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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선생님' 안명자 선생을 알게 된 건 지난 11월 13일. 공적인 업무차 만난 자리였다. 안명자 선생은 이 자리에서 김치를 단순한 '식품'이 아닌 '문화'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침 때가 김장철인지라 화제는 자연 김장으로 옮겨갔고, 이야기 끝에 그가 11월 24일 일본에서 김장축제를 열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올해 6회째를 맞는 일한 김장마츠리. 안명자 선생은 단순히 '김치 담그는 법'이 아닌 김장문화를 일본인들에게 알린다는 마음으로 순수 사비로 이 행사를 진행해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유네스코는 최근 '김장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권고했다(12월 5일 최종 발표 예정). 안 선생은 15년 전부터 시작해온 '김장문화 알리기'가 이제야 빛을 본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제6회 일한김장마츠리를 동행취재했다.... 기자 말

사이타마현 히타카시의 고려신사 입구 
일본 사이타마현 히타카(日高)시는 그 이름이 보여주듯 일본속의 ‘고려’땅으로 불리는 곳이다.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의미한다) 그 중심에 있는 고마신사(고려신사)는 맨 처음 일본에 온 고구려 왕족을 기념해서 세운 곳이다. 고려신사는 오는 2016년, 신사 창건 13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 사이타마현 히타카시의 고려신사 입구 일본 사이타마현 히타카(日高)시는 그 이름이 보여주듯 일본속의 ‘고려’땅으로 불리는 곳이다.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의미한다) 그 중심에 있는 고마신사(고려신사)는 맨 처음 일본에 온 고구려 왕족을 기념해서 세운 곳이다. 고려신사는 오는 2016년, 신사 창건 13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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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이타마현 하카다시 고려신사. 716년, 고려(이들은 '고구려'를 '고려'라고 부른다)에서 건너온 후예들이 선조들의 정신을 받들며 지키는 곳. 일한김장마츠리(축제, 일본 명칭)가 열리는 곳이다. 1300년의 역사에 김장문화 정신을 싣고 싶다던 안명자 선생의 의지를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한국의 김장문화를 체험하러 온 일본인들이 속속 도착했다. 제한인원은 150명. 마감은 일찌감치 끝난 상태였다. 미처 예약하지 못한 50여 명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왜 이 김장마츠리에 열광하는 걸까? 단순히 김치 담그는 법이 궁금해서일까?

 김장마츠리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장마츠리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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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한 식문화연구회의 고문을 맡는 안명자 선생이 일본인들에게 김치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일본인들은 그녀를 '센세이~'라며 깍듯하게 받든다.
 일한 식문화연구회의 고문을 맡는 안명자 선생이 일본인들에게 김치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일본인들은 그녀를 '센세이~'라며 깍듯하게 받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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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야마현에서 온 다케우치 에이준씨. 그녀는 7시간 걸려 이곳에 도착했다. 오전 9시 30분에 도착했야 했으니, 전날 도쿄에서 하룻밤 묵고 새벽에 출발해 히타카시까지 달려온 것이다. 그녀는 작년에 전주에 왔다가 안명자 선생으로부터 이 행사 소식을 듣게 됐고, 오늘을 기다려왔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 김치를 먹으며 자랐다.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은 '박영순'. 그녀는 재일교포 2세다. 부모님 고향은 경남 밀양. 어머니가 담가준 김치를 먹으며 자랐지만, 한 번도 김치 담그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이제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결혼 후에도 남편과 아이들이 김치를 좋아해서 우리 집에는 김치가 떨어진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김치 만드는 법을 몰라서 계속 사먹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그 맛이 안 나는 거예요. 엄마가 만들어주던 그 김치 맛을 찾고 싶어서 이곳에 참여했어요."

