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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국회의원 운운하는 데 국민께 부끄럽다. 경호차량을 발로 차고 말리는 경찰과 시비를 붙고 국회를 공전시키는 행태.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자괴감이 드는 하루였다."

서병수 새누리당 의원이 20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 말이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국회 본청 앞 계단 위에 주차된 버스차량 철수를 요구하다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파견부대원으로부터 폭행당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명백히 강 의원을 비난하는 뉘앙스였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와 홍문종 사무총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귓속말을 하고 있다.
▲ 귓속말 나누는 윤상현-홍문종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와 홍문종 사무총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귓속말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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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같은 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전날(19일) 대정부질문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강 의원을 '가해자'로 규정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동료의원에게 보다 세심한 배려를 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더군다나 이번 사태에 대해 여야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도 밝혔다. 그럼에도 고작 하루 만에 이번 사건에 대한 당내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결국, 새누리당이 전날 밝혔던 '여야 공동 대응' 입장도 공수표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에 대한 새누리당의 입장을 사건 발생 때부터 되짚어볼 때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18일] 처음부터 청와대 '편' 들었던 새누리당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강 의원이 아닌 대통령 경호실의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홍지만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18일 당일 사건 발생 후 몇 시간 뒤 현안 브리핑에서 "강기정 의원이 관련 기자회견을 했으나 주장이 목격자들과 좀 다르다, 그래서 한 말씀 드린다"며 "(강 의원이) 국회 사무처에 승인을 다 받고 정차돼 있던 대형버스의 범퍼를 발로 차고 욕설과 함께 차를 빼라고 고함쳤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차한) 운전 담당 경호지원 부대원이 '아니 누구길래 남의 차를 발로 차느냐'고 하니까 대답 없이 그냥 가길래 다시 한 번 따라가서 어깨부분 뒷덜미를 잡으면서 '아니 누구신대 남의 차를 발로 차고 그냥 가시냐'고 했다(고 한다)"며 "주변에 있던 민주당 의원들이 '누가 함부로 국회의원을 잡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강 의원은 자신의 머리로 뒤를 쳤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사진 왼쪽 아래)이 18일 오전 10시 40분경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직후, 국회 본청 앞에서 청와대 경호실의 한 직원(사진 오른쪽 위, 노란색 점퍼 입은 사람 맞은편)으로부터 뒷덜미를 잡히는 등 폭행을 당했다. 청와대 경호실 직원도 민주당 관계자들에 의해 강기정 의원으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에서 입술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사진은 강 의원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청와대 경호실 직원을 민주당 관계자가 떼어놓는 상황이다.
▲ 강기정 의원 뒷덜미 잡힌 순간 강기정 민주당 의원(사진 왼쪽 아래)이 18일 오전 10시 40분경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직후, 국회 본청 앞에서 청와대 경호실의 한 직원(사진 오른쪽 위, 노란색 점퍼 입은 사람 맞은편)으로부터 뒷덜미를 잡히는 등 폭행을 당했다. 청와대 경호실 직원도 민주당 관계자들에 의해 강기정 의원으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에서 입술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사진은 강 의원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청와대 경호실 직원을 민주당 관계자가 떼어놓는 상황이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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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의원이 욕설과 함께 버스를 발로 차는 등 '원인'을 제공했고 강 의원의 신분을 몰랐던 경호지원 부대원의 '뒷덜미 잡기' 대응은 정당했다는 얘기였다. 더군다나 강 의원이 고의적으로 해당 부대원을 가격했다며 그를 '가해자'로 규정했다. 이는 대통령 경호실이 사건 당일 내놓은 보도자료의 사건 경과 내용과 일치했다.

게다가 홍 원내대변인은 "(경호용으로 주차된) 버스를 보호하고 훼손을 방지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부대원의 (강 의원에 대한) 대응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며 청와대 측을 두둔했다.

또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의원의 특권의식에서 아직도 많이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어떻게 보면 그 본인만 알 수 있겠지만 폭력을 마구 휘두르고도 적반하장식으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라고도 비판했다.

강은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역시 같은 날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 "굳이 경호로 들어와 있는 차량에다 발을 차고 그렇게 시비를 붙이실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나"며 "(강 의원의 행동은) 충분히 상해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는데 이제 그것을 정치적으로 푸느냐,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고민은 좀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19일] 대정부질문 '파행' 되자 첫 번째 유감 표명

이 같은 새누리당의 입장은 여야 갈등만 부추겼다.

