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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눈빛'이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산다. 과학적인 데이터를 들이댈 수 없으므로, 주관적이지만, 최소한 한국과 비교할 때 그렇다.

눈빛은 정서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화날 때, 기쁠 때, 슬플 때 눈빛이 다르다. 눈 모양이 예쁘고, 아니고 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물론 인종에 따른 눈 색깔이나 생김새 차이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수전 에이어, 토니 호프만, 40~50대로 짐작되던 어떤 남성들···. 예를 들자면, 여행길에 만난 이들이 그런 부류였다. 수전과 토니, 무명씨 남성 등과 조우한 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노스 캐롤라이나의 산골짜기에서였다.

수전은 1976년 무렵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니, 지금은 환갑을 넘겼을 게다. 수전은 적잖은 세계 하이커들의 꿈이라는 애팔래치언 트레일(AT) 단독 종주를 일찍이 끝낸 여성이다.

AT는 미국 동부 애팔래치안 산맥의 줄기를 따라 이어진, 편도 4000km가 넘는 산속 길이다. 수전은 20세를 갓 넘긴 나이에 홀로 7개월에 걸쳐 첫 종주를 마쳤다. 그리고 얼마쯤 있다 이번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또 한번 AT를 종주했다. 이도 양에 차지 않았는지, 이후 캐나다와 멕시코를 잇는 4200km 길이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완주했다.

미혼의 수전은 유난히 차분한 눈빛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래도 난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미쳤다'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같은 날 만난 토니는 독일 출신으로 20대 초반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독일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간 적이 있다는 토니는 캐나다에서 시작해 미국을 거쳐 멕시코를 향해 남하하는 중이었다. 남미의 끝까지 갈 계획인데, 여정이 1년 남짓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입이 아니라, 눈으로 "전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하는 짓만 보면 토니 또한 '미친' 부류였다.  

미국에 살면 한국인도 눈빛이 달라지게 되는가? 아니면 원래부터 그녀의 눈빛이 남달랐던가? 노스 캐롤라이나의 벽촌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한국 여성 K는 부처와 시골아낙의 눈빛을 섞어 놓은 듯해 인상 깊었던 사람이다.

"한국에서 친구한테 남편을 뺏기고, 미군과 결혼해 8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K는 한인이 매우 드문 곳에 살고 있었다. 친자식이 없는 그녀는 "60세가 넘은 미국 남편이 스무 살 남짓인 멕시코 아가씨와 사이에 최근 아이를 갖게 됐다"고 말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게다가 그 미소는 어찌 그렇게 인자한지.

과거 서울의 신문사에서 일할 때, 자타가 공인하는 선량한 선배 S가 있었다. S선배가 어느 날, 30여 년만의 초등학교 재경동창 모임에 다녀왔는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여러 친구들이 "너, 경찰 아니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착한 그도 '기자 눈빛'을 감출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성형이 크게 유행하는 한국에서 비슷비슷한 느낌을 주는 유명인사들이 많은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얼굴보다는 눈빛이 유사한 사람들이 한국에는 더 많다. 순전히 개인적인 관찰이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한국과 미국 사람들의 미묘한 차이가 아닐까 싶다.  

토니
 토니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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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호프만. 독일 청년으로 캐나다를 출발해 미국과 멕시코를 거쳐, 남미 땅끝 도달을 목표로 자전거 여행 중이었다. 이미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자전거로 여행해 본 적이 있는 그는 길가에 1인용 텐트를 치고 잠을 자곤 한다고 말했다.

산 사람들
 산 사람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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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이인 두 남성. 빗속에 지쳐 더 걸을 수 없다고 하길래 잠깐 차를 태워줬더니 매우 고마워 했다. 무엇이 이들을 빗길 산행으로 이끌었는지 궁금했다(오른쪽이 수전 에이어). 신장이 150cm도 안돼 보이는 단신이었는데, 편도 4000km가 넘는 북미대륙의 산길을 모두 세 차례나 종주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가을비 산길
 가을비 산길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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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의 등줄기인 애팔래치안 산맥의 능선을 따라난 블루릿지 파크웨이의 한 구간에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왼쪽) 블루릿지 파크웨이는 미국 최초의 시골 '국가 공원 길'로 1935년에 도로 공사가 시작됐다.

표지판과 산하
 표지판과 산하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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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체로키 부족 말로 병기된 도로 표지판. (왼쪽) 체로키 부족은 오늘날의 노스 캐롤라이나 서남부 등지에 살던 원주민이었다. 원주민들의 삶이 선량했던 것은 아름다운 산하의 풍경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sejongsee.net(세종시 닷넷)에도 실렸습니다. sejongsee.net의 또 다른 연재글, '조여사의 촌철살인'도 일독을 권합니다.



태그:#눈빛, #아메리카, #미국, #마음, #성형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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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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