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휘재는 자신이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1990년대를 추억했다.

6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휘재는 자신이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1990년대를 추억했다. ⓒ SBS


요즘엔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김구라 등을 잘 나가는 MC로 꼽지만, 1990년대에는 이경규, 김국진, 김용만, 남희석 등이 이들보다 잘 나갔었다. 이휘재 역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1990년대의 대표 청춘스타. 훤칠한 키에 당대 개그맨들 중 유독 말끔한 이목구비를 갖춰 뭇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는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의 한 코너였던 '인생극장'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인생극장'이란 코너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당시 그의 행보는 다른 개그맨들과 달랐다. 여느 개그맨들이 개성 강하고 못난 외모를 과장하고 부각시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던 것과 달리, 그는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브랜드화하며 '롱다리', '이바람' 등의 별칭으로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개그맨이 드라마타이즈 코너에서 여배우와 키스신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당시 이휘재는 김혜수, 최지우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키스하는 것만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화제에 중심에 섰던 스타였다. 말 그대로 '그림이 좀 되는' 개그맨이었다. 희한하게 멜로가 되는 개그맨이었다.

SBS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 KBS 2TV < MC 대격돌 ><상상 플러스>까지. 이휘재는 꽤 많은 프로그램을 히트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때까지 그가 프로그램에 쓰일 수 있었던 것은 '바람둥이' 캐릭터 덕분이었다.

이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른 MC들이 약진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단계를 밟으며 부상한 유재석과 강호동이 있었고, 탁재훈, 신정환, 김제동, 이혁재 등이 신예 MC로 주목받았다. 이휘재의 입지는 자연히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의 이미지는 좀처럼 변할 줄 몰랐다. 아니, 몇 번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대중들과 통하지 못했다.

그는 조여정과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해 기존의 바람둥이 이미지를 벗고자 했지만, 되레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모습만 보여주며 이목을 끌지 못했다. 또,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원조격인 <삼촌이 생겼어요>라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역스타 왕석현군을 돌봤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서인지, 그의 능력 부재 탓인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어느새 그는 전천후로 쓰이지 못하며, 스튜디오 프로그램에만 적격인 '좌식형 MC'가 되고 말았다.

잘나가던 개그맨 이휘재, 왜 1990년대에 머물렀을까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휘재는 세 MC들의 '흑역사'를 폭로하기도 했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휘재는 세 MC들의 '흑역사'를 폭로하기도 했다. ⓒ SBS


6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에 이휘재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은 뜻밖의 게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워낙 토크쇼에 모습을 잘 내비치지 않는 연예인인데다, 자신이 MC를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일화를 개그의 소재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가만히 앉아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방송은 인간 이휘재, MC 이휘재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날 방송에서 이휘재는 초반부터 세 MC 기선제압에 들어갔다. 그가 준비한 무기는 각 MC의 '흑역사' 폭로였다. 그의 입에서 근 20년 전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경규가 원조 <몰래카메라>를 진행하고, 영화 <복수혈전>을 만들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경규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성유리는 그가 꺼내는 전 남친 이야기에 화들짝 놀랐고, 김제동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단어 하나에도 안절부절 못했다. '휘.S.I'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그의 정보력은 세 MC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이어 그는 별안간 스타덤에 올라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1990년대를 추억했다. FD로 방송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연과 이경규 때문에 삭발을 감행했던 굴욕담을 꺼냈고, 탤런트 임상아를 첫사랑이라고 고백하며 그녀와의 풋사랑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바람둥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 데에는 학창시절 뚱보로 놀림 받으며 다이어트에 매진해야했던 남모를 사연이 있었고, 일부 가족력(?)도 존재했다는 사실도 이날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이날 방송은 온전히 이휘재에게 집중된 시간이었다. 세 MC가 끼어들 틈도, 굳이 끼어들 필요도 없이 이휘재는 자신의 토크를 매끄럽게 이어나갔다. 끝이 어딘지 모를 만큼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입담은 썩 괜찮은 웃음 타율을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덧씌워진 '안 웃기는 개그맨'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듯 그는 가열차게 토크를 쏟아냈고, 세 MC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휘재는 새로운 스타일의 개그맨이었다. 개그실력보다는 잘 생긴 외모로 떴고, 댄스와 발라드 곡을 타이틀로 내세운 앨범을 발매했었고, 여성 팬들이 주축이 된 팬클럽을 갖고 있었다. 군에 입대해서도 병영 소재의 드라마로 꾸준히 활동했고, 전역 후에는 '바람둥이'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 속 '못말리는 데이트' 코너를 성공시켰다.

그랬던 그가 톱MC 대열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시상식에서 수상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은 이휘재만의 대표작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재석이 <동거 동락><무한도전> 등으로, 강호동이 <천생연분><연애편지> 등으로, 그리고 이경규가 <몰래카메라>와 <이경규가 간다>로 자신만의 색깔과 능력을 발휘했을 호시절, 이휘재는 90년대의 <인생극장>에만 머물러있었고 그만의 능력을 발휘한 히트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최근에서야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서다. 그는 요즘 결혼과 함께 흐릿해진 바람둥이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고, 부성애를 머금은 가장의 이미지로 쌍둥이 아빠의 성장담을 웃프게 보여주고 있다. 쉽사리 자기 속을 보여주지 않는 연예인인줄 알았는데, 이제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꺼내놓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에 이어 방송될 <힐링캠프> 2부도 그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MC 이휘재의 롱런 비결과 최근 변화하게 된 계기에 대해 속시원히 이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금 늦었지만, 그의 변신이 참 반갑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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