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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갇혀있다. 여름에 갇혔는데 겨울이 왔다. 그런데 최근 법원의 판결로 1년 10개월을 더 감옥살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이름은 김정우, 쌍용차 노조 전 지부장이다. 계속 감옥 살라는 선고에 동료들은 울부짖는다. 노동자가 갈 곳은 죽음 아니면 감옥뿐이냐고 말이다.

그의 죄목은 이런 것이다. 정리해고를 얌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사회와 정치권을 향해 '왜 그래야만 했냐'고 질문을 했다는 것, '지금이라도 바로잡자'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또 혼자 말하지 않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타인에게 손 내밀었다는 것, 내민 손을 잡은 이들과 함께 거리 행진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가장 참혹한 죄목은 하루아침에 내팽개쳐진 아픔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난 24명 동료 노동자와 가족들의 죽음을 계속 추모했다는 것이다. 거리에 분향소를 차리고 소복을 입은 채 41일 단식을 한 그가 그 분향소를 쓰레기 치우듯 몰려든 공권력을 향해 그런 짓은 해선 안된다고 대든 것이 그의 가장 큰 죄란다.  

그들이 '죄'라고 지목한 것, 우리는 '기본적 인권'이라 부른다

서울 중구청이 덕수궁 대한문앞 쌍용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강제철거하는 과정에서 항의하다 공무집행방해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정우 쌍용차 노조 지부장이 4월 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나오고 있다. 수갑을 찬 손을 가리기 위해 옷이 덮여 있다.
▲ 영장실질심사 받고 나오는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 서울 중구청이 덕수궁 대한문앞 쌍용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강제철거하는 과정에서 항의하다 공무집행방해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정우 쌍용차 노조 지부장이 4월 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나오고 있다. 수갑을 찬 손을 가리기 위해 옷이 덮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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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권력과 사법부가 '죄'라 지목한 것을 우리는 '기본적 인권'이라 부른다.  

첫째, 김정우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행사했다. 자유는 인간답지 못한 현실의 권력과 제도를 인간 존엄성에 걸맞게 뜯어고칠 권한이다. 이 자유의 행사를 위해 보장된 권리들 가운데 으뜸인 말할 자유가 있다. 또 혼자만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같이 외칠 자유가 기본권으로 보장돼 있다. 표현과 집회시위의 자유는 다른 인권들의 보장을 보장하는 인권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노예이고 노예에게 권리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말 못하는 노예에게 제아무리 좋은 것이 주어져도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 시혜와 자비일 수밖에 없다.

둘째 김정우는 평등을 옹호했다. 인간에게는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존엄한 삶이 불가능한 절실한 필요들이 있다. 부의 거탑이 높아만 가는데 노동자를 비롯한 다수의 삶에선 그 절실한 필요들의 박탈만 커져간다. 존엄한 일자리, 주거, 먹거리, 건강, 교육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세력에게 김정우는 맞섰다. 집권 권력의 4대악에 대한 전쟁을 조롱하며 빈곤과 배제에 대한 정당한 전쟁을 했다.

반면 공권력은 일상적 차별을 하고 있다. 노동자와 빼앗기고 쫓겨난 이들이 입을 열 때마다 득달같이 경찰차가 둘러막고 통행을 방해한다. 흔히 '일반시민은 가도 되지만 당신들은 안된다'는 말을 한다. 한 노동자가 반문했다. '우린 시민이 아니란 말이냐?' 그리곤 자조적으로 혼잣말을 했다. '우린 시민이 아니래요.' 공권력이 시민과 시민 아닌 사람을 자의적으로 구별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차별이다. 김정우에겐 교통방해죄를 씌우면서 사람들이 통행하는 인도에 화단을 설치한 공권력, 과도한 차벽 둘러치기와 통행제한을 일상화한 공권력의 책임은 묻지 않는 것 또한 차별이다. 

