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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 유묵의 도난과 관련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안도현(52. 우석대교수)시인에 대해, 7일 전주지법 형사2부 (재판장 은택)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전부 무죄' 평결을 뒤집고 '일부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재판과 관련 안도현 시인의 변론을 맡았던 이광철 변호사가 판결의 문제점과 그간의 상황을 정리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도현(52·우석대 교수) 시인이 7일 전주지법 1호 법정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법정을 빠져나오면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도현(52·우석대 교수) 시인이 7일 전주지법 1호 법정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법정을 빠져나오면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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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안도현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그림자 배심원 1명을 포함한 8명의 배심원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무려 14시간 동안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공방전을 지켜보면서 심증을 형성한 끝에 7명 배심원 전원일치로 무죄평결을 하였으나, 재판부는 이 평결결과가 재판부의 일부 심증과 배치되고, 이것이 판사의 직업적 양심에 배치되는지를 살펴보겠다면서 판결을 11월 7일로 연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7일 선고기일에 재판부는 판사로서의 직업적 양심론을 장황하게 설파했다. (재판부는 안도현 시인에게 배심원단 평결을 뒤집고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배심원단을 존중한다며 벌금 100만 원의 선고는 유예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재판부의 직업적 양심론의 요체는 다음과 같다.

"다만 배심원의 의견이 법관의 직업적 양심과 근본적으로 충돌할 경우에는 전원일치의 배심원 의견이라 하더라도, 법관의 존재 이유로서 포기할 수 없는 법관의 직업적 양심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 한해서만 기속력(법원이 재판을 일단 공표한 후에 법원이 그 재판을 임의로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 없게 되는 구속력)을 가진다고 해야 한다.

공소사실은 피고인의 트윗 게재행위가 드러난 사실관계를 기초로 법리적으로 봐 그 내용이 사실적시에 해당하는지, 허위사실인지, 허위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낙선목적과 비방의도가 있었는지, 공익목적의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는지 여부 등이 쟁점인 사건으로서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법리적 관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사안의 성격상 배심원의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법감정, 정서에 그 판단이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엿보인다.

그렇다면, 법의 지배 이념의 축으로서 법령의 해석과 적용은 확립된 법리에 따라 통일적으로 평등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법적 안정성 원칙에 비춰 이 사건에 대한 법관의 직업적 양심의 본질적 부분은 적어도 공소사실의 유무죄에 대한 법적 평가 부분, 따라서 공소사실의 유무죄에 대한 법적 평가 부분에 관한 배심원의 의견은 재판부를 기속할 수 없고, 나머지 양형 부분에 한해 사실상 기속력을 가진다."

결국 재판부의 판사로서의 직업적 양심론의 핵심골자는 배심원의 의견은 그것이 만장일치의 평결이라도 유무죄 판단은 기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왜 '안도현 무죄평결' 했나

