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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동선.
▲ 겨울 일본 자전거 여행 대략 루트 (2013.11-2014.1) 마음 가는 대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동선.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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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다. 시린 칼바람에 맞서 눈밭에서 캠핑하는 얼어 죽을 낭만도, 호러영화 뺨치는 물가에 덜덜 떨며 바게트로 연명하는 연약한 패기도. 추운 날씨 때문에, 비싼 물가 때문에 파생되는 여러 난제들을 하나하나 부딪치며 극복해 가는 여정이 실은 정말 기대된다.

나는 행복의 가치를 상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의미를 둔다. '인생은 계획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은 실행하는 대로 된다.' 그 확신이 내겐 있다. 거기에서 만나는 의문 섞인 난관들은 넘어지는 돌부리가 아닌 도약하는 디딤돌이 될 거라 믿는다. 겨울 길을 벗하는 동안, 감당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어쭙잖게 변명하는 지금까지의 과오들에 대한 통렬한 반성도, 철이 바뀌어도 철들지 않는 내게는 정말 필요하다.

광야에서의 캠핑은 역시 눈밭, 사막 그리고 인적없는 숲 속이 제 맛.
▲ 와일드 캠핑 광야에서의 캠핑은 역시 눈밭, 사막 그리고 인적없는 숲 속이 제 맛.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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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달리는 것만큼 상쾌한 건 없다. 다만 엄청난 모기떼의 습격이 있었을 뿐이다.
▲ 태국 로드 숲길을 달리는 것만큼 상쾌한 건 없다. 다만 엄청난 모기떼의 습격이 있었을 뿐이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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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변수가 터졌다. 2011년 3월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참담한 재난은 결코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사안이다. 사고 발생 3년 여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주요 이슈로 부각되는 이 사건을 결코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호주 사막으로 모험을 떠날까, 다시 미국 자전거 횡단을 할까, 아님 인도네시아 정글 마을을 탐험갈까 잠자리에서 뒤척이기를 두 달여. 결론은 역시 일본이었다.

오랜 광야 여행의 마무리를 일본에서 짓고 싶었다. 7년 전 염두에 둔 자전거 세계일주의 마지막 동네니까. 그냥 마음이 그랬다. 대신 머무는 동안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루트는 원전 사고 발생 지점과 최대한 멀리 잡고, 해산물은 절대적으로 피할 것이다. 일본에 사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안전하게 달릴 것이다. 그래도 남는 걱정은 하늘에 기도할 것이다.

'전기수(傳奇叟)가 되어 일본 열도를 따뜻한 감성으로 달려보자.' 못 말리는 이상주의자가 거침없이 내뱉는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시선 사이로 끊어질 듯 팽팽한 개인주의의 불안정한 공기, 자기 목소리만 내기에 더욱 더 고요하게 외로워지는 내면, 보듬어주는 공감보다 냉소어린 반응이 두려운 진심, 어쩌면 너무 적나라해 거부하고 싶은 나와 당신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문득 생각해본다. 차 한 잔 앞에 두고 삶을 관조할 여유조차 없다면 인생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카우치 서핑(http://www.couchsurfing.com/)'과 '웜 샤워(https://www.warmshowers.org)' 사이트는 자전거 여행자에겐 구세주와 같다. 마음 통하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초대하는 무료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소설 같은 흥미진진한 내 자전거 세계여행 얘기를 듣고자 하는 일본 친구들을 만나러 어디든 갈 것이다. 그들과 하룻밤 벗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또한 들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정말 이룰 수 있을지 심각하게 의심되는 꿈 이야기들로 우리의 밤을 하얗게 지새울 것이다. 추억 해보면 애틋한, 과연 돌아갈 수 있을지 몹시도 막막한 가슴 먹먹한 시절들을 하염없이 그리워도 할 것이다.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을 넘는 고산 도로. 폭설이 내리던 날 밤, 호스텔 주인은 할 말을 잃은 채 숙박비를 받지 않았다.
▲ 안데스 로드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을 넘는 고산 도로. 폭설이 내리던 날 밤, 호스텔 주인은 할 말을 잃은 채 숙박비를 받지 않았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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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 길이 끊기고 연못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고생하면서도 현지인들의 따뜻한 마음도 경험할 수 있었다.
▲ 모잠비크 로드 오프로드 길이 끊기고 연못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고생하면서도 현지인들의 따뜻한 마음도 경험할 수 있었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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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내가 참 좋아하는 소설이다. 이 겨울에, 위로하고 또 위로받고 싶은 내게 참 고마운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한국을 떠난 지 꼭 만 7년 만에 작품의 무대인 나라에 와 있다. 너무 많이 알아 용기를 잃어 버리기 일쑤인 내가, 너무 아는 게 없어 무모하게 저지르고 보는 내가, 말 많은 설국에 이미 와 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 삿포로에서 후쿠오카까지 뜨겁지만 외로운 심장으로 밀치고 나갈 길 위에서 나는 또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신(新)삿포로' 기차역에 도착했다. 후두둑 비가 내리고, 겨울을 잡아당기는 밤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나는 도시의 불빛들을 피해 멍하니 하늘 한 번 쳐다보며 아주 작은 기적을 기도한다. 그 어딘가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따끈한 우동 한 그릇,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그래서 일본에 왔다고.

에콰도르에서 도둑을 만나 털린 후, 길고 긴 사막길을 달리다 끝내는 배고픔과 노숙에 눈물을 흘렸던 곳.
▲ 페루 로드 에콰도르에서 도둑을 만나 털린 후, 길고 긴 사막길을 달리다 끝내는 배고픔과 노숙에 눈물을 흘렸던 곳.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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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naver.com/miracle_mate
현재 위치 일본 삿포로



태그:#세계일주, #일본여행,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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