3월 8일 오전 서울 중구청 철거반이 덕수궁 대한문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강제철거할 예정인 가운데 김정우 쌍용차 노조 지부장이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김 지부장은 철거작업에 투입된 공무원과 용역들에게 "여기는 상갓집입니다. 당신들은 돈 몇 푼 벌기위해 나왔지만, 우리는 뼈를 묻으려한다. 돌아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 "강제철거 안돼!" 분향소 지키는 김정우 지부장 3월 8일 오전 서울 중구청 철거반이 덕수궁 대한문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강제철거할 예정인 가운데 김정우 쌍용차 노조 지부장이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김 지부장은 철거작업에 투입된 공무원과 용역들에게 "여기는 상갓집입니다. 당신들은 돈 몇 푼 벌기위해 나왔지만, 우리는 뼈를 묻으려한다. 돌아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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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역사에서 노동자의 인권은 노동자를 개별로 혼자 내버려둬서는 도무지 시민 대접을 받지 못할 현실 인정에서 생긴 것이었다. 그래서 노동자에게는 뭉칠 권리와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할 권리가 부가됐다. 노동자는 그 권리를 바탕으로 존엄한 일터 뿐 아니라 존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쓸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노동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범죄가 된다. 노동권의 주인 또한 만들어질 수가 없다. 공권력의 취급에 따르면 노동자는 시민이 아니란다. 비정규직이니 파견이니 특수고용이니 해서 노동자여도 노동자가 아니란다. 그래서 시민도 노동자도 뭣도 아니기에 벼랑 끝에서 인권이란 걸 외친다. 인권은 그렇게 내쫓긴 사람들의 최후의 언어이다. 그 최후의 언어를 썼다고 해서 잡아넣는다. 이런 공권력의 차별에 맞서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셋째 김정우는 연대를 실천했다. 사회경제적 강자의 약자에 대한 억압을 제거하기 위해 힘써 동료를 모았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행동할 것을 권했다. 연대는 글로 쓰인 인권을 움직이고 사회에 유통시키는 힘이다.

자숙하고 자제할 것은 저항권력이 아니다

김정우를 잡아넣은 공권력과 법은 다른 노동자들도, 아니 집권권력과 다른 의견을 가진 누구나를 언제든지 같은 죄목으로 잡아넣을 수 있다. 해고노동자이든 존엄하지 못한 일자리를 부여잡고 있는 노동자이든 필사적으로 사회에 말을 걸려한다. 그저 부지하는 삶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부지하는 삶을 놓아버린 동료의 부고를 들을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벼랑에 몰린다. 조금이라도 꿈틀거리면 소환장이 날아들고 법원과 경찰서를 제집처럼 들락거려야 한다. 그 다음엔 평생 만져보지 못할 액수의 손해배상과 징역살이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누구나 김정우가 될 수 있기에 누구나 김정우 이기에 사람들은 모일 수밖에 없고 함께 행동한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해고노동자 임시 분향소 철거 작업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6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과 해고노동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구속된 김 지부장의 석방과 박근혜 대통령 대선공약인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쌍용차범대위, 김정우 지부장 석방 촉구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해고노동자 임시 분향소 철거 작업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6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과 해고노동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구속된 김 지부장의 석방과 박근혜 대통령 대선공약인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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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권력이 정당성 없는 처신을 하면 저항 권력이 발동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그 발동을 보장하는 것이 인권이다. 무분별한 공권력의 횡포 앞에서 저항 권력에게 참으라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 자숙하고 자제할 것은 집권권력과 그 충견인 경찰력이지 저항 권력이 아니다. 더 이상 죽지 말라는 염원으로 지키고 있는 분향소를 향해 달려든 폭력에 대한 저항은 존엄한 인간의 당연한 몫이었다.

인권은 최고 기준이 아니라 최소 기준이다. 사회정의, 경제정의, 사법정의, 민주주의 등 다른 가치들을 북돋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인권이다. 최소 조건인 인권을 무시하려는 집권권력이나 법원의 판단이 과연 다른 가치들과 함께 갈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이글을 쓰고 있는데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죽음과 밀양의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이 겹쳐서 전해온다. 존엄한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하지만 그러하기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사무치게 하는 부음이다. 그래서 김정우의 싸움은 소중하다. 김정우에게 자유를!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가 있게 하라.
모든 사람을 위한 평화가 있게 하라.
모든 사람을 위한 노동, 빵, 물과 소금이 있게 하라.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 1994년 5월 10일 취임 연설에서)

덧붙이는 글 | 류은숙 기자는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입니다.



태그:#김정우,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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