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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빈병과 폐지를 주워 지역에 100만 원 이상씩을 쾌척하고 있는 문승관(56ㆍ남면 신장리)씨.
 매년 빈병과 폐지를 주워 지역에 100만 원 이상씩을 쾌척하고 있는 문승관(56ㆍ남면 신장리)씨.
ⓒ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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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빈병을 사랑이라고 했나, 누가 굴러다니는 한낱 깡통을 따스함이라 명명했나. 벌써 15년째 지역 주민들을 위해 폐지를 줍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결혼 10년차에 얻은 금쪽같은 딸과 아들을 키우는 재미에 하루 24시간도 부족할 그지만 지역의 눈물과 고달픔을 몸으로 먼저 느끼고 달래는 시간에 더 빠져 지낸다는 그.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 충남 태안군 남면 폐지아저씨 문승관(56)씨 이야기다. 지난 6일 이날도 어김없이 폐지며 빈병을 줍느라 작업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문씨는 차가운 바람에 양 볼이 빨갛게 된 얼굴로 취재진을 반겼다.

30여년 전 이곳 남면농협 옆 창고에서 공업사 일을 시작해 15년 전 문을 닫은 이후 이 공간은 줄곧 폐지며 빈병이 모이는 창고가 됐다.

그가 다른 봉사자들과 달리 더욱 특별한 이유는 직접 몸으로 뛰어 값지게 얻은 돈을 지역에 쾌척한다는 것.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문씨는 몽산포항과 몽산포해수욕장 등을 주로 돌며 빈병과 숨바꼭질을 한다. 이렇게 주워온 병이 연간 2만 개에 달하는데 돈으로 환산하면 80만 원 상당이 된다.

많은 병들이 모이다보니 병을 수납할 박스 50개도 농협에서 직접 구입해 보관하고 있다. 한 푼 두 푼 모아진 돈은 별도의 통장에 예금돼 연말이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그 순간이면 여름철 썩은 음식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수고도 까맣게 잊게 된다고. 그 보람이야말로 어찌 다 형용할 수 있으랴.

문씨가 이렇듯 지역봉사에 뛰어든 건 자그마치 15년 전 일이다. 그날은 외상값을 받기위해 한 시골 어르신 집에 들렀었는데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누워있는 어르신을 보곤 마음이 한없이 측은해졌다고 한다.

곧장 쌀 한 포대를 짊어지고 다시 방문한 문씨. 그 어르신의 고마워하는 마음이 문씨에게 온전히 전해졌다. 그날 이후로 문씨는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역에 어려운 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가 알아 주냐고 동네사람들한테 욕도 많이 먹었죠. 하지만 알아줘서 하나요? 제 마음이 편하고 좋으니까 하는 거죠."

이런 그의 봉사가 10년이 넘고 또 다시 5년이 흘렀다. 지난해부터는 동네 후배인 김종실(54)씨가 문씨와 함께 거리에 나서면서 좀 더 수월해졌다.

"아무래도 혼자 빈병을 주워 나르는 것보다 둘이 하니까 훨씬 수월하고 편하죠."

처음 문씨가 빈병이며 폐지를 주울 때만 해도 연간 20만 원 정도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빈병이 늘더니 지금은 100만 원이 넘는 돈이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지고 있다.

"50만원이던 돈이 그 다음해에는 70만원, 100만원 이런 식으로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100만원이 훨씬 넘죠."

제아무리 봉사도 좋다지만 한편으로 봉사 수익 전부를 지역에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래도 문씨는 자신의 통장과 봉사통장을 따로 만들어 보관할 만큼 지역봉사에 있어선 철두철미하다.

"저야 뭐 바다에 나가 꽃게며 주꾸미를 잡으면 우리 가족 생계유지에는 이상 없어요. 봉사를 이렇게 하도 하니까 사람들이 복 받아서 조업도 잘 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진짜 그래요.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딸, 아들도 공부는 못하지만 다들 착하고 저도 하는 일이 잘 되요. 이게 다 제 복 덕분인가 봐요(허허)."

남면남성의용소방대원으로도 활약하며 20년째 대복을 입고 있는 그는 이날도 낡은 의용소방대 점퍼에 까칠해진 손으로 빈병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관광객들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좀 잘 지켜줬으면 하는 거예요. 특히 여름철에는 음식쓰레기와 빈병들이 뒤섞여 작업 하다보면 속이 매스꺼울 때가 종종 있어요. 참, 그럴 때면 이걸 내가 왜하고 있지? 하고 헛웃음이 나온다니까요."

인생은 쓰지만 봉사는 늘 달콤하고 값지다는 문씨. 그런 그의 웃음이 언제고 남면에 이어질 수 있길, 또 세상의 온도가 지금보다 더 올라갈 수 있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미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안, #문승관, #남면, #폐지아저씨, #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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