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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대술면 시산리 마을 안쪽 야트막한 동산 위에 집 한채, 소 예닐곱 마리 키울 만한 외양간, 길죽한 텃밭이 정겨운데 마당 비닐하우스 안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17일 오늘은 김재준(66), 최수란(62) 부부 김장하는 날. 그런데 두 부부가 사는 집 김장 규모가 엄청나다. 김장꾼들도 스무 명은 넘어보인다.

부인 최씨의 동생네 다섯 가족과 출가한 자식, 조카네까지 자그마치 열세 가족이 먹을 겨울김치다. 형제들이 함께 김장을 한 지 열두해째, 김장꾼들은 해가 갈수록 늘어 열세가족, 서른 세 명이 됐다. 올해는 지난달에 결혼한 조카딸네가 합류했고, 내년에는 지난주에 결혼해 참석하지 못한 대구 조카부부가 또 올 것이다.

 남자 여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김장하우스로 모인 가족들.
 남자 여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김장하우스로 모인 가족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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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는 400포기, 전날 내려와 담근 총각김치, 파김치, 갓김치의 양도 엄청나다.

"말할 것도 없이 마늘이 일곱접, 생강 2키로 깠다니까."

김장 진두지휘하랴, 삶은 돼지고기 수육 건지랴, 앉을 틈 없이 바삐 오가는 최씨는 단답형 대답을 하거나 그나마도 질문이 끝나기도 전 사라져 버린다.

덕분에 막내동생인 정수(42)씨가 대변인으로 나섰다.

"큰누님하고 저하고 스무살 터울이니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죠. 요즘엔 부모님 살아계셔도 이렇게 전부 모여 김장하는 집 별로 없는데 저희는 갈수록 더 규모가 커져요. 누님이랑 매형이 고생이시죠."

어디 김장이 배추양념속 넣는 일 뿐이랴. 이정도 규모면 열두 가지 양념 준비에 열흘 이상 작업이 전제된다. 더구나 배추, 무, 갓, 파, 마늘할 것 없이 젓갈을 제외한 모든 재료들이 직접 재배한 것이니 사실상 1년 내내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생들은 그걸 알기에 전날 새벽길을 달려와 단 이틀 만이라도 몸부쳐 일을 한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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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밖에서는 아직 어린 꼬맹이 손주들이 고기 구워먹는 재미에 신이 났다.

"명절 때는 각자 큰집으로 가야돼서 김장 때가 더 많이 모이니 가장 큰 가족행사죠. 김장 김치 담아 가는 목적도 있지만, 이렇게 전부 모여 먹고 웃는 재미에 김장 날짜 잡히면 만사 팽개치고 전부 모이죠."

그래서 맏자식은 부모 대신이라고 했던가. 한달에 10만원씩 계를 부어 2년에 한 번 여행을 다닐 정도로 우애 깊은 6형제 부부의 중심에 큰누나 수란씨가 있다.

"큰누님이 '내년부터는 안한다'고 하시고는 김장 때가 되면 또 모이라고 연락하시기를 수년 째예요."

수육을 썰던 큰누나가 웃음을 물고 말한다.

"뭔 일은. 먹으러 오라는 거지. 내년부턴 안혀~"

산더미같이 쌓여있던 김장속도 얼추 다 들어갔을 즈음 막걸리와 맥주가 등장하자 환호성이 터진다.

"이게 몇 만 원짜리 안주냐. 다들 한 잔씩 따르고 건배하자구."

고춧가루 잔뜩 묻은 고무장갑채로 손에 쥔 술잔이 부딪친다.

"모두 건강하고 잘살자."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김장, #김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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