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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강연의 포스터
 전교조 강연의 포스터
ⓒ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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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몹시 추운 11월의 저녁. 명 강사가 아닌 교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복직되신 김임곤 선생님께서 사회를 보신다는 반가운 소식에 남통동에 있는 교육연수원으로 부랴부랴 달려갔습니다.

사실 지난 14일은 조짐이 참 좋았습니다. 오후 5시에 꽃다발 세개를 주문하러 오신 손님이 한 분 계셨어요. 늘 꽃다발의 용도를 손님께 여쭙고 만들다보니 강사 세 분께 드린다고 하시더라고요. 촉이라는 게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교육연수원에서 하는 강연 말씀인가요?"
"어머나! 어떻게 아셨어요?"
"김임곤 선생님께서 사회를 보신다는 그 강연 맞나요? 오늘은 인동중학교·해평초등학교 선생님들께서 강연하시고요."
"세상에…, 제가 인동중학교 교사거든요. 어떻게 김임곤 선생님을 아세요?"
"아…, 네…, 알죠. 김임곤 선생님. 제가 모임에서 몇 번 뵈었죠."
"혹시 사사세?"
"아! 아세요? 사사세 구미? 오늘 저도 거기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강연장에서 뵙겠습니다."
"사장님, 저 오늘 소름 돋았어요. 이 지역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조금 있다가 뵐게요. 꼭 오세요!"

강연장에 가니 그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더군요. 복직되시고 오랜만에 뵈는 김임곤 선생님은 무척 부드러워진 모습이었습니다. 살짝 웨이브진 긴 머리가 그렇게 잘 어울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인동중학교에서 도덕을 담당하시는, 생글생글 웃음이 너무 아름다우신, 아직도 소녀 같은 여 선생님과 해평 초등학교에서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동네 이장님같은 남자 선생님과 함께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강연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명강사도 좋지만 학부형으로서 진짜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고충이 듣고 싶었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온갖 욕을 다 얻어 먹으며 교사생활을 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손가락질 받으며 전교조 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또 어떤 보람이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인동중학교 김재남 선생님께서는 1986년 초임시절 그러니까 20대 풋내기 처녀 선생님때 겪었던 이야기를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때는 가정형편때문에 아이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산업체 고등학교로 많이 갔어요. 한 번은 아이들을 실을 짜는 공장에 데리고갔는데 세상에 가시거리가 2미터도 안될 정도로 뿌옇게 섬유 먼지가 가득찬 거예요. 우리 아이들은 기술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루종일 쓸고 닦고…. 저도 하루동안 아이들하고 청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산업체 고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며, 그 열악한 산업의 현장속에 아이들을 밀어 넣고 돌아설 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답니다.

"제가 전교조 초반에 전교조 신문을 돌리고 있었어요. 교무주임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지도 않고 다른 선생님들 다 있는 데서 큰소리로 '전교조 하려면 밖에 나가서 하든가, 분위기 다 흐리고 있네'라고 하시는데 그때 참 눈물이 났죠."

전교조 초반에 소식지를 돌리다가 교장·교감 선생님께 불려가고 교무주임 선생님께 대놓고 무시를 당하고, 심지어는 투명인간 취급까지 받았던 시절까지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냥저냥 타협할 수도 있었겠지만 굴하지 않고 아이들과 교사들을 위해 전교조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힘이 되는 교사들이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내공이 쌓이고 쌓여 전교조를 넘어 주변의 많은 교사들을 감싸 안으시는 교사들에게도 선생님 같은 진짜 선생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해평초등학교 강일병 선생님께서는 "1988년 그냥 그 시대가 마땅히 전교조에 가입하게 만들어서 활동을 했고, 어느 순간 부터는 신념이 생겨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조분조분 잘하시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작은 시골마을에 '새로운 학교'라는 용기있는 행동을 하시기 위해 보여지는 모습에서 참 정이 깊은 선생님이시구나 느꼈습니다. 새로운 학교란 '모두가 주인인 학교, 특히 선생이 갑이고 학생이 을인 현재의 상황에서 학생이 갑이어야 합니다'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참 존경스럽다 생각했습니다. 학예 발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 초대장부터 펼침막까지 만들고 주제를 정하고 하는 것들을 보며 보람을 느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왜 공부하기 어려워하고 싫어하느냐, 그것은 현재의 교과 과정이 그 아이들의 삶과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현재 살아가고 있는 생활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을 자꾸만 주입식으로 배우라고 하니까 그러는 겁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하는 공부는 아이들에게는 현실감도 없고 너무 먼 미래입니다. 그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며칠 전에는 아이들과 밤을 함께 구워 먹으며 수업을 하셨다고 합니다. 밤을 굽기 위해 불을 지피고 하는 모든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해결했답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가치의 새로운 학교의 모습이라고 하셨습니다. 김임곤 선생님께서 마무리를 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 집사람이 드라마를 좋아하는데요. 저도 요즘 가끔 보는데 얼마 전에 <굿닥터>라는 드라마 마지막회에 그런 말이 나옵디다.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입니까?'라는 후배 의사의 질문에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지 고민하는 의사가 좋은 의사다'라는 답이 나오더군요. 저는 그 의사라는 말에 교사라는 말을 집어넣고 싶습니다."

그곳에는 저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풋풋한 선생님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연륜이 있어 보이는 선생님들도 몇몇 보였습니다. 그분들은 선배 교사들께 배워 더 좋는 교사로 남고 싶어하는 선생님,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데도 늘 처음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아이들을 생각하시는 선생님 모두 좋는 선생님들이었습니다. 든든했습니다.

어려운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 셋을 키운다는 것. 그것이 암담한 줄만 알았지만 지난 14일 전교조 강연회에서 많은 선생님들의 고민을 접하며 그래도 희망은 있겠다고, 새로운 학교가 점차 퍼져 나가겠다고 꿈꾸게 됐습니다. 전교조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많은 분들께 꼭 이런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교사들은 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주면 된다. "


태그:#전교조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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