안조개'라고 조개 이름을 가르쳐 준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기 얼굴만한 조개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데 죽지 않고 모두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가게 주인이 자기 손가락을 대어서 보여주는데 사람 손가락 옆의 야광조개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오키나와 열도의 남쪽 해역에서만 나는 야광조개는 조개의 크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엎을 정도로 크다. 크기가 워낙 커서 소라같이 보이기도 한다. 조개 속도 꽉 차 있어서 야광조개 한 개만 먹어도 따로 식사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특히 조개구멍 입구의 넓적한 촉수 부위는 특히나 쫄깃쫄깃할 것이다.

야광조개의 껍질은 삼국시대에도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 야광조개 야광조개의 껍질은 삼국시대에도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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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현듯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보았던 한 기억이 떠올랐다. 경주 천마총 내부와 고령 대가야박물관에서 야광조개 국자를 보았던 기억. 일본에서는 이 멋진 야광조개를 이용해서 이른 시기부터 각종 용기로 사용했는데, 오키나와의 야광조개 국자가 먼 바닷길을 올라와서 우리나라 남부 해안과 내륙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고대 우리나라의 지배층들이 이 야광조개를 각종 제사의례에 사용하였고 무덤에까지 가지고 갔던 것이다. 한일 고대사를 전해주는 이 야광조개가 살아 있는 화석인 양 눈앞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 속의 상상을 더하니 야광조개가 괜히 신비해 보였다.

8시가 되자 시간이 너무 늦었는지 수산물 가게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 오키나와의 부엌에서 더 많은 해산물을 마음껏 맛볼 수 있었는데 늦어버린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오키나와, #나하, #마키시 시장, #이라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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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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