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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초순 내 모교(충남 태안읍 태안고등학교) 동문회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글을 하나 썼습니다. 처음으로 받은 고교 동문회 청탁이었습니다. 그 글이 동문회보에 실렸다고 하는데, 동문회보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지난해 12월 8일 저녁 모교 강당에서 열린 동문회 송년모임 겸 동문회장 이·취임식 행사에서 배포가 되었다는데, 나는 '대전가톨릭문학회' 행사 관계로 출타를 해서 동문회보를 보지도 못했지요.

 

그 후로 나는 그 글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12월 초 그 글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1년 전의 내 '생활일기'을 읽어보니 동문회보에 글을 썼던 얘기가 나오더군요. 나는 하루 생활을 시작하면서 맨 먼저 하는 일이 지난해 오늘의 내 생활일기를 읽어보는 일입니다. 1년 전 오늘의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또 나 자신을 점검해보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1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1년 전의 고교 동문회보 글을 컴퓨터 안에서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읽어보니 요즘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내 나름의 진심어린 답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오마이뉴스> 지면에 올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982년 '등단'이라는 것을 했으니 어느덧 작가생활 30년을 헤아리게 됐다. 비교적 늦은 삼십대 중반 시절에 여정을 잡았기에 이제 석양을 바라보는 지점에 이르게 됐다.

 

소설로 등단했지만, 끊임없이 시를 사랑했다. 젊은 시절에는 모국어로 빚어진 명시들을 100수 넘게 외우기도 했다. 세월과 함께 거의 잊어먹고 지금은 30수 정도가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지금도 그 시들을 이런저런 자리에서, 또는 아내와 단 둘이 먼 길 나들이를 하면서, 또는 혼자 산길과 들길, 해변 길을 걸을 때 즐겨 낭송하면서 동무 삼기도 한다.

 

시도 꽤 많이 지어서 2008년에는 <때로는 내가 하느님 같다>라는 '신앙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 지금까지 16명 시인들의 시집에 '평설'이라는 이름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지은 시들 중에는 '목적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얼마 전에 한번 헤아려 보았다. 한 권 분량이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특별한 목적에 의해 지어진 시들이다. 대개는 무슨 행사나 모임 자리에서 낭송을 하기 위해 지은 시들이다. 축시, 헌시, 추모시, 조시 등등이다. 이런 목적시들만을 모아서 시집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많은 시인들이 지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집들이 이 땅의 산하를 장식하고 있지만, 목적시들만을 모은 시집은 아직 없는 것 같은데, 맞는 말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목적시들만을 모은 시집을 만들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싶어 또 한 번 '모험'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 8월 <불씨>라는 목적시집을 출간했다. 

 

내 목적시들은 대개 이 땅의 현실상황 속에서 빚어진 뜨거운 '기도'들이다. 절절함과 치열함을 지닌 눈물겨운 절망과 희망의 변주곡들이다. 석양빛 속에서 더욱 뜨겁게 살고자 하는 간절한 외침이기도 하다. 감히 진실과 정의, 참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불씨'를 되살리고 나누려는 심정으로 나는 목적시집 <불씨>를 펴냈다.

 

그런데 목적시집 <불씨>안에는 우리 고장과 관련하는 시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지은 시기와 용처는 제각기 다르지만, 하나같이 '태안'이라는 지명이 꽃처럼 피어 있는 시들이다.

 

또 우리 고장과 관련하는 시들 가운데는 내 모교 태안고등학교에 관한 시도 한 편 자리해 있다. 1993년 태안고등학교 개교 3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지은 <그 이름 태고, 미쁜 나무여>라는 시이다. 태안고등학교에서 내게 청탁을 해서 지은 시인데, 그해 태고 교지 <백화> 제4호의 첫 머리를 장식해서, 나는 지금도 20년 전의 그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나는 태안고등학교 제2회생으로 1964년에 입학해서 1967년에 졸업했다.

