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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던 할매들이다. 이전에는 욕은커녕 큰소리도 내지 못했던 할매들 (입에서) 지금은 욕부터 튀어 나온다. 왜 이렇게 됐나. 송전탑 때문이다."

"철탑은 계속 올라가는데, 경찰에 막혀 꼼짝하지 못하다 보니 더 불안한 것이다. 미래가 없는 주민들이다. 그러다 보니 절망하게 되고 …."

15일 영남루 맞은편 밀양교 옆 인도에 있는 고 유한숙(74) 할아버지의 시민 분향소에 나온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한 말이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불안감에다 우울함까지 가지고 있다.

'음독 자살'했던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고 유한숙(74살) 할아버지의 시민 분향소가 영남루 맞은편 밀양교 옆 시계탑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데, 11일 저녁 주민들이 시민단체인 '너른마당'에서 가져온 밥을 나눠 먹고 있다.
 '음독 자살'했던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고 유한숙(74살) 할아버지의 시민 분향소가 영남루 맞은편 밀양교 옆 시계탑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데, 11일 저녁 주민들이 시민단체인 '너른마당'에서 가져온 밥을 나눠 먹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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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3명이 벌써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끊으려고 했다.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농사짓던 고 이치우(당시 74세) 할아버지는 2012년 1월 16일 분신 자살했고, 상동면 고정리에서 돼지를 키우던 고 유한숙(74세) 할아버지는 지난 2일 음독 자살을 시도했다가 6일 사망했다. 그 후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단장면 동화전마을 권아무개(51. 여성)씨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96번 공사장 옆 황토방농성장에서 수면제와 약을 다량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권씨는 현재 병원에서 위세척 과정을 거쳐 치료 중이며, 다행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한전, 송전탑 공사 계속 ... 15일까지 3개 완공

한편 한국전력공사는 송전탑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한전은 신고리원자력발전호 3․4호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경남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가져가기 위해 송전선로 공사를 벌이는데, 밀양 4개면(산외·부북·상동·단장)에 총 52기의 철탑을 세울 예정이다.

지난 10월 2일 공사를 재개한 한전은 15일까지 3곳 현장에 철탑 조립을 마무리지었다. 한전은 지난 11월 25일 단장면 고례리에 있는 84번 철탑을 완공했고, 12월 15일에는 같은 면에 있는 81번과 89번 철탑을 마무리 했다.

음독 자살한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고 유한숙(74) 할아버지를 기리는 '제1회 추모제'가 11일 저녁 밀양 영남루 계단에서 열렸는데, 주민들이 촛불을 들고 앉아 있다.
 음독 자살한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고 유한숙(74) 할아버지를 기리는 '제1회 추모제'가 11일 저녁 밀양 영남루 계단에서 열렸는데, 주민들이 촛불을 들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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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1개 높이는 100m가 넘고, 무게는 150t 안팎이다. 한전은 지금까지 16곳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계속해서 작업 현장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내년 여름철 이전까지 모든 철탑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대부분 철탑 공사에 필요한 장비와 자재를 헬기로 이송해 작업했다. 81번, 84번, 89번 철탑은 멀리서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다. 한전은 고 유한숙씨가 음독자살을 시도한 날과 사망한 날에도, 권아무개씨가 자살을 시도한 날에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불안감과 우울, 공포증의 강도가 더 심해"

한전은 지난 5월에는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가 10여일만에 중단했는데, 이번에는 지난 10월 2일 공사 재개 뒤 현재까지 77일째 계속하고 있다. 이런 속에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투쟁·농성도 계속되고 있다.

10월 2일 공사 재개 뒤 현재까지 주민 56명이 농성하거나 경찰과 충돌과정에서 다쳐 병원에 후송되었다.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망하고, 다른 1명은 자살을 시도했다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또 경찰 조사를 받았거나 조사 대상인 주민도 수십명에 이른다.

주민들은 지난 5월 공사 때보다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보건의료단체연합 소속 의료인들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건강진단한 결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고위험군이 69.6%로, 이는 9·11테러 뒤 미국 국민들의 4배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8일 오후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음독 자살한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유한숙 할아버지의 분향소를 밀양루 맞은편의 밀양교 옆에 설치하려고 하자 경찰이 막아서면서 충돌이 벌어졌는데, 이때 천막이 파손되었다.
 8일 오후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음독 자살한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유한숙 할아버지의 분향소를 밀양루 맞은편의 밀양교 옆에 설치하려고 하자 경찰이 막아서면서 충돌이 벌어졌는데, 이때 천막이 파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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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밀양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매우 심한 우울증' 17.7%, '매우 심한 불안증' 30.4%, '매우 심한 공포증' 29.1%로 나왔다.

지금은 더 심하다는 것. 지난 6월 밀양 주민 건강조사에 참여했던 이상윤 의사는 15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최근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지난 5월보다 훨씬 더 격렬한 갈등이 있었고, 그것이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보니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 높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주민들의 정신건강이 지난 5월보다 훨씬 더 나빠졌다고 보는 게 보편적이다"며 "불안감과 우울, 공포증의 강도가 더 심해지고, 극한의 상황까지 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11월과 12월 두 차례 밀양을 찾아 주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했던 홍정수 신부(성공회, 마음복지관)는 "밀양 주민들은 공동체에 문제가 있고,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은 경찰, 밀양시와 대치하는 국면이고 싸우는 상황이고, 현장에서는 죽음 이야기가 쉽게 튀어 나온다"며 "수세에 몰릴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게 자살인데, 밀양 주민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재해나 재난을 맞았던 사람은 한 번만 겪고 나면 지나가버리고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치료하면 된다는 매뉴얼이 있는데,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같이 상황이 계속 진행될 때는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주민들을 치료해야 하기에, 심리치료사들과 함께 다음 주에도 밀양에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음독 자살'했던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고 유한숙(74살) 할아버지의 시민 분향소가 영남루 맞은편 밀양교 옆 시계탑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데, 11일 저녁 주민들이 시민단체인 '너른마당'에서 가져온 밥을 나눠 먹고 있다.
 '음독 자살'했던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 고 유한숙(74살) 할아버지의 시민 분향소가 영남루 맞은편 밀양교 옆 시계탑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데, 11일 저녁 주민들이 시민단체인 '너른마당'에서 가져온 밥을 나눠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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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소송을 맡기도 한 박훈 변호사는 "지금 주민들을 만나 보면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심하게 말하면 폭발직전이라고 본다"며 "정부와 한전은 공사를 계속할 게 아니라 사회적 기구를 만들어 대화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14일 '호소문'을 통해 "집단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다"며 "이번 10월 이후 엄청난 탄압 속에서 주민들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제발, 밀양 주민들의 고통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정부와 한전을 향해 '이제 그만!'을 외쳐 달라"고 호소했다.


태그:#밀양 송전탑, #한국전력공사, #보건의료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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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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