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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지 못한 하루의 연속.
▲ 당신의 결혼,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지 못한 하루의 연속.
ⓒ 꺽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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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다고 해서 개인이 현재보다 훌륭한 삶이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착각이다. '결혼'은 절대 신데렐라 스토리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얼른 그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와 반대로 '결혼하면 자신이 타고 있던 호박마차가 황금마차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개인의 삶에서 더 나은 것을 누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나는 결혼은 '철저한 자기포기'의 대명사라고 말하고 싶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와 나 사이에 누가 먼저 '포기'하겠냐를 두고 작은 다툼이 있었다.

"스탠드 좀 꺼. 잠 좀 자자."
"나 책 읽고 있잖아. 좋아하는 작가야. 더 읽다 잘 거야."
"내일 출근 안 해? 눈부시다고. 책 보려면 서재나 거실 가서 봐."
"싫은데. 침대에서 보다가 잘 거야. 자기 전에 책보는 것은 내 '오래된 습관'이라고!"

그는 신경질난다는 듯 이불을 힘껏 잡아당기더니 등을 돌린 채 뒤척거리다 잠이 들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신혼부부의 사소하지만 절대 사소할 수 없는 갈등'. 가령 '치약 짜기', '음식물쓰레기 처리', '분리수거', '욕실 사용', '세탁물 처리', '옷걸이 사용' 등 혼자 살았을 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아니 아무도 나에게 지적하지 않았고 조용하고 당연히 넘어갔을 법한 아주 사소한 습관들은 우리 관계를 지속적으로 흔들어놓았다.

어느것하나 선명해지지 않아.
▲ 희미해지는. 어느것하나 선명해지지 않아.
ⓒ 꺽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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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상태에서 한 결혼이라 그런지 결혼생활에 본격적으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팽팽하고 위태로운 우리 관계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결혼생활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세기의 전쟁터'에 나와 있는 듯했다.

뜨거워야 할 신혼이 전쟁터로 탈바꿈 된 것은 아마도 그는 나에게 '아내다움'을 원했으나, 나는 아직도 이 결혼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긴어디.난 누구.
▲ 여긴어디. 여긴어디.난 누구.
ⓒ 꺽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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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는 어느 한 사람도 집안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결혼생활이 이어졌다.

어떤 날은 빨래가 밀려 아침 샤워 후 마른 타월이 없는 날도 있었으며, 양말 바구니에서 같은 양말의 짝을 찾기 위해 양말 바구니를 다 쏟아야 하는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그이의 속옷 또는 와이셔츠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날도 있었다.

아마도 그날이었던 것 같다. 그이의 와이셔츠 장이 텅텅 비어 있었던 그날 아침.

그는 늦잠 덕분에 출근 지하철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직장이 집 근처였기 때문에 느지막이 일어나 태연하게 샤워를 할 정도로 나에게는 큰 자극이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때였다.

"쾅쾅쾅!"
"야, 문 열어. 문 열라고!"
"뭐야, 나 씻고 있잖아!"
"야! 집에 타월도 한 장 없고 오늘 당장 입을 와이셔츠도 없다고! 너 집에서 뭐하냐?"
"그걸 왜 나한테 따지세요. 아침 댓바람부터. 나도 너처럼 직장 다니고 돈 벌어다주는데 내가 와이셔츠나 빨고 다릴 정도로 여유 있어 보여?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어?!"
"내가 말을 말지. 퇴근하고 보자."

결국 지하철을 놓친 그는 정장바지에 구겨진 PK티를 입고 지하철 대신 자가용으로 출근을 했다.

나는 불 뿜는 용처럼 화를 내며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나한테 무슨 자격으로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퇴근 후에 있을 아침의 후폭풍이 얼마나 큰 쓰나미로 몰려올지도 나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야, 결혼했으면 최소한 남편 와이셔츠는 빨아야 하는 거 아니냐?"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해서 들어오잖아. 퇴근 후엔 나도 좀 쉬고 싶다고. 똑같이 일하   고 들어와서 왜 나는 또 다른 직장에 출근한 듯 빨래며 청소에 잠들기 전까지 정신없이   지내야 하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는 한 남자의 아내이고 집에는 엄연히 남자와 여자가 할 일이 정해져 있다고!"
"그래? 말 잘했다. 그럼 남자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할 일은 뭔데? 아무데나 옷 벗어놓고 손이라고는 리모콘 정도만 누르는 것이 남자가 집에서 하는 일이냐?"
"너는 내조라는 것도 모르냐?"
"내조? 오빠가 나가서 내 월급까지 더 벌어와. 그럼 나 집에서 그 잘난 내조 할게. 타월도    빨고 와이셔츠도 빨고 다림질도 해줄게. 그러니 너는 돈을 내 몫까지 두 배 더 벌어와. 할   수 있겠어?"
"이게 진짜 말이라고…. 내가 미친놈이지. 너같이 돈은 벌어다 쓸 줄밖에 모르는 정신 빠진 여자랑 결혼하다니. 이 결혼 왜 했나 싶다."
"… 정신 빠진 여자? … 말 다했어?"
"그래. 내 말 틀렸냐? 너 돈 쓰는 것 좋아하잖아!"
"사과해. 그 말 취소하고 사과해!"
"풋. 왜 그런 말은 또 듣기 싫은가 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혼 전후로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는 생각이 그의 입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그의 말 따라 '그래, 이 결혼 왜 했을까'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때 우리가 헤어졌더라면 적어도 이렇게 끝을 내다볼 수 없는 전쟁 같은 상황 속에 외롭게 내동댕이쳐지진 않았겠지', '더 좋은 사람을 만났을 것이라는 보장은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상황보다는 나았을 텐데' 등 수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쳐 놓았다.

나는 얼른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해야 했다.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어서 내게 사과해'라고 암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내 자존심을 지켜야 했고, 이 싸움에서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 그래서 내가 애초에 파혼하자 했지. 애시 당초에 파혼하지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이 누군데!? 나가. 이 집에서 당장 나가."

나의 말이 끝난 후 그의 표정은 읽어낼 수 없을 만큼 싸늘하고 건조했다. 그는 아무 말도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집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닫히는 무거운 현관문 소리가 내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 같았다.

채워질 수 없는 구멍
▲ 블랙홀 채워질 수 없는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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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원래 이런 거야? 남들은 눈만 마주쳐도 좋아죽을 지경이라던데….'
'도대체 결혼이라는 게 뭐야?'

결혼생활의 해답도 찾기 전에 '결혼'이라는 녀석은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나에게,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서로를 위해 오래된 습관을 포기할 것. 당신의 시간도 나의 시간, 나의 시간도 당신의 시간이라는 것. 지붕 아래 공간에서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 전부 '부부'의 '절대적 공동소유'일 것.

부담
▲ 백지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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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결혼,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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