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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문춘의 11월 14일자. 아베의 '한국은 어리석다'는 내용이 게재돼 있다
▲ '한국은 어리석다' 주간문춘 주간문춘의 11월 14일자. 아베의 '한국은 어리석다'는 내용이 게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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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언론에는 '두 얼굴의 아베'란 표현이 등장했다. 겉으로는 한-일 정상회담을 간절히 희망한다고 하면서, 14일 발행된 일본의 잡지 주간문춘(週刊文春)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를 희롱에 가깝게 폄하하는 목소리도 냈다. 그는 "중국은 어처구니 없는 국가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 게임이 가능하나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보도에 따르면 아베는 "박 대통령이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곁에 간신(윤병세 외교부장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문춘 폄하 보도내용과는 딴판으로 최근 잇달아 아베는 한-일 관계개선 및 정상회담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13일에는 주일 한국대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14일에는 한일협력위 참석차 방일한 한국 국회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15일은 한일협력위 출범 50주년 기념 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통석(痛惜·몹시 애석함)의 마음이 있다"고 말하며 과거사에 대해 유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석'이란 단어는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일왕이 과거사 관련하여 한 말이었다. 반성의 표현만 놓고 볼 때 일본의 과거사 인식은 90년으로 회귀한 상태다. 

아베의 적극적인 노력에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기존 '납득할만한 수준의 선 사과, 후 관계정상화' 기조에 변화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15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협력위원회 창립 50주년 축하 메시지에서 박 대통령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자"고 말했다. 미래에 방점이 찍혀 있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는 만나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던 것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영국 국빈방문 전인 10월 29일 BBC방송과의 회견에서 "정신대 문제 등에 있어 일본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일본과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까지 말했다. 외신에서는 이 표현에 주목해서 '당분간 한-일 정상회담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벨기에를 방문하던 지난 11월 8일에는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인식이 '그것은 문제될 게 없다. 과거 그게 뭐가 잘못된 것이냐' 이런 입장이라면 회담을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합니다"라며 지금 시점에서의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과거사에 대한 확실한 입장표명 없는 정상회담은) 의미가 없다,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대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던 박 대통령이 '한-중-일 공동 교과서를 집필하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을 두고도 '대일 유화제스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주일 동안에 아베가 무슨 사과의 말이라도 했었던가.

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은 16일 <한국 대통령, 공동 역사교과서 집필 제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일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그와 같은 제안을 한 것은 교착상태를 깨기 위한 분명한 화해의 제스처이다(Park made the proposal for the publication of joint history textbooks in an apparent effort to break the deadlock)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동집필에 대해 일 정부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공동집필 제안을 보도한 아사히신문 11월 16일자.
▲ '한국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공동집필 제안"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공동집필 제안을 보도한 아사히신문 11월 16일자.
ⓒ 아사히신문 영문뉴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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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간의 대립, 그리고 극적인 전환점?

박 대통령 취임한 이래 9개월 동안 대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었다. 지난 3.1절 박 대통령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일본을 강하게 비판하자 아베는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 어느 쪽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응수했다.

그뿐 아니다. 아베의 망언 이력은 실로 유명하며, 의도적인 것들이다. 지난 4월 주변국 우려에도 불구하고 168명의 의원들이 합동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집단참배 의원수로는 1989년 이래 최대이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외교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미국 국민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경의를 표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 과거 총리 시절 때 아베는 "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으로 남는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확신범'이다.

또 지난 7월에는 "침략의 여부는 정치가가 아닌 역사가에게 일임해야 한다"며 침략을 부정하는 발언을 해 한국, 중국의 반발을 자초하기도 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지난 2월 22일 '시마네현'의 소위 '다케시마의날' 행사에 영토문제 담당 정무관(차관보급)을 정부 대표로 파견했다. 지난해까지는 정부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행사였다. 8월 1일에는 일 정부가 국민들 대상으로 최초 '독도 여론조사'를 벌였다. '국제법상으로, 역사적으로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61%로 상당히 높게 나왔다.

일 집단자위권에 대해서는 침묵,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 제안?

돌아보면 아베 내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담화문을 발표할 때와 동일한 인식을 하고 있다. 기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하거나, 침략전쟁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아베는 예전에도 '한일 정상회담'을 하자고 했고 지금도 그 입장은 동일하다.

대조적으로 박 대통령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장이 최근 급변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 15일 한일 협력위원회 50주년에 전달한 '미래지향적'인 기념축사나, 지난 14일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 집필 제안' 등이 특히 그러하다. 앞서 보았지만 아사히신문은 역사교과서 공동집필을 화해제스처로 해석해 보도했다. 

이웃나라를 만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선 사과, 후 회담'이라는 원칙을 천명한 상황에서 '(지금) 정상회담이 오히려 악영향을 준다'는 말을 한지 불과 일주일만에 '드라마틱'한 입장 변화를 보여준다면 지켜보는 국민들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국민일보>도 16일자 관련보도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선(先) 과거사 반성, 후(後) 관계 정상화' 대일(對日) 원칙론 기조가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일본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기존대비 대폭 유화적인 몸짓은 평소 외교의 격과 원칙을 중시한다던 박근혜씨의 태도와는 달리 뚜렷한 이유 없이 급작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위안부와 침략전쟁이 과거사라면 현대사인 '집단자위권' 이슈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아 야당과 많은 국민들을 걱정시키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갈팡질팡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도 더불어 쌓여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busase.tistory.com에도 게재하였습니다.



태그:#한일정상회담, #아베망언, #공동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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