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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죽음과 탄생 - 내가 왕이 되다> 전시회 포스터.
 <왕의 죽음과 탄생 - 내가 왕이 되다> 전시회 포스터.
"나의 별명은 '오징어'. 듣기 싫다. 그래도 오징어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싶다. '날아라~! 오징어 파이팅!'"
"나는 깜깜함이 좋아요. 왜냐하면 조용하니까요. 친구들의 괴롭힘도, 엄마와 동생들의 소리도, 어둠은 다 삼켜 주니까요."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사람이 아무리 공부를 못한다고 해도 사람은 꼭...한 번씩은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한 번에 세 시간씩 총 10회에 걸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내가 왕이 되어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기록을 남긴 아이들이 있다.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짧지만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이 활동 기록 곳곳에 담겨있다.

전시장 입구 바깥쪽에는 아이들이 만든 부장품과 태항아리, 어보가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는데, 아이들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고민해 보게 만드는 온갖 종류의 동물들과 형상이 각각의 사연을 품고 얌전히 놓여있다.

입구 안쪽에는 '현재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의 등신대 그림이 다양한 크기와 색깔을 한 채 자유롭게 붙여져있다. 색깔도, 옆에 써넣은 짧은 글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이들의 미래 운운하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는 어른,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문득 어깨가 움츠러든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부장품들
▲ 부장품 전시대 아이들이 직접 만든 부장품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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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그린 자신의 등신대 그림
▲ 전시장 입구 아이들이 그린 자신의 등신대 그림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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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회은 2011년 9월의 '공공미술 <나의 장례식> 기획전' (관련 기사 http://bit.ly/YAZLLC)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 진 것으로, 고궁박물관이라는 특성을 반영해 아이들이 현재와 미래만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자신의 태어남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확장되었다.

총 10회인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 '왕과 나의 만남(첫 만남)', '왕세자의 탄생(탄생)', '제왕으로 가는 길', '왕의 궁중생활', '왕릉 행차(삶)', '왕의 죽음과 국상', '왕이 죽어 사는 집(죽음)', '죽음 체험', '내가 왕이 되다(재탄생)', '기록을 남기다(끝맺음)'로 구성되어 있다.

죽음을 통해 결국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거부감을 느끼기 쉬운 주제인데, '왕'이라는 존재에 자신을 대입해 역사 속 그들의 삶을 재연해 느껴보고 '만일 내가 왕이라면~'이라는 가정 아래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 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 자기 인생의 왕, 주인공이라는 인식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전시장 안에서는 입관체험까지 모두 마친 아이들의 소감 인터뷰 영상이 계속 나오는데, 아이들다운 귀여움과 함께 사이사이로 의젓함이 배어나온다. 그러니 어른들이 나서서 섣불리 아이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무리라고, 관이며 검은 천이 놓인 전시장이 거부감을 준다고 지레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일이 아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 내가 죽기 전에 누구에게 꼭 하고 싶은 말. 내가 죽는다면 지금 꼭 하고 싶은 것. 내가 지금 죽는다면 후회하는 것. 내가 지금 죽는다면 보고 싶은 사람'... 아이들이 연필로 진지하게 쓴 유언장이 벽에 나란히 걸려있다.

활동에 참여한 아이들이 작성한 유언장들
▲ 어린이들의 유언장 활동에 참여한 아이들이 작성한 유언장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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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 웰다잉(well-dying)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해도, 나이 든 사람들도 애써 피하려 하는 죽음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맞는 다양한 미술활동을 접목해 정직하게 드러내고 펼쳐보인 기획자 유성이 큐레이터(박물관교육연구 점을잇는별 대표)에게 박수를 보낸다.

죽음과 죽음준비교육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찬반으로 갈리는 현실에서 수많은 의견을 조율해 내면서 1기와 2기 총 40여 명 아이들과 함께해온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왕의 삶을 보면서 그 누구도 귀하지 않은 존재가 없으며, 비록 지금의 삶이 조금은 남보다 팍팍하고 불편하더라도 내 삶을 귀히 여기며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다짐 하나는 아이들 가슴판에 선명하게 새겨지지 않았을까.

전시장을 돌아나오는 길, 아이들의 유언장에 다시 한 번 눈길이 머문다. 유언장을 쓸 때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후 아이들의 마음에는 또 어떤 무늬가 생겼을까.

아이들의 유언장을 읽으며 어른인 내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얘들아, 너희들은 참 대단한 아이들이야. 이제 죽음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니 이제부터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거칠 것 없이 자유롭게 훨훨 날으렴.

"부모님 그동안 감사했으며 저는 이제 아주 먼 곳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친구들 나와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워."
"엄마에게. 맨날 엄마 힘들게 해서 미안해. 다음부턴 엄마 말 잘 들을게. 그리고 내가 맨날 죽는다고 해서 미안해. 효녀 될게요. 그리고 엄마도 힘든데 맨날 짜증내기만 하고 미안해. 이제부터 말 잘 들을게. 그리고 나 관에 들어 가. 엄마 아프면 안 돼. 이제 엄마도 약 안 먹었으면 좋겠다. 엄마 사랑해. 엄마 난 천국 갈 거야."
"나의 유산을 내 어머니에게 드리고, 어머니 제가 이 나이에 죽네요. 그래도 한은 없어요. 오래 오래 사시고 행복하세요.  

덧붙이는 글 | <왕의 죽음과 탄생 - 내가 왕이 되다> 전 (국립고궁박물관 / ~ 12월 8일까지).



태그:#왕의 죽음과 탄생 , #죽음, #죽음준비, #어린이 죽음준비교육, #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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