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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는 많은 달동네가 존재한다. 서울처럼 재개발 '열풍'이 불지 않은 대전 달동네에는, 여전히 가난의 흔적이 구석구석 남아있다. 다닥다닥 산 기슭에 자리잡은 달동네 마을은 고단한 현실의 삶을 상징한다. 그래서일까. 대전 쪽방촌, 달동네를 바라보는 마음은 연민이다. 대전 동구에 위치한 천동(토천 5길)도 그런 곳이다.

 

산 기슭(천동24-4, 천동1-6)에 자리한 토천5길, 하지만 이곳은 뒤로는 고속철도 공사로 길이 막혀있고, 주위로 고층의 천동, 효동, 신흥(마을)지역 아파트가 쭉 둘러쳐져 있다. 그렇기에 토천5길은 흡사 대전의 외로운 섬처럼도 보였다. 지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고립된 듯한 달동네, 천동 '토천5길'을 찾아갔다.

 

천동 '토천5길' 가는 길에 만난, 이상한 풍경들

 

12월 4일, 겨울 밤 천동 '토천5길'을 찾아가는 길, 주변의 한 식당가 골목에서 걸음이 멈춰섰다. 어둠이 내려앉는 밤에 비친 한 줄기 빛, 그 속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시선이 갔다. 추위를 잊고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득한 삶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몇 차례 더 찾아갔던 '천동', 그런데 목적지 천동을 찾아가는 과정은 매번 더뎠다. '천동 가는 길'에 마주친 특색있는 풍경이 발길을 멈추게 했기 때문이다. 대전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이색적인 정경들, 변동 3길에서 마주한 한 주택의 깨진 창문과 대문, 그리고 그 앞에 놓여진 의자가 바로 그랬다.  

 

또  '행복'이라는 이름이 붙은 비디오가게 간판과 수석 가게, 그리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벽을 4개의 지지대로 세워둔 담, 천동 가는 길은 '이상한 나라'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천동 가는 길에 나타난 두 갈래 길, 머릿속에는 어디로 가야 목적지에 잘 갈 수 있을가? 혹여 길을 잘못 들었다가 공연히 고생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천동'가는 그 길에 마주한 갈림길은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같은 곳을 향해 갈 수 있었다. 천동 가는 길에 마주친 갈래길은 내게 '어디로 걷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걷느냐라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줬다. 논쟁, 정쟁에 열을 올리는 우리 사회의 반쪽짜리 어른들에게 한번쯤 말해주고픈 '천동 가는 길'의 교훈이었다.

 

대전의 외로운 섬 하나 '천동'

 

천동(토천5길)은 한 야산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토천 5길로 들어서는 입구, 전봇대에 나무가 굽이굽이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 특색 있었다. 주민 소화기함 옆에는 담 없이 벽면 역할을 동시에 하는 벽에 회벽이 칠해져 있어 눈길이 갔다. 담 이곳저곳에는 이삿짐센터 홍보를 하는 문구가 소개되어 있다.

 

토천 5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눈에 띄는 것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다. 마치, 부모와 자녀처럼, 오토바이와 3대의 자전거는 서로 오밀조밀 붙어 있었다. 이곳, 토천 5길에서는 유독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많았다. 대전 소제동에 '폐품' 파는 리어카가 유독 많은 것처럼, 아마 토천 5길 사람들은 자전거가 생활의 필수품인 모양처럼도 보였다.

 

길을 오르는 동안 길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집들의 풍경은 눈에 띄었다. 그런 낮은 집들 중에는 지붕 부서진 집들이 적지 않았다. '지붕개량전문'이라는 광고 문구가 동네 곳곳에 붙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길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는 '토천 5길' 거리에는, 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렸다. 토천 5길은 저녁때 유난히 어두운 동네였다. 거주하는 이들이 많지 않는 듯 보였다. 빈집이 많아서일까. 불빛도 드문드문 보였다.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만 불이 꺼진 집도 있었다.

 

전기가, 지붕이, 여유가 결핍 된 토천 5길 주택이 반으로 잘린 듯, 위태롭게 자리잡은 토천 5길 한 주택 옆으로 대전 도심의 불빛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달동네 천동의 단절된 모습과 대전 도심의 화려한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였다.

 

폭설 내린 날, 달동네는 여전히...

 

이틀 뒤인 11일, 폭설이 내렸던 날에 천동을 다시 찾았다. 천동 달동네 주택의 지붕은 하얀 세상이 내려앉았다. 하얀색 물감으로 이곳저곳을 채색한 듯 한 마을은, 겨울 달동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며칠 전 보았던,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3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앉는 자리에 위로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는 것이었다. 눈이 내리면 가파른 곳에 사는 달동네 사람들의 삶은 좀 더 불편해졌다. 주의하지 않으면 넘어지기 십상, 눈 내리던 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찔해 보였다.

 

10m 앞을 알리는 교회 간판이 붙은 토천 5길, 어느 계단 길은 부서져 제대로 오르기도 힘들어 보였다. 간신히 계단에 올랐지만 간판에 안내되어 있던 교회의 모습은 사라져 버린 듯 했다. 이미 살지 않는 폐가의 모습이 마을을 더욱 휑하게 만들었다. 토천5길에서 밤이면 보이는 도심의 야경, 수많은 붉은 십자가가 정작 그들 마을에는 없었다.

어쩌면 대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일지 모르는 천동 토천 3길, 붉은 십자가조차 사라진 그곳, 하지만 토천 5길은 여전히 온기가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얇은 벽 틈으로 들려오는 대화 소리가 천동을 탐사하는 내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런 사소한 것들이, 달동네의 겨울을 나게 하는 '난방' 재료일지도 모르겠다.

 

11일 천동 토천 5길 오후 다행히 따뜻한 햇살이 떴다. 덕분에 대전의 외로운 섬 같던 천동에 내리쬐는 햇살은 눈을 녹여냈다. 천동 달동네는 또 그렇게 2013년의 겨울을 녹여내고 있었다.


태그:#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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