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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전시장에서 만난 제자들(왼쪽부터 박진경, 강화선, 필자, 강승모, 김영희, 오영경, 박세진)
 서울의 한 전시장에서 만난 제자들(왼쪽부터 박진경, 강화선, 필자, 강승모, 김영희, 오영경, 박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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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계절

어느새 초겨울이다. 거리의 가로수들도 이제는 거의 벌거벗은 알몸의 나목으로 변하고 있다. 아내는 나에게 60이 지난 뒤부터는 늘 언저리를 정리하라고 권하고 있다. 10년 전 서울에서 강원 산골로 내려오면서 아주 독한 마음을 먹고 언저리를 많이 정리했다. 그동안 꾸역꾸역 가지고 있던 많은 소지품도 몇 차례 이사를 하는 동안 과감히 정리했다.

오산중 제자 진천규(전 한겨레 사진기자) 군과 LA 한 공원에서(2004. 3.)
 오산중 제자 진천규(전 한겨레 사진기자) 군과 LA 한 공원에서(2004. 3.)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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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공간이 서울 도심에서 강원도 외딴 산골마을로 갑자기 변하자, 자연 그동안 연을 맺은 사람들과도 점차 거리가 멀어졌다. 거자일소(去者日疎), 곧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는 옛 말이 명언이었다.

간혹 서울 사는 친구나 친지들이 구연을 들먹이며 만나기를 희망하여 상봉하지만 다시 산골로 돌아올 때는 매번 거리감을 느낀다. 그들이 무심코 뱉는 말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들은 네가 사는 곳에 땅 좀 사줄 수 없느냐고, 내가 강원 산골로 내려온 것을 부동산 투기 삼아 내려온 줄 알고 있다.

나는 이실직고로 강원도에 내려와 땅 한 평 산 일이 없고, 내가 사는 안흥 집도 거저 얻어 산다고 하면 그들은 도무지 믿어주지 않았다. 그런 이들과 무슨 이야기 상대가 되겠는가. 천하에 얘기꺼리가 없어 늘어놓는 모교 자랑이나 제 자랑, 자식 자랑에 아파트 값, 외제 자동차나 골프 얘기는 나의 관심 밖이다.

사제의 인연

그동안 서울에서 고교, 대학생활과 교직생활 등으로 50년이 넘게 맺은 구연들은 자연 하나하나 지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울 수 없는 인연은 교단에서 맺은 사제 인연이다. 나는 그들이 부르거나 내가 사는 고장으로 찾아올 때만은 가능한 거절치 않고 만난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에게 숱한 말빚을 졌기 때문이다. 좀 더 고상하게 말하면, 어쩌면 사람과 사람의 인연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것은 사제관계일 것이다. 이 사제관계로 인류의 문명과 역사는 발전해 왔다.

내가 사는 고장으로 찾아온 이대부고 제자 이종호(좌), 강승모(중) 군, 그리고 필자(강원도 횡성 자작나무숲 미술관, 2012. 6.)
 내가 사는 고장으로 찾아온 이대부고 제자 이종호(좌), 강승모(중) 군, 그리고 필자(강원도 횡성 자작나무숲 미술관, 2012. 6.)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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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곧 일흔이 되는데, 지난 인생 가운데 가장 잘 한 일은 내가 교사가 되어 33년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일이고, 가장 잘못한 일은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좀 더 실력 있는 교사, 좀 더 많은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교사, 가난하고 공부가 좀 더 뒤진 학생들을 더 넓은 가슴으로 껴안는 교사가 되지 못한 점이다.

1973학년도에 내 반에 후암동의 한 고아원에서 다니는 이 아무개 학생이 있었다. 나는 그 학생을 담임한 일 년 중 내 집에 불러다가 밥 한 끼 대접치 못한 게 매우 부끄럽다. 그때는 미혼이기에 그랬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테지만 학교에서 가까운 중국집에 데려가 그 시절 걔네가 가장 좋아하는 자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주지 못한 점은 정말 잘못했다.

그 다음해, 중3 졸업반을 담임했을 때 장 아무개 학생은 등록금 미납으로 장기 결석을 하여 끝내 제적처리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싫어진다. 솔직히 그때 부자 학부모에게 그만한 촌지는 받았으면서도. 그 뒤로도 내 반에 휠체어로 움직이는 박 아무개 학생이 있었지만 한 번도 그 휠체어를 밀며 화장실에 데려다준 적도 없었다. 나는 참 인정이 없고 감정이 메마른 교사였다

미국 뉴욕에서 강원 산골로 찾아온 신민철(우) 군과 함께 고순영(중), 신유철(좌) 군(강원 횡성 자작나무 숲 미술관, 2013. 6.)
 미국 뉴욕에서 강원 산골로 찾아온 신민철(우) 군과 함께 고순영(중), 신유철(좌) 군(강원 횡성 자작나무 숲 미술관, 20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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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인생'

내가 다시 교단에 선다면 늘 열심히 공부하는 실력 있는 교사, 학생을 편애하지 않는 교사, 몸과 마음이 아픈 학생을 어루만지는 교사가 되고 싶지만, 이미 다 끝나버린,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교단에서 학생들과 헤어질 때 "진정한 사제관계는 졸업 후다"는 말을 자주했는데, 그 말 탓인지 학교를 떠난 뒤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여러 제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랑과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나의 작품세계를 넓히도록 일본여행을 알선해 준 제자가 있었는가 하면, 미주대륙 횡단을 동행하자는 제자도 있었다. "화장실이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 구닥다리 골동품 훈장을 허드슨 강변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고는 맨해튼 관광을 안내한 제자, 로스앤젤레스 구석구석을, 워싱턴 곳곳을 안내한 제자도 있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서른 권이 넘는 책을 쓸 수 있었다. 이즈음도 나는 그들의 알뜰한 자료제공으로 <어떤 약속>이라는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일본기행 중 아오모리 현 한 얼음집에서 제자 김자경(우) 양과 함께(2003. 2.)
 일본기행 중 아오모리 현 한 얼음집에서 제자 김자경(우) 양과 함께(2003. 2.)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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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주중에 고교를 졸업한지 30년이 넘은 제자들의 초대를 받아 오랜만에 서울로 갔다. 그새 그들은 쉰이 넘어 이미 대학생을 둔 학부모가 되었다. 그날 모임에서 이런저런 학창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성공한 인생'에 대한 좌충우돌의 난상토론이 있었다. 한 제자가 '이혼하지 않고 사는 부부'라고 결론을 내리자, 합석한 다른 제자들은 대체로 그 말에 수긍했다. 그만큼 가정문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힘든 현실인가 보다.

그날 늦은 저녁, 청량리 역에서 원주행 막차를 탔다. 차창에 비친 내 초라한 몰골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지난 내 칠십 평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니 이즈음 움츠려졌던 마음이 다소 펴진다. 나는 집에 도착한 뒤 곧장 아내에게 '성공한 인생'에 대한 감사의 말을 했다.

이즈음은 그저 평범하게 살기도 어려운 세상인가 보다.

LA 레몬드 바닷가에서 오산고 제자 박정헌 군과 함께(2004. 3.)
 LA 레몬드 바닷가에서 오산고 제자 박정헌 군과 함께(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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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공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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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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