당초 강기정 의원은 18일 당일 강창희 국회의장과 한 면담 후 "국회의장이 '청와대 정무수석을 불러 (이런 상황을) 어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면서 추가 대응 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국회의장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으니 잘 알아서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의 '입'들이 연달아 자신을 가해자로 규정하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19일 강은희 원내대변인에게 "어제 일에 대해서는 청와대 얘기보다는 저의 얘기를 들었어야죠, 유감입니다, 어제 상황은 제 얘기가 진실입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당일 예정된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을 '보이콧'하거나 '지각입장' 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졌다. 다만, 강창희 국회의장이 이 같은 민주당의 입장을 수용, 공식적인 유감 표명 요구 등을 수락하면서 이번 사태가 일단락되는 분위기였다.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진행발언에 나선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이 전날 박근혜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벌어졌던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파견부대원의 강기정 민주당 의원 폭행 사건에 대해 강 의원을 가해자로 몰아가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강력 항의했다. 전 원내대표 옆에 있던 서영교 의원이 전날 강 의원이 당한 폭행을 최 원내대표 앞에서 재연하고 있다.
▲ 서영교 "강 의원이 폭행 당했다구요, 이렇게"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진행발언에 나선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이 전날 박근혜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벌어졌던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파견부대원의 강기정 민주당 의원 폭행 사건에 대해 강 의원을 가해자로 몰아가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강력 항의했다. 전 원내대표 옆에 있던 서영교 의원이 전날 강 의원이 당한 폭행을 최 원내대표 앞에서 재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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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사진행발언에 나선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은 대정부질문 '파행'을 야기했다. 그는 전날 원내대변인들의 입장과 똑같이 강 의원을 '가해자'로 규정했다. 이 의원의 발언 내용 중 "(강 의원이) 정차된 차를 2~3회 발길로 찼다", "(파견부대원이) 어깨를 잡자 강 의원이 욕설을 했다" 등의 내용은 대통령 경호실의 설명에 비춰보더라도 '거짓'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관련 기사 : 새누리, '의원 폭행' 옹호... "청와대 하명 받았나")

결국, 민주당 의원들은 '집단 퇴장'을 선택했다. 2시간가량 대정부질문을 멈춘 후에야 새누리당은 고개를 숙였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대표'로 나서 "사실관계에 다툼이 있는 의사진행발언으로 본회의가 중단돼 유감스럽다"며 "동료의원에게 보다 세심한 배려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이번 사건에 대한 새누리당의 첫 번째 유감 표명이었다.

[20일]"서로 정반대의 주장 하고 있다"... 여전히 청와대 주장에 손 들어줘

그러나 이는 사실상 '립서비스'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20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사실관계에 다툼이 있는" 가해 주체 여부는 쏙 빼고도 강 의원을 비난했다. "걸핏하면 국회의원 운운하는 데 국민께 부끄럽다"는 서병수 의원의 발언은 이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지만 대한민국 법 앞에서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것은 훼손될 수 없는 가치라는 것을 우리 국회의원들이 명심해야 되리라 본다"고도 강조했다.

유기준 최고위원은 전날(19일) 대정부질문 파행 책임을 민주당에 돌리며 국격을 떨어뜨린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집단 퇴장으로 대정부질문이 파행되는 모습을 당시 방청 중이던 알마즈벡 아탐바에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에게 노출시켰다는 논리다.

그는 "이것이 바로 민주당의 현 주소이며 속성"이라며 "자신들의 기분이 상하면 외교적 결례나 국격 따위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자신들이 자초했고 다스리지 못하는 격분한 마음에 골몰하기 바쁘다"고 주장했다.

더 확실한 진심은 새누리당의 '원내사령탑'에서 알 수 있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과 한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청와대가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보시나"란 질문에 "지금 그때 경위에 대해 서로의 입장이 많이 다르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강창희 국회의장이 국회 차원의 유감 표명을 했다"는 지적에도 "그것은 국회의장으로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포괄적인 유감을 표시한 것"이라며 "서로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이런 저런 판단을 하기 어렵지만, 어쨌거나 국회의원이 폭행사건에 가담됐다는 자체가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정확히 들어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강 의원의 뒷덜미를 움켜쥐웠던 대통령 경호실 파견부대원은 이날 오후 폭행치상 혐의로 강 의원을 고소했다.


태그:#새누리당, #강기정, #최경환, #대통령 경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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