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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감자별>의 한 장면
 tvn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감자별>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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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광탈' 만큼 취업준비생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부모님과의 갈등'이다. 1년 째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나는 서류와 필기시험의 탈락이 반복될수록 위축되었다. '백수'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갔다.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교류도 적어졌다.

이미 취업한 동생은 나 대신 맏이노릇을 하고 있었다. 지난 추석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어린 동생들과 심지어 언니인 내 용돈까지 챙긴다. 고맙고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너무 착실한 동생과 내가 비교가 될까봐 두렵다.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여전히 공부한다고 용돈을 타쓰고 있는 내가 한심하시겠지. 부모님과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우여곡설 끝에 최종면접까지 가게 되었고 나름 잘 봤다고 생각해 나와 우리 가족 모두가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지만..'으로 시작하는 문자의 첫 글자를 보자마자 나는 고개를 떨궜다. 부모님은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언제쯤 취업이 되려나...'하고 걱정하는 날이 많아지셨다. 점차 부모님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가족들이 각자 출근과 등교 준비로 바쁜 아침, 혼자 할 일 없이 집에 있는 것이 싫어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을 향한다. 삼각김밥이나 도시락으로 끼니를 대충 떼우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이 앉아있는 거실을 가로질러 내 방으로 곧장 들어가 다시 책상에 앉는다. 푹신한 쇼파도 널찍한 침대도 불편하다. 같이 어울려 TV를 볼 여유가 없다. 계속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문득, 이래선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이 뭐길래···. 가족들과 사람들 앞에서 풀이 죽은 채 죄지은 것 마냥 살아야 하나.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평소 연락을 하며 친하게 지냈던 S에게 전화를 걸었다. 똑같은 취준생의 입장에서 나의 기분을 이해하고 감싸주길 바라며 내 사정을 이래저래 말했더니, S 왈 "언니, 그건 취업의 문제가 아니라 언니 소통법의 문제 아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취업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법의 문제 아냐?"

계속되는 낙방에 부모님 볼 면목이 없어 대화 자체를 피한 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콕콕 집어주는 그녀.

"자꾸 자존감이 낮아지는 걸 어쩌라고..."
"언니, 취업 안 되는 것보다 가족들이랑 멀어지는 게 더 문제야. 그렇게 소통하는 법을 모르면 취업해서도 힘들 거라고. 지금부터라도 언니가 먼저 부모님께 말을 붙여봐. 언니가 힘들고 답답한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면 부모님도 언니마음 이해해 주실거야."

S도 원래는 부모님과 서먹서먹한 사이였단다. 나이먹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입시에 신경 쓰다보니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졌고 대학에 입학해서야 부모님께 먼저 '문자로' 말을 걸기 시작했단다.

'아빠, 뭐해요?  점심 드셨어요?' 등의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해 요즘엔 거의 매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한단다. 통화를 한 번 하기 시작하면 40-50분을 훌쩍 넘길 만큼 대화할 거리가 많았졌다고.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 그것도 아버지랑 1시간씩 전화통화를 하고 카톡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고? 놀라워 하는 내게 S는 자신이 부모님과 주고 받는 대화 내용을 보여주었다.

"뭐야, 너는 애교 넘치는 딸이네. 나는 이렇게 못한다고."

S도 처음엔 애정표현을 할 때 엄청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자기가 부끄러운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단다. 또 한 번 해보니 그렇게 부끄럽지도 않다고.

S는 어떻게 부모님께 이렇게 애교를 부릴 수 있을까. 나로선 신기할 따름이다.
▲ S와 부모님의 카카오톡 대화 S는 어떻게 부모님께 이렇게 애교를 부릴 수 있을까. 나로선 신기할 따름이다.
ⓒ 구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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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도 처음부터 부모님과 대화하기 부담스러우면 부모님께 카카오톡 메시지라도 보내드려봐. 좋아하실거야."

그리고 배려 깊은 조언도 잊지 않았다. 부모님이 갑작스런 나의 안부인사에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일 수 있으니 거기에 상처받거나 토라지지 말라고 말이다. S는 요즘  부모님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S의 아버지의 관심사인 낚시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단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내가 부모라도 이런 딸자식이 있으면 '취업 좀 늦게 하는 것 쯤이야'라는 생각이 들겠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도 S처럼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아직 부족하고 못나고 소심한 딸자식이지만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아빠, 힘드시죠? 저도 사실은 조금 힘들어요."

금세 '1'자가 사라지고 답장이 왔다.

"그래, 힘들어도 우짜겠노 열심히 살아야지. 같이 힘내자."

그리고 깨달았다. 가족들과 멀어졌던 이유는 내가 '취준생'이라서가 아니라 가족에게 먼저 다가지 못한 못난 딸이어서 그랬구나. 가슴 안 쪽이 저리면서 따뜻해졌다.


태그:#서류탈락, #청년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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