 와카야마현에서 7시간 걸러 온 다케우치 에이준씨(오른쪽),그녀는 재일교포 2세다. 그 옆은 하다케 야마씨. 그녀는 에이준씨와는 이 날 처음 만난 사이. 에이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놀라워했다.
 와카야마현에서 7시간 걸러 온 다케우치 에이준씨(오른쪽),그녀는 재일교포 2세다. 그 옆은 하다케 야마씨. 그녀는 에이준씨와는 이 날 처음 만난 사이. 에이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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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김치, 왜 배울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돼..."

왜 한 번도 엄마가 김치 담글 때 도울 생각을 못했던 걸까. 다케우치씨는 후회스럽다. 어머니가 '이와시(정어리)'로 액젓을 담가서 직접 김치를 만든 기억만이 머릿속에 아스라하다. 그녀에게 이번 일한김장마츠리는 단지 김치를 배우기위한 '쿠킹클래스'가 아닌 엄마의 맛을 찾기 위한 여정이랄 수 있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다케우치씨의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혔다.

고등학교 시절,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간 사에구사씨는 그때 먹은 김치 맛을 잊을 수 없었다. 그 후 김치를 구입해서 먹다가 결혼 후 본격적으로 직접 담가먹기 시작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배추김치는 여러 번 만든 기억이 있지만 깍두기는 처음 시도해본다며 수줍게 웃었다. 사에구사씨가 이곳 축제에 온 이유는 단지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엔 김장이라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어요. 가족, 친척, 동네 사람들 여럿이 모여서 김치를 담근다는 게 정말 재밌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꼭 느끼고 싶었어요."

사에구사씨가 포함된 조에서는 사에구사씨의 나이가 가장 어리다. 올해 40세인데도 어린 축에 속했다. 잘 알지 못하는 '언니'들과 김치를 담그는 게 생각보다 재밌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뭔가를 만드는 일이 재밌다. 웃고, 이야기하고, 김치와 관계없는 수다도 떤다. 사에구사씨에게 김치는 이제 김장이라는 새로운 문화로 기억될 것이다.

 어른아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버무리고 또 버무리고... 처음 만난 사이이이지만 이야기하며 버무리고 웃으면서 버무리고... 김장의 '비빔'과 '버무림'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금새 친해졌다.
 어른아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버무리고 또 버무리고... 처음 만난 사이이이지만 이야기하며 버무리고 웃으면서 버무리고... 김장의 '비빔'과 '버무림'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금새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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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양념재료를 다 썰고, 준비된 양념에 김치를 버무리는 시간. 조용한 일본인이라고 하지만 웬걸, 왁자지껄하다. 웃음소리, 이야기소리, 궁금한 걸 물어보기도 하고 알려주기도 한다. 어디서 왔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반가워하기도 한다. 그 이야기들을 양념삼아 김치는 빠알갛게 버무려진다.  

"배추 실은 트럭으로 겨울 왔음을 느껴"

 후지티비 한국특파원으로 근무했던 남편을 따라 한국에 4년 살았던 마쓰다씨.(제일 오른쪽). 그녀는 한국에 살 당시, 배추 싣은 트럭이 거리를 오가는 걸 보고 겨울을 느꼈다고 했다. 그 왼편으로 안명자 선생, 그 옆은 한글을 배우는 모임 회원들이다.
 후지티비 한국특파원으로 근무했던 남편을 따라 한국에 4년 살았던 마쓰다씨.(제일 오른쪽). 그녀는 한국에 살 당시, 배추 싣은 트럭이 거리를 오가는 걸 보고 겨울을 느꼈다고 했다. 그 왼편으로 안명자 선생, 그 옆은 한글을 배우는 모임 회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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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씨는 후지 텔레비전에서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한 남편 덕분에 4년간 서울에서 살았다. 김장문화를 취재한 남편으로부터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한국에는 '김장보너스'가 있다면서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한국에서는 김장이 정말이지 큰 행사구나 싶었죠. 찬 바람 불 때 배추 실은 트럭이 거리를 다니면 겨울이 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마쓰다씨의 기억에 김장은 '축제'다. 한국 주부에게 김장은 추위가 오기 전 해결해야 할 하나의 숙제일 수도 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마쓰다씨는 왜 한국의 젊은 주부들이 김치를 따로 배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물었다.

