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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유흥업이 뭐예요?"
"응, 술집 같은 거야."
"그럼 저는 술집을 (운영)해야 하나요?"

경기도에 사는 박아무개(44)씨는 초등학생인 자녀에게 이같은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는 '학생진로교육 사이버인증센터' 사이트에 접속해 학교에서 숙제로 내준 온라인 진로교육 강의를 듣는 중이었다.

강의 중에는 성격유형검사도 있었다. '수용력이 강하고 사교적인 게 성격 특성'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성격과 관련된 직업으로 의료판매, 교통, 간호직, 비서직과 함께 '유흥업'이 제시됐다. 이걸 본 아이가 박씨에게 '유흥업'에 대해 물어본 것이었다.

박씨는 "유통업을 잘못 읽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다시 결과를 봤더니 강의 속 성우 음성이 유흥업이라고 정확하게 읽어주기까지 했다"며 "미성년자인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업종을 교육청 진로교육 과정에서 제시하는 게 맞나 싶다"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생진로교육 사이버인증센터' 홈페이지
 경기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생진로교육 사이버인증센터' 홈페이지
ⓒ 경기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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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진로교육 사이버인증센터'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진로교육 웹사이트다.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진로교육과정으로, 학년마다 진로탐색 관련 온라인강의를 이 사이트에서 이수토록 한다.

이 가운데 '진로탐색 연습'이란 강의는 학생에게 MBTI 성격유형검사를 제공하고, 결과로 나온 성격 유형에 따른 진로 방향을 제시한다. 문제는 'ESFP(사교적인)' 유형이 나온 아이들에게 관련 직업으로 '유흥업'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표준직업분류에는 '유흥업' 없어... 포털사이트는 '성인인증' 검색어로 구분

 학생진로교육 사이버인증센터 강의 중 하나인 MBTI 검사 실시 결과. ESFP(사교적) 유형의 관련 직업으로 '유흥업'을 제시함.
 학생진로교육 사이버인증센터 강의 중 하나인 MBTI 검사 실시 결과. ESFP(사교적) 유형의 관련 직업으로 '유흥업'을 제시함.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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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유흥업'을 "흥겹게 놀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하는 영업"이라고 정의한다. 통계청 한국표준직업분류에는 유흥업이라는 직업군이 아예 없다. 대신 한국표준산업분류는 유흥업을 '숙박 및 음식업점'으로 분류한다. 세부적으로는 접객요원을 둔 '일반유흥 주점'과 무도시설을 갖춘 '무도유흥 주점업'으로 나뉜다. 나이트클럽, 카바레, 룸살롱, 가요주점 등이 여기에 속한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유흥업'을 검색해봤다.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은 성인 검색결과'라고 설명하면서 성인인증을 요구한다. 직업군으로 분류되지 않았을 뿐더러 미성년자인 학생들이 접근할 수 없는 업종을 진로탐색교육에서 직업으로 제시한 것이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오락·연예 등의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분야를 '유흥업'으로 번역하면서 생긴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MBTI 성격유형검사를 국내에 도입하면서 엔터테인먼트 분야 직업을 '유흥업'이라고 번역했고, 경기도교육청이 이를 그대로 강의 프로그램에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엔터테인먼트는 우리말로 연예·오락 등의 '여흥'을 뜻한다.

한국MBTI연구소 김민정 연구원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해당 검사에서 제시한 유흥업은 성인들이 이용하는 유흥업종이 아니라 영화·음악·오락·연예와 관련된 직업이란 뜻"며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한국어로 유흥사업이라고 번역·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흥업이라는 표현이 아이들 교육 과정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학생 대상 검사에는 표현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교육과정지원과 진로진학교육 담당자는 "학생 진로교육 과정에서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유흥업으로 해석해 직업으로 제시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인정하며 "현재 콘텐츠 개선 과정 중이니 이러한 지적을 반영해 수정·보완 하겠다"고 답했다.


#학생진로교육사이버인증센터#경기도교육청#MBTI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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