국민참여재판 근본 취지 훼손한 직업적 양심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대단히 중요한 헌법적 가치임을 믿는 입장에서 타인의 양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우 재판부가 말한 양심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의 그것이 아니다. 헌법상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권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행사하는 지위에 있는 법관의 직업적 양심은 한 개인의 내면의 윤리적 결단체인 양심과 같은 보호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그 직업적 양심은 국민의 기본권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법관의 헌법적 지위가 보장되는 한에서만 의의를 가지는 것이므로 그 직업적 양심은 언제나 견제와 감시의 대상이 돼야 한다. 따라서 법관의 직업적 양심은 기본권과 같이 최대한 보장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법관의 책무를 수행하는 한도내에서만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 의의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법관의 직업적 양심의 존재 의의, 내재적 한계론에 따를 때 재판부가 직업적 양심을 들어 배심원 전원의 무죄평결을 배척한 조치는 잘못된 것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재판부의 직업적 양심론은 국민참여재판의 도입의 근본적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어서 현행법 질서와 충돌할 수 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은 제1조에서 이법의 목적을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하여"라고 하고 있다. 또한 우리 법질서가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한 것도 그것이 단순한 이상론적 차원이 아니었다. 한 하급심 판시(대전고등법원 2008.05.28. 선고 2008노123 판결)가 적절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의 신장, 드높은 교육열, 다양한 가치관의 수용에 관한 관용심의 증대, 사회적 동질성의 확보, 국제교류의 확대, 변화에 대한 발빠른 적응능력과 역동성,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 공익참여에 대한 열망의 고양 등에 힘입어 우리 시민 개개인의 역량 또한, 이제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재판의 장에서 감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숙하였다고 사법정책당국이 판단하였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도입의 취지와 목적을 고려할 때 단순히 배심원의 평의가 법관을 기속하지 않는다는 규정(위 법 제46조 제5항)을 들어 배심원의 평결이 법관의 유무죄 판단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법관의 재판에 국민을 들러리로 앉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배심원의 평결에 대한 권고적 효력과 국민참여재판 도입의 근본적 목적을 조화롭게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배심원의 평결이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법질서나, 사회상규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경우 또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의 변경이 필요한 경우 등에 한하여 배심원 평결의 결과를 배척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외에는 배심원의 평결의 결과를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가 현행법의 규정 또는 사회상규에 배치되지 않고, 또한 대법원의 판례를 변경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는 배심원의 집단적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국민참여재판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면서 권고적 효력을 규정한 법규정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지난 3월 국민사법참여위원회가 국민참여재판에 사실상의 기속력을 부여하기로 하는 방안을 확정했지만, 이러한 방안이 현행법의 해석론으로 불가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고, 재판부처럼 판사의 직업적 양심을 내세워 배심원 전원의 무죄평결을 배척하고 양형에나 반영하게 되면 엄격한 선정절차를 거쳐 배심재판 전체를 장시간에 걸쳐 지켜보면서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인 추론에 따라 도출해낸 국민들의 상식적인 결론이 배척되어 결국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은 짓밟하고 '사법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악결과에 판사의 직업적 양심이 근거가 되는 것이 어떤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기록된 안중근 의사 유묵  '도난문화재정보'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기록된 안중근 의사 유묵 '도난문화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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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후보자 비방의 점에 관하여 배심원의 무죄평결을 배척한 재판부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안도현 시인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올린 트윗 17건을 모두 살펴봐도 안 시인이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훔쳐갔다고 표현한 바 없다. 안 시인의 트윗의 요지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는 이 유묵이 도난 상태라고 공시하고 있고, 한편 많은 도록과 전문서적, 그리고 중앙일간지까지 이 유묵의 소장자를 '박근혜'로 명시하고 있으니, 문화재청 홈페이지와 도록 등 자료를 본 사람들이 이 유묵을 박근혜 후보가 훔쳐 소장하고 있을 수 있으니 해명하라는 취지였다. 이 점을 다음 트윗은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아닌 동명이인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보물 제569-4호 안중근 의사 글씨를 갖고 계신 분은 바로 저에게, 혹은 문화재청에 신고해주십시오, 지금 박근혜 후보가 도둑이 될 처지에 있습니다" - 2012.12.10.02:56에 올린 트윗


"박근혜 후보 자택을 방문했던 기자분들, PD분들, 국회의원님들, 문화재청 직원분들, 팬클럽 박사모 여러분들, 연예인들 그리고 혹 담을 넘어갔다 왔던 도둑분들까지 손도장이 선명한 우리의 안중근 의사 유묵을 보신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 2012.12.10. 03:08에 올린 트윗

이 트윗을 보면 안도현 시인은 박근혜 후보가 도둑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 후보가 이 유묵을 소장하였다가 도둑에게 도난당한 것은 아닌가, 소장자를 박근혜로 명시하고 있는 자료들이 많은 상태에서 해명하지 않으면 도둑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박근혜 후보의 성실한 해명을 촉구하는 의미임이 분명해진다. 이 트윗의 의미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그 전제에서 이를 비방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이 대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하는 법리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해석에 어떤 판례의 변경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충분히 수용가능한 법리의 해석론인 것이다. 그 반대로 이를 비방으로 보는 견해도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이를 비방으로 보지 않는 견해가 도저히 우리 법질서에 의하여 수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설령 위 트윗을 비방으로 보더라도 공직선거법 제251조 단서의 "다만,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적용된다고 보는 것도 충분히 합리적인 결론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의 소장자를 박근혜로 명시한 많은 자료가 있고, 이 자료들이 전문가들, 신문사 기자에 의하여 작성되었다는 점, 그 중 1983년 문화재청 자료는 안중근 기념관장의 말이라면서 이 유묵을 박근혜가 소장하고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배심원들의 입장에서는 이 유묵을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재판부도 이러한 점을 고려했기에 안도현 피고인이 허위의 인식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추론에 기하여 대선을 앞두고 이 유묵의 문제를 안도현 시인이 제기한 것은 충분히 공론의 장에서 문제제기를 할만한 사안이었다. 즉 배심원들이 후보자 비방에 대해 무죄로 본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를 수용하는 것이 국민참여재판의 도입목적과 취지에도 전적으로 부합하는 일이다. 바로 뒤에 언급할 노무현 장인 판례와 같은 노골적인 표현들도 헌법적 테두리 내에서 보호를 받는데 안도현 시인의 트위터상의 표현은 일반인이 보기에 훨씬 내용이나 표현이 정제되어 있다고 볼 만하다.

