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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는 세계문화유산을 두 군데 보유하고 있다. 북부에는 1995년에 루앙프라방이, 남부에는 2001년에 참파샥 왓푸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북부 루앙프라방은 영어권 웹사이트 및 뉴욕 <타임> 선정 '지구인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도시'로 9년 연속 선정되는 등 이미 세계적으로 알리진 덕분에 관광객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도시 전체가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흡사 고대 도시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특히 생활상이 과거의 모습 그대로다. 도시 외곽 지역의 라오몽 거주 지역도 풍토·토양·생활습관이 과거 그대로다.

1353년에 수도가 된 루앙프라방은 1560년에 비엔티엔에 수도 자리를 내줬지만, 500년 전 수도답게 몇 세기를 거치면서도 왕궁과 사원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비엔티엔 지역 및 전국토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때에도 루앙프라방 만큼은 독자적인 왕국으로 인정받아 자체적으로 도시를 관할했기에 문화유산의 훼손을 막을 수 있었다.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푸시, 에메랄드의 찬란한 문화유산 왓씨엥통 그리고 인근의 꽝시 폭포는 관광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앙프라방의 왓시엥통
 앙프라방의 왓시엥통
ⓒ CNP문화재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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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참파샥 왓푸는 동남아시아의 모든 문화 경로의 역사 그 자체다. 인도에서 발현한 불교가 라오스를 거쳐 태국과 베트남 등지로 번져나갔는데, 바로 이 참파샥 왓푸가 그 역사의 증거다. 왓푸는 앙코르와트 사원처럼 힌두교와 불교 그 공존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소카 왕에 의한 불교 전파는 힌두 사원을 불교 사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고스란히 바라만 제국의 앙코르와트로 이동하였다. B.C. 700년 무렵 캄푸치아 바라만 제국의 왕은 라오스 남부 폰파팽 지역을 점령하고, 왓푸 사원까지 진격한다. 하지만 초대 왕들은 남부 팍세의 황량함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남부 아시아를 지배했던 자야바라만(Jayavarman 7세)은 웨엥짠까지 진격했고, 이 왓푸 사원을 모델로 앙코르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앙코르와트의 전신이 참파샥 왓푸인 셈이다.

참파샥 왓푸
 참파샥 왓푸
ⓒ CNP문화재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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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한국의 IMF 사태 직후 한국인들이 대거 라오스로 건너갔다고 한다. 한국과 라오스 간 문화유산 교류 사업이 진행된 것은 이런 민간인들에 의해서다. 그후 2010년 당시 문방위원장이었던 정병국 의원이 라오스를 방문하여 브아손 총리와 함께 한-라오스 문화유산에 관한 국가 간 양해각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음에 따라, 한국 정부와 라오스 정부 간 문화유산에 관한 기본적인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당시 라오스는 인근 캄보디아와 문화유산 교류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던 일본과 문화유산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왓푸에 박물관을 지어주고, 도심의 길을 닦아주는 등 일본은 앙코르와트(11세기)보다 무려 5세기나 앞선 왓푸(6세기)의 유물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당시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정병국 의원이 '타일랜드의 국보 1호가 라오스 왓시사켓 사원에서 가지고간 에메랄드 불상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에서 소중한 이조 다완을 가져가 최고의 문화유산을 만들어 놨다. 이런 제국주의의 횡포에 맞서 '아픈 역사를 가진 민족끼리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브아손 총리를 설득해 한국과의 문화유산 교류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정병국 의원(왼쪽)과 브아손 총리(오른쪽)
 정병국 의원(왼쪽)과 브아손 총리(오른쪽)
ⓒ CNP문화재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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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참파샥 왓푸 지역의 홍난시다 사원 복원 문제를 라오스 정부와 협의 하에 한국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문화재청으로서는 최초의 해외진출 사례라 볼 수 있다. 참파샥 왓푸는 캄푸치아의 앙코르와트처럼 석조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앙코르와트보다도 무려 5세기를 앞선 동양 최초의 힌두사원에서 불교사원으로의 변모를 거쳐 온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893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왓푸는 무분별한 도굴과 훼손으로 사원 전체가 무너졌다. 수십만 점의 에메랄드 유물이 태국과 프랑스의 손에 넘어갔다. 입구를 표시하는 표지석은 흡사 유령의 도시처럼 무너졌고, 사원은 곳곳이 폐자재로 쌓여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실됐다. 험난한 역사의 전개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무너진 사원의 모습은 제국주의 침략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참파샥 왓푸
 참파샥 왓푸
ⓒ CNP문화재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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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샥 왓푸
 참파샥 왓푸
ⓒ CNP문화재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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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과 라오스 간의 문화유산 교류 사업은 첫 물꼬를 트고 있다. 이를 계기로 동남아시아 지역과 문화유산 교류 사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수천 년 문화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라오스의 경우는 늘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라오스 정부와 긴밀한 협조 대신 한국 스타일을 강요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라오스 문화부 주무국장인 '통사' 국장은 지난 10일 인터뷰에서 "라오스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보고서가 작성됐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두 나라간 빠솜(협조)이 배제돼 있다"며 "이 또한 하나의 제국주의와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2012년 한국 정부는 홍난시다를 복원하기 위해서 기초조사를 실시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복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라오스 정부를 배제하고 한국 정부 독단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원인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문화재청에서 민간의 자문을 구하는 절차를 생략했기 때문이다. 한-라오스 문화유산 교류 사업의 처음은 라오스 사정에 밝은 민간으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민간의 역할은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민간에 자문을 구해 다양하고 폭넓은 의견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경우의 수를 살펴보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국가 간 교류는 무엇보다도 신뢰가 중요하다. 첫 과정부터 문제를 노출한 한-라오스 문화유산 교류사업, 민간의 역량을 배제한 한국정부의 독단적인 '보여주기식' 문화유산 교류 사업은 제고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방송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라오스,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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