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들의 히치하이킹 포스터.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포스터.


자신을 잉여로 일컫는 네 명의 청년들의 배낭여행기를 담은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개봉했다. 개봉 3일 차를 지난 현재 이호재 감독과 출연자 이현학씨가 많은 무대인사 스케쥴을 소화하며 노력 중임에도 스코어는 저조하다. 평단과 네티즌 모두가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의아한 결과다.

필자는 이 영화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이들 가운데 하나다. 영화를 보며 도전을 주저하고 있는 20대로서 부끄러웠고, 도전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만약 저 상황에 던져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에게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점은 과거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내 군대 시절의 어느날 일과를 마치고 내무반에서 야구를 보고 있었다. 9회말 박빙의 승부에서 타율이 매우 낮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 때 내무반 동료들은 이미 끝난 게임을 왜 보고 앉아 있냐며 나에게 핀잔을 줬다. 한 때 야구 기자를 꿈꿨던 나는 " 저 선수 올해 타율이 낮아 그렇지 방망이가 나쁘지 않아"라고 말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TV 속 타자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았다. 외야수들의 키를 넘기는 타구, 역시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며 내무반 바닥을 뒹굴었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내 기억 속 타자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협소한 다양성영화의 분류에서도 주목받기 어려운 존재다. 다양성영화 군에서도 강자는 정해져 있다.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나 유명감독의 신작이 그것이다. 한국 독립영화는 몇 해 전 쏟아져 나왔던 신진 감독들의 반짝 약진 이후엔 꾸준히 소외되고 있다. 이 맥락들을 종합했을 때 알 수 있는 바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씨네필에 조차 배제되기 쉬운,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화란 것이다. 현재 이 좋은 영화가 처한 어려운 현실은 내 기억으로부터 그 타자를 다시 불러내게 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를 받기 힘든 타자에게 내가 애정을 보냈던 이유는 그 타자의 가능성을 이전에 확인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에 대해 사적 기억까지 끌어들여 말하고 있는 이유 또한 같다. 이 영화의 힘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기대하지 않은 타자가 한방이 있다는 것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영화적 힘이란 다양한 것이 있겠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도전이다. 시놉시스만 읽어도 알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도전인데 웬 상투적인 말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흔한 로드무비처럼 어떤 도전의 시작과 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성취나 실패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도전의 형식이 아니라 도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한다. 영화 속 수많은 도전에 대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하지 않겠다. 하지만 365회차의 엄청난 촬영횟수를 감안했을 때 그들에게 오는 우연한 기회, 선택할 수 있는 도전이 얼마나 많았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관람한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일정수준의 재미를 보장한다. 더불어 끊임없이 젊음의 뜨거운 무언가를 자극하고, 어떤 이에게는 젊음의 어떤 지점을 반추하게 한다. 물론 이 영화가 관람 전 관객에게 제공하는 텍스트들은 그리 매혹적이지 못하다. 때문에 몇몇 이들에게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 타자일 수도 있고, 믿기가 망설여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망설임을 잠시 접어두고 당신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라. 그들은 입을 모아 이 타자가 얼마나 좋은 방망이 솜씨를 지니고 있는 지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잉여 영화 히치하이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