직업적 양심론이 독선적이고 위험한 이유

둘째, 재판부의 이러한 직업적 양심론은 매우 독선적이고 위험한 견해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 형사소송에서 유무죄 판단이 심급에 따라 변경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이는 법리의 적용에 따른 유무죄의 결론도출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미 재판에서 누차 지적한 바와 같은 대법원 2004.10.27. 선고 2004도3919 판결의 사안(한나라당 대전시 선거대책자문위원회 의장인 피고인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관하여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노무현을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2002. 12. 10. 15:00경부터 17:00경까지 사이에 대전 중구 대흥동 소재 대전예식원에서, 그 곳에 참석한 한나라당 당원 등 약 200여 명을 상대로 연설을 하면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노후보 장인이 인민위원장 빨치산 출신인데 애국지사 11명을 죽이고 형무소에서 공산당 만세 부르다 죽었다 … 공산당 김정일이가 총애하는 노무현이가 정권 잡으면 나는 절대 못산다"라는 취지의 발언)이 유죄이냐에 관하여도 1, 2심은 이를 유죄에 해당하는 비방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의 대통령 후보자 가족의 전력에 관한 발언이 후보자 비방 행위에 해당하나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하여 무죄인 비방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판결의 결론이 심급마다 바뀔수 있는 터에 법관의 양심에 따른 유무죄 판단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될 수 없는 가치라는 주장은 매우 독선적인 사고의 발로가 아닌가 의문이 든다.

다른 하나, 재판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법리라는 것도 어떤 불변의 것이 아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언제든 가변적인 것이 법리이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운영하면서 판례변경을 하는 것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특정한 시대의 대다수 구성원들의 통념이 바뀌고 또 그만한 결론을 도출해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법리라는 것도 그 사회 다수 구성원들의 건전한 상식으로부터 도출되고 그러한 상식이 변경되면 법리도 따라서 변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대표로서 엄격한 절차를 거쳐 선발된 배심원들이 내린 결정은 이러한 법리가 실제에서 구현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재판부는 이를 법관의 양심을 들어 배척하고 만 것이다. 자신만이 옳다는 지극한 독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나오기 어려운 설명이다.

직업적 양심론은 결국 자기합리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도현(52)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10월 28일 열렸다.
▲ 안도현 시인 국민참여재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도현(52)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10월 28일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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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재판부의 직업적 양심론은 법관으로서의 처신에 결정적 문제를 드러낸,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자기합리화의 기제라는 점이다.

사실, 재판부가 당일 국민참여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고, 배심원들로 하여금 충분하게 심증을 형성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나온 무죄평결이 법관의 심증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판결선고를 연기하였다면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판사의 조치를 쉬이 비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일 국민참여재판 내내 자신의 심증을 배심원들에게 관철하고자 집요한 시도를 했다.

①우선 재판장은 재판장으로서 배심원들에게 형사재판에서의 대원칙인 검사의 입증책임과 증명력의 정도에 관한 대법원의 확고한 법리 설명, 즉 "형사재판에서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판례의 제시와 설명을 생략했다.

추측컨대, 배심원 선정절차에서 변호인이 배심원 후보자들에게 이 원칙을 묻고, 이 원칙에 대한 의견을 질문한 것을 그러한 설명으로 대체한 것으로 갈음한 모양이나, 같은 법리라도 변호인이 설명하는 것과 법관이 설명하는 것은 배심원들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뿐더러 변호인의 설명도 간략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판례의 설명은 형사재판에서 결정적 의미를 가진다. 증거가 없어 무죄가 선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②또한 쟁점을 배심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재판장은 가령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에 있어서 확립된 대법원의 판례라고 할 수 있는 "허위사실공표죄에서 의혹을 받을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하여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는 그러한 사실이 존재한다고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고,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의 증명을 할 수 있다"는 판례만 소개하고,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의 허위사실공표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검사가 공표된 사실이 허위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것이 필요하고,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판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뒤의 생략된 판례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것은 물론이다.

③나아가 재판장은 변호인의 변론의 중간에 개입하여 변론의 흐름을 끊고 간섭하면서 변호인을 핍박하여 변론을 파행시켰다. 가령 변호인의 모두진술 중간에 개입하여 공소사실에 다투는지 결론을 말하라고 강요하고, 변호인이 모두진술에서 증거자료의 일부를 피피티(PPT)로 보여주는 대목은 증거조사에서 할 것이라면서 이를 하지 못하게 제지했다. 증거조사 절차에서도 증거 가운데 피고인에게 유리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피고인의 공소사실과 어떤 점에서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을, 그것은 의견을 밝히는 절차에서 하라면서 또한 제지하였다. 일반 재판에서야 증거조사절차를 재판장이 말한 방식대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배심원들에게 그 방식대로 하면 배심원들은 그러한 증거의 기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설명이 필요하다.