"엄마가 있고 할머니가 있고 시어머니가 있잖아요. 그런데 요리교실 같은 곳에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전문적으로 배울 수도 있지만, 집집마다 김치전문가가 있는데 왜 돈을 주고 따로 배우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이 행사장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한국의 맛에 반해 직접 요리법을 배우는 50대 남성도 있었고, 친정 엄마와 함께 온 딸도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일본 남성과 결혼해 30년간 일본에서 살아온 유홍자씨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딸과 함께 왔다. 딸 이름은 고이케 다카코. 앳되어 보인다. 한국말은 서툴지만 방학 때마다 한국 외가에 자주 왕래해서 한국 문화가 낯설지 않다. 그녀에게 이번 김장 축제에 대한 감상을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딸 고이케 다카코와 엄마 유홍자씨. 유씨는 80년대 일본인과 결혼했다. 집에서 김치를 자주 담가먹지만, 딸과 함께 김장문화를 느끼기 위해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
 딸 고이케 다카코와 엄마 유홍자씨. 유씨는 80년대 일본인과 결혼했다. 집에서 김치를 자주 담가먹지만, 딸과 함께 김장문화를 느끼기 위해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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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모든 걸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것 같아요. 제가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공부하며 홈스테이 비슷한 걸 했는데 뭐든지 자기 일처럼 도와주더라구요. 그게 당연한 것처럼요.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뭐든 자기 일처럼 함께 하는 모습들이 저는 정말 좋더라구요. 물론 일본인 제 친구들은 한국인의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엄마 유홍자씨가 거든다.

"한국에서는 음식을 나눠주면서 '이거 맛있으니까 먹어'라고 하죠.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거 입에 맞을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먹어봐'라고 해요. 일단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거죠."

동문서답일 수도 있겠으나, 한편 이해된다. 다카코의 눈에는 뭐든 자기 일처럼 돕는 한국의 김장문화, 김장 품앗이가 또 하나의 신선한 문화충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식이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

일한 김장마츠리가 해마다 좋은 반응을 얻으며 계속될 수 있던 배경에는 안명자 선생과 더불어 일한식문화연구회 키쿠치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녀의 아들, 며느리, 손녀까지 1회부터 줄곧 참여했다. 손녀의 이름은 '하나'. 일본어로는 '꽃'이라는 뜻이고 한국어로는 말 그대로 '하나'다. 그녀는 안명자 선생을 통해 한국의 김장문화를 알게 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온전히 이해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안명자 선생이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김치 맛을 지금 우리가 물려받았다. 그리고 나는 이걸 우리 며느리에게 전해줄 것이고 우리 며느리는 손녀에게 전해줄 거다. 음식이란 이렇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한국의 김장에 담긴 정신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키쿠치씨는 한국의 김장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전생에 한국인이었나 보다'고 말했다.  

오후 2시 30분경. 김치 담그기는 끝났다. 그러나 이번 행사의 '꽃'이 남았다. 이번 행사의 의미는 김치를 담그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참여한 사람들이 집으로 가져간 김치래야 고작 세 쪽 정도. 대부분의 김치는, 이날 장소를 제공해준 고려신사와 행사장에 오지 못하고 전화로 신청한 사람들의 가정으로 전달됐다. 이 나눔이 일한 김장마츠리의 꽃이자 핵심이다.

 김장은 축제다. 나눔이다. 어울림이다
 김장은 축제다. 나눔이다. 어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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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몫으로 돌아오는 김치가 소량이어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김장은 오로지 자기 김치를 담그는 행위만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추운 날, 노동의 고단함마저 즐거움으로, 함께 나누는 기쁨으로 숙성시키고 발효시켜버리는 그 힘. 그게 바로 김장이다.


#일한 김장마쯔리#고려신사#안명자#유네스코 김장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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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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