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메인 포스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메인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우리에게 코미디 배우로 익숙한 벤 스틸러가 주연과 감독을 동시에 맡은 작품이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나 <타워 하이스트>와 같은 최근 그의 행보를 생각해 보았을 때 영화의 분위기와 코드에 대해서 손쉬운 추측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이 영화는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 했던 방향으로 기대하지 못한 놀라운 성과물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벤 스틸러로 기억되는 유머러스하고 밝은 분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자. 다만 우리에게 잠시 잊혀졌던 <청춘 스케치>의 감독으로서의 벤 스틸러를 상기하게 할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미국인 월터 미티는 42세의 싱글남으로 잡지사 <라이프>의 네거티브 필름 담당자로 16년째 일하는 중이다. 하지만 생일날 자신의 회사가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 사업으로 변화를 꾀하면서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는 우울한 소식을 접하게 되고, 동시에 그의 앞으로 배송된 유명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의 필름 중 삶의 정수가 담겨있다는 25번 사진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라이프>지의 마지막 커버 사진이 될지도 모를 25번 사진을 찾기 위해 월터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땅으로 사진작가 숀의 행적을 따라 나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크나큰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영화의 큰 줄기는 아무래도 월터라는 미국의 전형적인 소시민이 겪게 되는 모험과 그 성장이다. 이 과정에는 월터가 흠모하는 직장 동료 셰릴 멜호프(크리스틴 위그)와의 관계도 작용하는데, 사실 이 전형적인 러브 라인보다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월터라는 인물이 갖는 특징이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결국 주목하는 것은 월터 미티로 대변되는 평범한 일반 시민의 삶과 그들이 그 자리에서 일구어온 것들에 대한 노고이기 때문이다.

먼저 월터가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부분부터 살펴보자. 월터가 사진작가 숀의 행적을 쫓아 그린란드까지 가게 된 데에는 그가 16년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으며 자유분방한 사진작가 숀의 세계를 누구보다도 이해해준 사람이었다는 점이 작용한다. 또한 모험 중 좌절의 순간 때마다 남들은 비웃는 월터의 상상력(헬기를 타는 장면)과 일에 관해선 꼼꼼하게 살펴보는 그의 섬세한 기억력(술집에서 헬기 조종사의 손을 알아보는 장면), 그리고 묵묵히 지켜온 자신의 가족들의 관계(배 안에서 어머니의 케이크를 발견하는 장면)가 빛을 발하며 그를 다음 모험으로 이끌어간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린란드에서 끝나고 말았을 출장이 월터에겐 아이슬란드로 넘어가 화산 폭발의 순간까지 맛보는 모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에 관해선 섬세하고 꼼꼼하며 가족과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에 대한 마음을 잊지 않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우리가 평범하고 별 볼일 없다고 여겨왔을 일반 시민의 삶을 영화의 장난기 어린 상상력과 감성으로 폭발시켜서 해체된 단면들을 극적으로 늘여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꺼내들어 바라보는 시선에는 누구보다도 깊은 애정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 프로필에 딱히 기재할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의 삶이 알고 보면 그린란드를 넘어 히말라야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모험을 할 수 있게 할 만큼 특별한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의 원 제목인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중했던 월터 미티의 삶이 비밀이 되었던 것은 우리가 한 개인의 삶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쳐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월터가 셰릴의 아들 앞에서 어렸을 적 실력을 발휘해서 스케이트보드 기술을 선보이지만 정작 셰릴은 그 화려한 기술을 못 보는 장면은 이러한 서글픈 현실을 유머로 끌어안은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이 장면의 아쉬움을 아이슬란드의 도로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게 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빛나게 한 것처럼, 영화는 별 볼일 없이 잊힌 개인의 삶을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판타지의 영역으로 끌어내어 그 안에 담겨진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인지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영화의 이러한 태도는 26번 사진의 비밀과 함께 영화의 결말 부분에 이르러 더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목적 때문에 영화에 드러난 단점들도 많다. 신출귀몰한 사진작가의 행적에는 몇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으며, 한 개인의 평범한 삶의 요소들을 판타지적 모험에 등장시키려다 보니 우연에 기인한 부분이 많다는 점, 캐릭터에 있어서 전형적인 틀을 따랐다는 점,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25번 사진의 존재가 서상의 순서상 확실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월터의 모험을 따라가며 이러한 단점들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벤 스틸러 감독의 연출이 참 맛깔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눈에 익은 다양한 영화 장면의 패러디 사용도 그러하지만 사진으로 남겨두고서 살펴보고 싶을 만큼 잘 이루어진 화면구성, 월터의 상상력과 현실을 적절히 접목시킨 극적인 장면들은 군더더기 없이 훌륭하다. 앞서 언급했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장면에선 진한 감수성을 자극하기도 하며 화산 폭발 같은 장면에선 헐리웃 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스케일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를 관통한 주제의식. 처음부터 끝까지 꿋꿋하게 지켜온 주제의식과 그 시선이 무엇보다 영화를 빛나게 한다. 필름을 현상하던 잡지사가 온라인으로 바뀌는 것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는 변화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다른 역할을 요구하게 되었어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꿋꿋했던 개인의 삶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사람을 사람이 아닌 자원으로 기억하는 한국 사회이기에 그 울림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영화평 월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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