④재판장의 이러한 편파성은 사실 국민참여재판 기일 이전에도 나타난 바 있다. 참여재판이 열리기 사흘전인 10월 25일 오전 11시경 필자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온 재판장은 당일 국민참여재판을 저녁 7시 전에는 끝내야 한다면서 피고인 신문과 최후변론을 각 15분 내에 끝내라고 했다. 서울 등 국민참여재판기일이 새벽까지 진행되는 것이 통상적이었고, 공판준비기일에 국민참여재판의 종료시간을 구체적으로 잡아놓지 않았기에 변호인단은 피고인신문은 30분 가량, 최후변론도 1시간 가량으로 준비해 이미 피피티(PPT)까지 제작을 완료해 둔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변론권을 최대한 보장해 달라고 간곡하게 재판장에게 말하였으나, 늦어도 오후 7시 30분에는 재판을 끝내야 한다면서, 피고인신문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으면서 중복되는 것은 모조리 변론권을 제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변호인들은 하는 수 없이 오후 7시까지 재판을 마치는 안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차선책으로 그렇다면 변호인의 변론시간이 150분이 되도록 보장해 줄 것을 간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보장하겠노라고 하여 국민참여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변호인들은 타이머까지 마련해 모두진술, 증인신문, 증거조사절차, 피고인신문, 최후변론까지 시간을 지키고자 했으나, 검찰이 동영상 재생과 증거조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당일 심리는 예정한 오후 7시를 훨씬 넘겨서 오후 9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재판장의 이러한 일련의 모습을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면 자신의 심증대로 배심원들을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를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판례도 피고인에게 불리한 것만 소개하면서 유리한 것은 누락하고, 변호인의 변론에는 수시로 개입하여 맥을 끊고, 변호인을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것 등은 이러한 의도의 발현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렇게 배심원들에게 불공정한, 어떤 특정한 결론으로 배심원들을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임한 재판에서 오히려 배심원 전원 무죄평결이 나오자 이를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내세워 배척하는 것에 어떤 도덕적 정당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점과 관련하여 하나 더 지적할 것은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평결을 배척한 이유 중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법리적 관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사안의 성격상 배심원의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법감정, 정서에 그 판단이 좌우될 수 있다'는 논거들은 사실 검사가 애초 이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회부를 반대하면서 펼친 논거라는 점이다. 그러한 검찰의 반대의견을 물리쳐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기로 해놓고는 막상 배심원들의 평결이 자신의 심증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할 것이면 도대체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더구나 변호인이 제시한 도록 등 자료와 변호인의 어려운 법리설명을 끝까지 경청하여 그에 따라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견지에서 평결결과를 도출한 배심원들에 대하여 '배심원의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법감정, 정서에 그 판단이 좌우될 수 있다'고 판결선고에서조차 언급하는 것은, 배심원 평결 이후에 진행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의 부적절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배심원들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그들의 배심원의 직책수행의 자긍심을 손상시켜 긍극적으로 법원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아주 잘못된 처사다.

국민참여재판에 치명상 입힌 판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평결과 법관의 심증이 불일치할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은 대단히 중요한 쟁점이다. 이를 헌법상의 민주적 정당성과 법의 지배 이념간의 충돌, 조화의 문제로 접근한 재판부의 입론(立論)은 경청할 내용이다. 또한 이 문제를 입법적 결단으로 풀어야 한다는 언급도 귀담아들을만 하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의 근본 취지를 심대하게 훼손시켰다. 이미 사전에 지적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 배제결정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에게 재판부의 심증을 관철시키고자 시도했다. 그러고도 만장일치 무죄평결이 나오자 언론에 대고 감성적 평결 운운하면서 법관 스스로의 권위와 신뢰에 먹칠을 했다. 그러한 부적절한 처신으로인해 국민참여재판은 기로에 서게 되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리고 결국 선고날에 법관의 직업적 양심론을 구체화하여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무죄평결을 배척하고 말았다.

이 판결로 재판부의 직업적 양심은 수호됐는지 모르겠지만, 작게는 8명의 배심원들의 명예와 자긍심이 무참하게 짓밟혔고, 크게는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하여"라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의 목적도 치명상을 입었다. 수호되어 남은 것과 상처입고 비틀거리는 것을 비교하면 어떤 것이 보다 본질적이고 우월적인 가치일까? 안도현 시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담당한 재판부가 깊이 성찰해 볼 대목이다.


태그:#안도현,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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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딱 한뼘씩만 사회가 진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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