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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의 '특검 실시'와 '박근혜 사퇴'를 외치며 분신한 이남종(40)씨 장례식이 지난 4일 치러졌습니다. 이날 오전 서울역광장에서 영결식을 치른 고인의 유해는 광주 금남로에서 노제를 마치고 오후 7시경 광주 망월공원묘지(옛 5·18묘역)에 안장됐습니다. 망월공원묘지는 국립 5·18민주묘지가 완공되기 전부터 있던 5·18민중항쟁 희생자 묘역으로, 5·18민중항쟁 희생자는 물론 이후 김남주, 이한열, 강경대, 이철규 등 민주열사들이 안장된 곳입니다.

장례 당일 현장을 취재한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장례 예배를 주관한 장헌권 광주NCC 인권위원장은 "불의한 역사 속에서 고인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며 하고자 한 부르짖음은 두려움 속에 있는 국민들을 깨우기 위한 하늘의 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며 "이제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일어나고, 응답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울에서부터 따라 내려온 장례위원회 관계자를 비롯해 광주시민 등 300여 명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습니다.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분신한 고 이남종(40, 광주 북구)씨가 4일 광주 북구 망월공원묘지(옛 5·18묘역)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이씨의 영정사진을 든 동생 이상영씨 앞에서 인부들이 흙을 퍼 나르고 있다.
▲ '박근혜 퇴진' 이남종씨 안장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분신한 고 이남종(40, 광주 북구)씨가 4일 광주 북구 망월공원묘지(옛 5·18묘역)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이씨의 영정사진을 든 동생 이상영씨 앞에서 인부들이 흙을 퍼 나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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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5시경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특검 실시" "박근혜 사퇴"라고 적힌 두 개의 플래카드를 고가도로 아래로 펼친 뒤 몸에 쇠사슬을 묶고는 불을 붙였습니다. 이후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고인은 이튿날, 갑오년 새해 아침에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고인은 가족과 국민들 앞으로 남긴 유서에서 근자에 유행처럼 번진 '안녕 대자보' 문구처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묻고는 이내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이라고 현 시국을 진단했습니다.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라고 지적하고는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사퇴'로 그 책임을 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산 자들을 아프게 한 대목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고인은 자신의 뒤를 이어 산 자들이 일어나라고 촉구했습니다.

온몸으로 불길 맞은 스님, 정권 무너뜨리다

이남종씨 분신사건을 접하면서 문득 베트남의 틱광득(釋廣德) 스님이 떠올랐습니다. 틱 스님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63년 6월 11일 호치민(구 사이공) 시내에서 소신공양을 했습니다. 대낮에, 대로변에서 틱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합장한 채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불길을 맞았습니다. 보통사람이 제 정신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장면인 것입니다. 당시 스님은 남베트남의 고딘디엠 정권에 항거하여 이같은 소신공양을 감행한 것입니다.

틱 스님의 소신공양 장면은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보도됐고, 전 세계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틱 스님의 뒤를 이어 서른 명이 넘는 스님들의 소신공양이 뒤따르자 고딘디엠 동생의 부인은 이를 "바비큐 파티"라고 조롱했다가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이 사건은 급기야 미국에서 반전운동으로 타오르기 시작하자 케네디 정부는 얼마 후 월남 군부를 사주해 쿠데타를 일으켜 고딘디엠을 실각 시켜 버렸습니다. 결국 틱 스님의 소신공양이 고딘디엠 정권을 무너뜨리고 만 것입니다.

베트남 명문집안에서 태어난 고딘디엠은 젊은 시절에는 프랑스와 일본에 반대해 독립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1954년 미국의 지원으로 총리가 된 그는 1956년 남베트남 초대 대통령이 되고나서 독재의 길을 걸었습니다. 자신과 자신을 지지하는 지주들이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가톨릭은 옹호하는 한편, 수많은 불교도들을 투옥·처형했습니다. 급기야 이에 항거하는 게릴라 저항운동이 일어났고, 1963년 6월 틱 스님의 분신자살이 쿠데타의 도화선이 돼 결국 그는 부하 장군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이남종씨의 분신을 두고 박근혜 정권은 적어도 겉으로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신 나간 사람의 무모한 행동'이라며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심 그들로서도 왜 아니 두렵겠습니까? 일개 시민단체도 아닌 검찰의 조사에서 관권 부정선거의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종파를 불구하고 종교계가 한 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씨의 분신자살은 '일탈'이 아니라 분노한 민심의 한 폭발인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5시 29분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이남종(40, 광주광역시)씨가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는 두 플래카드를 내건 채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 사진은 아직 분신 하기 직전 상황으로, 우측에 바람에 날리는 두 플래카드가 보인다. 고가도로 위 왼쪽에 두 사람이 보이는데, 한명은 이씨고 다른 한명은 설득을 위해 출동한 파출소 직원으로 추정된다. 이 사진은 마침 인근을 지나던 한 시민이 찍어 트워터에 올렸다.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5시 29분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이남종(40, 광주광역시)씨가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는 두 플래카드를 내건 채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 사진은 아직 분신 하기 직전 상황으로, 우측에 바람에 날리는 두 플래카드가 보인다. 고가도로 위 왼쪽에 두 사람이 보이는데, 한명은 이씨고 다른 한명은 설득을 위해 출동한 파출소 직원으로 추정된다. 이 사진은 마침 인근을 지나던 한 시민이 찍어 트워터에 올렸다.
ⓒ @flight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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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의 우리 현대사에서 몸을 불살라 저항한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1970년 노동조건 개선을 부르짖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비롯해 90년대에는 젊은 청춘들이 민주화 투쟁의 제단에 몸을 불살랐습니다.

가깝게는 2007년 4월 '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택시운전사 출신의 허세욱씨, 그리고 2010년 5월 '4대강 사업 반대'를 외치며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도 그런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들은 세인들의 기억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쉬 잊히거나 더러는 매도되기조차도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희생이 세상을 바꾼 경우도 많습니다. 1960년 김주열군의 참혹한 죽음이 이승만 정권의 종말을 불러왔으며, 1987년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돼 전두환 정권을 무릎 꿇게 했습니다. 설사 단기적으로 어떤 변혁을 낳지는 못했다고 해도 그들의 희생은 역사 발전의 제단에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이번 이남종씨의 죽음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거꾸로 된 이 사회를 바로 세우는 데 밀알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태그:#이종남 분신, #틱광득 스님, #분신 분신자살, #박근혜 사퇴, #고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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