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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미타암 사립문
 지리산 미타암 사립문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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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입구에 들어서니 표지석 뒤에 심무가애(心無罫碍)란 경구가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걸림이 없고…'란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이다. 매사에 마음에 걸림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늦가을, 단풍은 많이 져버렸지만 아직도 선지 같은 붉은 단풍이 좌우에 도열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꼭 피안의 세계로 들어온 느낌이 들어요!"
"그게 바로 화엄사라는 화엄세계에 들어온 덕분이 아닐까?"

화엄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단풍
 화엄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단풍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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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수행을 하고 만덕을 쌓아 화엄처럼 장엄한 세계,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지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존재가 다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세계가 화엄의 세계라고 한다. 우리는 마치 선재동자라도 된 듯 화엄사 입구를 들어섰다. 화엄사 입구에서 연기암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다. 길 전체가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로 터널을 이루고 있는 숲길이다.

숲길에는 낙엽이 켜켜이 쌓여 독특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그 길을 따라 2km 정도 올라가면 '미타암'이란 작은 표지석이 나온다. 표지석 왼쪽으로 들어서면 드디어 미타암이다. 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을 따라 올라서면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작은 초가 차방 있고, 대웅전 뒤에는 지리산 할머니 신을 모신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켜켜이 쌓여 있는 낙엽
 켜켜이 쌓여 있는 낙엽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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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암 뒤로는 지리산 노고단이 아스라이 보인다. 노고단의 정기를 받은 화엄 골에는 요소요소에 크고 작은 암자들이 들어서 있어 전체가 부처님의 화엄세계처럼 장엄하다. 아늑한 정취가 느껴지는 곳, 마음이 쉬어가는 곳, 수수하고 꾸밈이 없는 암자, 늘 편안하게 대해주시는 스님…. 내게 미타암은 그런 곳이다.

"먼 길 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지요? 짐 푸시고 차방으로 오세요."

차방에서 나오신 스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스님의 모습에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우리는 법당에 들어가 오체투지 삼배를 하고 요사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그리고 차방으로 들어가 스님께 삼배의 예를 올리려고 하는데 스님께서는 "한 번 만 하세요" 하시며 손을 저어 만류하신다.

미타암 풍경. 멀리 지리산 노고단이 보인다.
 미타암 풍경. 멀리 지리산 노고단이 보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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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님께 정성 들여 절을 하고 다소곳이 앉아 스님을 바라보았다. 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하심(下心)을 내고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스님은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우려냈다. 스님은 침묵 속에서 아홉 개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더운 차가 김을 모락모락 풍기며 아침부터 긴 여정을 헤매며 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스님께서 차를 마시자 우리도 합장을 하고 더운 차를 마셨다. 더운 차를 마시니 마음이 이내 훈훈해졌다. 서로가 말은 없지만 무언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느낌을 받는다.

"스님, 차 맛이 너무 좋네요!"

침묵을 깨고 내가 실없이 한마디 했다. 그러나 정말 미타암에서 마시는 차 맛은 언제나 그만이다! 스님께서 마음으로 우려낸 차라서 그럴까? 다향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차 맛에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맛! 잘은 모르지만 다도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많이 마시세요."
"그런데 스님, 오탁악세에 찌들어 살아가는 저희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거두절미하고 또 내가 스님께 한 말씀 여쭈었다.

"… 저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아실 텐데요…."
"그래도 스님, 한 말씀 해주셔야지요."
"…."

스님과 다담을 나누고 있는 미타암 차방
 스님과 다담을 나누고 있는 미타암 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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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스님의 깊은 눈길이 찻잔에 쏠려 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스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다만 생각처럼 실천을 하지 못할 뿐이지요."
"…."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쉽게 생각하세요. 집중하십시오! 매사에 집중을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집중하고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는 데 집중하십시오. 운전을 할 때는 운전에 집중하고, 상대방이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십시오. 여러 가지를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집중하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마음이 바쁘지가 않고 쉬어갈 수 있지요."
"스님,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어떻게 해야 집중을 잘 할 수 있지요?"
"하하, 사실은 그게… 저도 잘 안 됩니다."

스님의 순진한 웃음에 모두가 따라 웃었다.

"…감사하는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는 마음,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 서로 소중해 할 줄 아는 마음, 작은 일에 기뻐할 줄 아는 마음…. 그런 마음을 내면 집중이 더 잘되지요.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 나를 내 세우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말지요."

스님은 잠시 말을 끊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존경을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세요. 보살님들은 남편에게,그리고 거사님들은 아내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 보세요. 그리고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일을 천천히 하세요. 모래시계가 한 알씩 중앙의 나늘고 긴 홈을 타고 통과를 하듯이…. "

스님의 낮고 간절한 말씀에 모두가 감동 어린 표정으로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아까부터 노트에 스님의 말씀을 열심히 적으며 줄곧 침묵만 지켜오던 J의 남편이 침묵을 깨고 한마디 했다.

"… 스님, 허지만 요즈음 한국의 남편들은 너무 힘들어요.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요."
"하하하, 그게… 한국의 남편들만 힘든 게 아니지요. 세상의 남편들이 다 힘들어요. 세상의 남편들은 다 힘들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또 지탱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하하하."

미타암으로 가는 숲길
 미타암으로 가는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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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바라보며 웃는 스님의 웃음소리에 우리는 또 까르르 따라 웃었다. 우리는 스님이 웃으면 왜 따라 웃을까? 남자들은 한국의 남편들이 힘들다는 말씀에, 여자들은 세상의 남편들이 다 힘들다는 말씀에 맞장구를 치며 웃는 웃음일까?

그렇다! 스님의 말씀처럼 인생은 모래시계와 같다. 모래시계가 한꺼번에 중앙의 긴 홈을 다 통과하려다가는 막혀버리고 만다.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통과를 해야만 고장이 나지 않는다. 한 알 이상을 한꺼번에 통과시키려고 하면 모래시계는 고장이 나고 만다.

스님은 작년부터 화엄사 선등선원장을 맡고 계신다. 마침 17일(음력 10월 15일)이 동안거 결제일이라 조금 바쁘다고 했다. 3개월간 스님들이 용맹 정진할 준비도 하고, 방 배정도 해야 한다는 것.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동안거에 들어오시는 스님들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가 왔다. 세상의 남편들만 힘든 게 아니고 스님도 힘들다고 하시며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스님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는 또 까르르 웃고 말았다.

미타암 사립문을 지나 연기암으로 산책을 나섰다.
 미타암 사립문을 지나 연기암으로 산책을 나섰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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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립문을 지나 화엄사로 내려가시는 스님이 뒷모습이 다소 무거워보였다. 직책을 맡은 책임이란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절에서도 무거운 모양이다. 우리는 스님이지나가신 작은 사립문을 통과하여 연기암으로 올라가는 산책길에 나섰다.


태그:#지리산 미타암, #화엄사, #화엄사 선등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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