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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은 배추 어는 건 걱정되어도 네 식구 생존이 달린 일자리 문제는 걱정 안되나 봅니다.
▲ "배추 얼어요. 비닐 씌워요." 교장은 배추 어는 건 걱정되어도 네 식구 생존이 달린 일자리 문제는 걱정 안되나 봅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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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초, 제가 이 학교에 왔습니다. 6월 말께 면접 볼 때 일이 생각나네요. 교장선생님과 교감, 행정실장이 같이 면접을 보았지요. 교장선생님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푸근함을 느꼈어요. 꼭, 옆집 아저씨 같이 좋은 인상이었거든요. 행정대체인력이라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되어 기분 좋았고 열심히 일해줘야지 하는 마음가짐을 가졌었습니다.

2013년 7월이 다가오자 저는 다시 고용불안에 시달렸습니다. 전에 있었던 학교에서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듯했습니다. OO초등학교에 어느 교직원의 소개로 학교라는 곳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되었을때 참 가슴 설렜더랬지요. 1년여를 저는 정말이지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1년을 3일 남짓 남겨두고 느닷없이 "정규직 발령 났으니 나가라" 했습니다. 3일 후면 퇴직금 받을수 있었는데 너무 억울했어요.

저는 13년 7월 초에 00학교에 다시 오게 되었어요. 1년을 다시 열심히 일했어요. 또다시 교육청에서 정규직 발령 내버리면 어쩌나 하고 내심 고심을 많이하고 있었는데 아무일 없이 1년이 지났어요.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저는 다시 열심히 일해 왔어요.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에서 '교육공무직 쟁취' '무기계약직 전환' 구호를 외치며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을때 교육청에 문의해 보니 "근로계약이 중요해요. 대체인력으로 근로계약 체결했다면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해당사항 없습니다." 라는 담당자의 답변을 듣고 저는 학교 비정규직이 모두 외치는 교육공무직이나 무기계약직 같은 조건 상승에 대해 단념했습니다.

학교 화단이 학교장 개인 텃밭일까요? 날씨 추워 언다고 비닐 사와 저렇게 덮어 놓으라네요.
▲ 학교 뒤 배추 학교 화단이 학교장 개인 텃밭일까요? 날씨 추워 언다고 비닐 사와 저렇게 덮어 놓으라네요.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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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용직이지만, 6개월마다 근로계약을 재갱신하는 대체인력이고 비정규직 일자리지만 계속 일할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기로 했었습니다. 제발, 교육청에서 제가 다니는 학교로 정규직 발령만 내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정규직이 오면 저는 어쩔수 없이 나가야 하니까요. 근로계약서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쩌겠나 싶었습니다. 제 4조에 그렇게 되어 있더라구요. 계약기간을 6개월로 해놓았고 단서조항을 달아 '계약기간 중이라도 정규직이 발령나면 그 전날까지를 근무일로 한다.'고 명시시켜 두었더군요.

"변주사도 함께 가게 해요. 숫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되는데 뭐..."

지난해 가을 무렵, 전 교직원이 거제도로 1박 2일 일정으로 간다고 했을때 저는 비용부담으로 못간다고 미리 말씀 드렸지요. 그러나 담당 교사분께서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며 같이 참석하게 되었을때 정말 고마웠어요. 그때까진 참 좋았던거 같았어요. 그렇게 좋은 분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을때 저로선 의아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지요. 작년 년말이었습니다.

"변주사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수 없어요."

작년 년말, 오전 11시경 갑자기 행정실서 도장 들고 교장실로 오라는 호출.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교장실로 갔었는데 의례 6개월마다 진행 된 근로계약 재갱신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동안은 그냥 행정실로 불러서 담당 정규직 공무원이 도장 찍고 저에게 근로계약서를 한부 주는 것으로 재계약이 끝났었는데 그날은 좀 이상하더군요. "잘 살펴보라"는 교장선생님 말씀이 있었지만 저는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오늘 13년 마지막 날이라 근로계약을 새로 해야 하고 여기다 도장 찍지 않으면 내년부터 출근할수 없어요."

