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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부터의 귀환> 책 표지.
 <우주로부터의 귀환> 책 표지.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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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롱 테이크와 극한의 우주 조난 상황을 그려내는 장면들이 마치 관객들마저도 무
중력 상태에 둥둥 떠다니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영화 <그래비티>(2013)를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170만 년에 이르는 인류 역사에서 지구 바깥으로 나가본 겨우 100명 남짓의 우주 비행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인터뷰한 내용을 모은 책<우주로부터의 귀환>이다.

물론 나사(NASA)에서 모든 우주비행이 끝나고 나면, 며칠에 걸쳐서 상세하게 그들이 체험한 모든 것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인터뷰하고 기록한다.

그러나 각 분야 전문가라 해도 이는 전적으로 기술적, 과학적 측면에 한정되어 있을 뿐, 우주 비행사 개개인의 심경 변화라거나 정신적인 경험에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주에 나가 본 사람들은 어떨까? 마치 '나의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인류가 사는 곳을 벗어나서 그곳을 바라보는 것.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은 분명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지 않을까?'하는 호기심이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했다. 덕분에 우주에 다녀온 인류가 공통으로 경험했다는 심리적 정신적 변화와 철학적 성찰은 과연 어떤 것일지, 책장을 넘기는 내내 궁금했다.

인류를 구원할 지구의 아름다움

"지구의 아름다움은 그곳, 그곳에만 생명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리라. 내가 바로 그곳에서 살아왔다. 다른 곳에는 어디에도 생명이 없다. 자신의 생명과 지구의 생명이 가느다란 한 가닥 실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언제 끊어져 버릴지 모른다. 둘 다 약하디 약한 존재이다.

이처럼 무력하고 약한 존재가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아무런 설명 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 신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졌다. 이런 정신적 내적 변화가 우주 안에서 나에게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솔직히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 본문 가운데 우주 비행사의 말

모든 우주 비행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첫 마디는 이것이다.

"지구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콘택트>(1997)에서 조디 포스터가 분한 우주 비행사 앨리는 우주의 황홀경을 보는 순간 "너무 아름다워.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어. 시인이 왔어야 했는데..."라고 중얼거린다. 그만큼 인간이 우주로 나간다는 것은 형용할 수 없을만치 극적이고도 특별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우주비행사들은 지구의 아름다움에 하나 같이 큰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냉철한 판단에 방해가 될 수 있는 감수성을 '닫는' 훈련을 받아왔고, 철저하게 이성적 논리만을 발전 시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지구가 갖는 아름다움은 그들의 본질적인 관심사나 임무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지구는 그들에게 과학적, 수학적으로 분석되고 계산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압도한 첫 번째의 공통된 사실은 '아름다움'이었다. 

책 속에 나온 우주 비행사들 가운데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토록 강렬하고 충격적인 아름다움은, 곧바로 과학의 가설들을 넘어서는 어떤 절대적인 의지, 정신을 떠올리게 했다. 그걸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신의 존재다. 여기선 '신'이란 우주 영혼, 우주 정신이라고 해도 좋다. 우주 지성이라 해도 좋다. 혹은 어릴 적 어머니, 할머니가 말해 주었던 조물주도 해당되겠다. 누군가는 신의 얼굴을 손으로 만졌다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고, 신이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우주여행을 하고 온 사람들 중엔 적극적인 성직자가 된 사람도 있고, 불가지론자(사물의 궁극의 실재, 절대자, 무한자, 신은 알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철학자적 입장)가 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일 종교에 속하는 인격신이 아닌, 우주 지성이라 불릴 수 있는 영적인 기운으로서의 신, 우주 만물에 관통하는 우주 정신에 대한 광범위한 믿음을 갖게 된다. 무신론자가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았을 때 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마치 인간의 체내에 있던 박테리아가 체외로 나가 처음으로 인간의 전체 모습을 보고, 그것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받은 충격과 같은 것이다. 지금 현재 어딘가에서 인간과 인간이 영토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보 같은 짓처럼 생각된다. 아니, 정말 바보다. 소리를 내서 웃고 싶을 정도로 그것은 바보 짓이다." - 본문 가운데

우주 공간에서 바라보면 당연히 지구 위의 국경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바라보노라면 국경을 나누고, 서로 총구를 겨누어 전쟁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일인지를 느낀다고 그들은 입 모아 말한다.

우주에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본질만이 보인다. 우주비행사들은 우스개소리로, 당시 냉전 중인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를 우주선에 태워서 지구를 바라보게 하면 당장 냉전이 멈추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정신적 인간으로의 진화

종교를 구분하고, 서로 분쟁을 벌이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스워진다.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공식적으로는 기독교 신자들이다. 미국인들은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이고, 이들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 국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람들로 선발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실제로 신앙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공식적으로는 주류 교파에 속하는 기독교 신자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러나 단 한두 사람을 제외하곤, 우주로부터 귀환한 뒤에는 기독교란 좁은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두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지구의 곳곳에서 진행되는 탐욕과 무지로 빚어지는 지구에 대한 파괴, 그것에 대한 분노는 이들의 이후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곤 했다. 이들 가운데는 평화운동가, 환경운동가가 된 사람도 있고 시인, 화가가 된 사람도 있다. 비즈니스계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번 사람, 우주인의 명성을 정치가가 되는데 사용한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또 하나의 사실은 이들은 우주여행 이후 모두 다른 삶, 보다 정신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다.

멈출 줄 모르는 오염, 파괴, 전쟁 등 요즘 우리나라 대기에 흔히 몰려오는 뿌연 스모그처럼 암울하기 만한 인류의 미래에 대해 한줄기 희망적인 메시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영화 <그래비티>의 라이언(산드라 블록)이 우주에서 치열한 노력을 하며 지구로 귀환해 다시금 '삶의 재탄생'을 해내듯 말이다. 어떤 이가 책의 추천사로 쓴 글이 기억에 남는다.

"종교가 없는 내게 성경과도 같은 책."

덧붙이는 글 | <우주로부터의 귀환> | 지은이 다치바나 다카시, 옮긴이 전현희| 청어람미디어 | 2002-02 | 12000원



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청어람미디어(2002)


태그:#우주로부터의 귀환, #우주비행사, #다치바나 다카시, #그래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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