 

나는 꽤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데, 내 개인저서들과 공동저서들, 그리고 내 글이 실린 갖가지 책들을 따로 두 개의 책장 안에 보관하고 있다. 그 별도의 책장들 안에는 내 모교 태안고등학교의 교지들도 있다. 물론 내 글이 실린 교지들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장 안의 모교 교지들을 찾아보니, 1988년에 나온 <백화> 제3호에 콩트 <교실 안의 스컹크>와 단편소설 <선생님 도시락>이 실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교 재학시절에 지은 글들이었다. 또 1993년의 제4호에는 개교 30주년 기념축시 외로 내 고등학생 시절을 뒤돌아보는 <눈물겨운 추억들>이라는 글도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1972년의 <백화> 제2호에도 <이 생각 저 생각>이라는 제목의 어설픈 글을 썼던 기억이 나서 책장 안을 뒤져 <백화> 제2호를 찾느라고 어지간히 수고를 해야 했다. 겨우 책을 찾아 내 글을 읽어보니 정말 엉성한 글이었다. 그전에 나온 <백화> 창간호는 인쇄물이 아닌 등사물이었다고 하는데, 내 기억에도 없거니와 내 책장 안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태안고등학교 초기 동문으로서, 또 태고 출신 문인으로서 모교의 교지에 여러 번 글을 썼던 내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동문회보에 글을 쓰게 됐다. 고교 졸업 후 45년 만에 처음 맛보는 일이다.

 

나로서는 일찍이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눈을 크게 뜨고 사통팔달을 보며 사는 후배님들이 있어 난생 처음 동문회보라는 것을 접할 수 있게 됐다. 한편으로는 면구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 한량없다. 편집 책임자에게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고마운 마음과 함께 내가 너무 염치없다는 생각도 냉큼 들었음을 고백치 않을 수 없다.

 

태고 출신 문인이요 유일한 소설가이지만, 대성을 못한 처지라 거기에서 오는 면구스러움도 크다. 내가 헌걸스러운 작가라면 모교의 명예에도 확실하게 일조할 수 있을 터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묘한 자괴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나는 여유와 겸허함과 희망 따위를 잘 간종그리고 있다. 오늘의 성과와 업적만이 전부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승을 떠난 후에라도 빛을 발할 수 있는 법이니, 오로지 정진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뜨겁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내 문학과 삶을 일치시키고 싶은 소망을 뜨겁게 안고 오늘을 살아간다. 나는 현명함과 정의로움과 용기와 절제를 줄기차게 추구하며 산다. 의로운 분노를 적절히 가다듬고 표출하며 석양 무렵의 삶을 뜨겁게 가꾸고 있다.

 

그리하여 '길 위의 기도'들을 많이 바치며 산다. '오체투지'라는 고행으로도 많은 기도를 바쳤고, 서울의 용산참사 현장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거리에서,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공주 금강 변에서, 제주도 강정에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무수히 기도를 바쳤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내 목적시집 <불씨>에는 내 뜨거운 '길 위의 기도'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오늘을 뜨겁게 사는 내 삶의 모습들이 인터넷 상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심심찮게 갖가지 반응들을 접한다. 나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반응들도 많지만 적대시하는 시비도 많다.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다.

 

한 번은 한 사람이 내게 왜 그렇게 사느냐는 의문을 표해왔다. 비난 섞인 비아냥조의 질문이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어떤 말도 그에게 온전한 대답이 될 수 없을 터였다.

 

나는 잠시 난감함과 황당함 속에서 그를 무시해 버리고도 싶었으나, 이윽고 그에게 신작시 한 편을 보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랑 시 한 편만 보냈다. <무심하지 않기 위해 그 길을 걷는다>라는 제목의 시였다. 지면 관계상 그 시를 여기에 소개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시가 내가 그에게 답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일에 무심하지 않고자 한다. 세상일에 무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고 눈물을 흘리거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생명과 평화를 위해 부당하고 불의한 것들에 맞서 싸우는 자세를 나는 죽는 날까지 올곧게 유지할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읍 태안고등학교 동문회보(2012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녕들 하십니까?, #태안고등학교 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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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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