느낌이 이상했지만 언뜻 계약서를 살펴 보았지만 별반 다른점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냥 좋은게 좋은거라 여겨서 도장을 행정실 정규직원에게 주었지요. 또한, 저는 을이고 교장과 행정실장은 갑이니 어쩔수 없잖아요. 교장실에선 위압감 때문에 눈여겨 못본 문구가 집에와 자세히 보니 눈에 가시처럼 와 박혔어요. 그것이 바로 제 4조 계약기간 이었습니다. 그동안 쓴 계약서와는 다르게 계약기간이 2개월로 축소되어 있었고 한조항이 더 첨가되어 있었습니다. 1항과 2항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1항엔 예전 계약서와 같은 문구가 있었고, 2항은 새로 만든 조항이었습니다.

'2항-본 계약기간 종료와 동시에 근로계약은 자동 해지 된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1항만 가지고는 부족했나요? '"을"의 계약 기간을 2014.01.01.부터 2014.02.28.까지로 한다.(단,근로기간 중이라도 정규직원 인사발령이 있을시는 발령일 전날까지를 계약기간으로 본다'는 문구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데 왜 그렇게 1년 7개월동안 없었던 2항 문구를 갑자기 보충한 이유가 뭣인지요? 제가 뭘 잘못이라도 한건가요? 누가 보아도 저 문구는 "정규직이 발령 나거나 말거나 계약기간 종료일이 자동 해지 일" 이라는 것이잖아요.

교장선생님도 가족이 있고, 가정이 있잖아요. 저도 가족이 있고, 가정이 있습니다. 또한, 중학교 입학하는 아들과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 딸을 둔 학부모 이기도 합니다. 요즘 어지간히 벌어서 자식 키우기 힘들다는거 잘 아시잖아요. 나이 오십줄에 접어 들었습니다. 그나마 잘 다니던 학교 일자리마저 강제로 정리해고 당하면 저는 어떻해요? 자식들 키우느라 생활비가 많이 들어갈 때여서 학교 마치고 주말마다 야간 알바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상이 '법과 원칙'만 가지고 운영되어 지는게 아니잖아요. 도덕이나 윤리, 양심의 가치기준도 있는 거잖아요. 인정사정없는 그 근로계약서 다시 작성하면 안될까요?

"변주사님, 교장 선생님이 학교 뒤에 있는 배추 얼까봐 그러니 비닐로 좀 싸두라는데요."

지난해 늦가을 교장 선생님은 화단에다 배추를 심으라고 모종을 사오셨습니다. 겨울이 되니 걱정이 되나 봅니다. 지난 1월 7일(화) 오후, 교장 선생님 지시라고 행정실 직원이 말했습니다. 저는 비닐을 구해다 나뭇가지를 엮어서 배추를 보호 하려고 비닐로 보온장치를 했습니다.

8일(수)엔 화단 앞에 난 배추도 비닐 포장 하라네요. 울산엔 비가 오네요. 비가 오고 있는데도 비닐 막 씌우라네요. 저는 비를 맞으면서 비닐 막 씌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배추는 외면 않으면서 우리 가족 생존문제는 외면 하는거 같아 참 씁쓸했습니다. 배추 보온장치를 설치 하면서 이 말이 제 가슴속에서 겨울 비바람처럼 시리게, 시리게 되뇌어지고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 제가 이 배추보다 못한 존재인가요? 제가 이 배추보다 가치없는 인간이던가요?"  

울산은 8일(수)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교장은 배추의 생명보호를 위해 얼지 않도록 비닐작업 하라 했습니다. 우리 가족 생계가 달린 제 일자리는 2개월 시한부로 근로계약 했구요. 대한민국 교육자의 <청렴교육>은 그런건가 봅니다. 배추는 보호하고 사람의 생존권은 외면하는.
 울산은 8일(수)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교장은 배추의 생명보호를 위해 얼지 않도록 비닐작업 하라 했습니다. 우리 가족 생계가 달린 제 일자리는 2개월 시한부로 근로계약 했구요. 대한민국 교육자의 <청렴교육>은 그런건가 봅니다. 배추는 보호하고 사람의 생존권은 외면하는.
ⓒ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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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학비노동자, #울산 교육청, #울산 동구 , #배추,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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