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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 양말을 걸어 놓으면 산타가 몰래 와서 거기에다 선물을 주고 간다고 했다. 하지만우리 집에선 그와 정반대의 일이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에 생겼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아내가 말해오곤 했다,

"여보, 이번에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양말 중 남은 것을 마을 어르신들께 돌릴까봐."

사실 얼마 전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 간호사들끼리 십시일반해서 양말을 샀다. 요양병원 환자 어르신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그 양말을 구입하는 일을 아내가 맡았다. 일명 수면 양말이다. 그 양말을 사면서 아내가 여분으로 더 샀다. 약 스무 켤레를 더 샀다.

"얘들아, 너희들이 하면 어떨까"

인터넷에서 아내가 구매한 수명양말. 저렴하게 구매한 이 양말을 우리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돌리기로 했다.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마치 산타 남매가 양말을 집집마다 돌리듯이.
▲ 양말 인터넷에서 아내가 구매한 수명양말. 저렴하게 구매한 이 양말을 우리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돌리기로 했다.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마치 산타 남매가 양말을 집집마다 돌리듯이.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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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무 켤레를 어떻게할까 고민하던 아내가 내놓은 해답이 바로 마을 어르신들에게 돌리자는 거다. 그렇게 아내가 제안을 했지만, 나머지 우리 식구들(나, 딸과 아들)은 그런가보다 했다. 좋은 일이니 해야겠지만, 그 일을 누가 할 것인가를 서로의 머리에 계산했으리라.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달 거냐를 생각한 사람들처럼.

이때 누가 돌릴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는 내가 냈다.

"얘들아, 너희들이 하면 어떨까."

내 생각은 이랬다. 그동안 간혹 아내와 내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아내가 직접 뜬 천연수세미나 빵 등을 돌리곤 했다. 나와 아내는 더 이상 그런 일에 신선한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 신선한 인물, 바로 딸과 아들이다. 대학생인 딸과 중학생인 아들은 그동안 마을 분들에게 인사만 잘하고 살았기에 이때 점수를 따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설명을 했다. 이 의미는 크게 두 가지라면서. 마을에 이사온 집 아이들로서 어르신들이 우리를 받아 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는 거다. 마을의 공동체 일원으로 함께 살게 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라고나 할까. 마을의 어르신도 부모님처럼 생각하던 그 옛날 수준만큼은 못 되더라도 조금이라도 닮은 모습을 해보라는 거였다.

둘째는, 크리스마스란 예수님의 생일이고, 그 크리스마스의 핵심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해서다. 말하자면 이웃과의 나눔이다. 크리스마스 하면 선물 받는 날로 생각하는 요즘에 더욱 생각해볼 일이다. 나의 아이들에게도 그걸 깨우쳐주고 싶었다. 그것도 산타의 선물을 받는 창구의 대명사인 양말이라 의미가 있지 않을까. 물론 우연의 일치였지만.

어쨌거나 서론이 길었다. 이런 이유를 간략하게 아이들에게 전했다. 아이들은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라 간단하게 말해도 바로 알아듣는다.

"아빠, 1절만."

딸의 지혜로운, 그러면서 날카로운 커트 한 방에 나도 입을 다문다.

크리스마스 이브, 작전은 수행되었다

아내와 나의 제의를 기꺼이 수용해준 아이들이 고맙다. 아마도 2013년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의 가슴엔 나누는 기쁨의 추억으로 자리 잡으리라. 내가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건 이거라는 마음이 든다. 어쨌거나 평생 남매 산타로  살기를 바라면서.
▲ 남매산타 아내와 나의 제의를 기꺼이 수용해준 아이들이 고맙다. 아마도 2013년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의 가슴엔 나누는 기쁨의 추억으로 자리 잡으리라. 내가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건 이거라는 마음이 든다. 어쨌거나 평생 남매 산타로 살기를 바라면서.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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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다. 저녁 7시, 드디어 작전개시다. 양말 뭉치를 꺼내 두 켤레씩 비닐봉지에 따로 담았다. 모두 10봉지에 담았다. 그렇다. 오늘의 미션은 양말 두 켤레씩 모두 10집에 배달을 하는 것.

일단 내가 마을의 약도를 그려 설명을 한다. 이 할머니 댁은 여기고, 저 할머니 댁은 저기고. 약도를 보던 딸아이가 말한다.

"뭐가 그리 복잡해요. 아빠가 말씀하시니 더 헷갈려요."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말한다.

"그럼 내가 길만 안내해줄까."

이렇게 해서 아내가 뒤를 따르고 아이들이 앞섰다. 아내는 단지 가이드일 뿐, 아이들이 집집마다 방문해서 인사하고 전달했다.

"할머니,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감사해요."

이렇게 그 시골 밤에 부리나케 작전은 수행되었다. 요즘 시골 밤은 오후 6시만 넘으면 깜깜하다. 시내처럼 다른 야외 불빛이 없다.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초롱초롱 했다.

이때, 나는 뭐했을까. 집에 있었다. 왜? 말하자면, 본부 사령관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이 돌리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으로서 수뇌부 정도의 역할, 말하자면 배후 세력인 셈이다. 사실 평소 마을 분들과 나는 수시로 마주친다. 체험마을 사무장을 하면서 마을 일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생활 영역이 달라 마을 분들을 볼일이 많지 않다.

이렇게 그 밤에 작전을 수행했다. 크리스마스이브라고 밤늦게까지 놀다가 잠이 들었다.

"애기들 아빠 계셔~" 예상치 못한 노크 소리

그 다음 날 아침, 우리 집 현관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애기들 아빠 계셔~"

아내가 나갔다. 마을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손에는 청국장, 파, 떡국 떡 등이 들려 있었다.

"어젯밤에 아이들로부터 양말 받고서 내 한 잠도 못 잔겨. 너무 고마워서 말여. 그래서 아침에 일찌감치 온겨."

아내는 무안해하면서 할머니의 손을 부끄럽지 않게 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거 아이들한테 용돈으로 줘. 하도 이뻐서 그려."

자그마치 2만 원이다. 아내는 가뜩이나 몸둘 바를 몰랐건만, 이젠 아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내와 나는 난감하면서도 고마웠다. 아마도 자신의 손자들도 하지 않은 일을 하고 간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이걸로 그 사건(?)은 끝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저녁에 아내와 내가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딸아이가 말한다.

"아빠, 저녁에 다른 할머니가 다녀가셨어요."
"그래?"
"근데 이번엔 3만 원을 주고 가셨어요."


헉. 2만 원도 부담스러운데, 3만 원씩이나. 알고 보니, 아이들이 돌린 양말을 받은 할머니 세 명이서 만 원씩 모아서 전해준 거였다. 아이들에게 용돈이나 하라면서. 의외의 반응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한동안 멍해 있었고, 한동안 웃었다.

사실 양말 값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저렴하게 구입했다. 돈으로만 계산하면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정말 남는 장사였다. 나눔을 그렇게 기뻐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분들이 이웃에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그마한 선물 하나가 그렇게 큰 감사와 감동을 주고받을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렇게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태그:#크리스마스, #나눔, #양말, #더아모의집,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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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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