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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어 학교를 다니다보면 옛날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를 때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 뽑은 반장이 마음에 안든다 하면서 반장선거를 다시 하게 했었죠. 엄마가 자주 찾아오는 아이들은 모두가 남아 하는 청소시간에 우아하게 가방을 싸서 집으로 가기도 했고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별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던 때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나이인데 그때 봤던 세상은 회색빛이었죠. 그때 저는 제가 어쩌면 참 별볼일 없는 못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죠.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

드라마 <여왕의 교실>의 한 장면
 드라마 <여왕의 교실>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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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다못한 엄마는 선물을 보내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저를 쳐다봐줬고 발표를 시켜주었죠. 6학년때 선생님은 저를 싫어했어요. 수학여행 참가신청서에 아빠는 교통사고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고, 선생님은 친구들이 있는 앞에서 "그렇게 못믿겠다면 넌 수학여행을 가지 마라"라고 말했었죠. 그리고 나서 선생님은 사사건건 친구들 앞에서 저를 나무라거나 무안을 주거나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죠. 그러면서 저는 다짐을 했습니다.

'절대 초등학교 교사는 되지 않겠다.'

고등학교때는 운동장조회때 교장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교사들을 대놓고 타박을 했었죠. 예쁘고 젊은 여자 선생님은 다시 태어나면 교사는 하지 않겠다는 푸념을 수업 시간에 늘어 놓기도 했어요. 그 선생님 머리모양과 옷은 늘 교장선생님 입에 오르내리며 나쁜 예로 우리에게 설명되었거든요.

그 교장선생님은 늘 기다란 막대기를 한 손에 쥐고 다니며 우리 머리카락을 툭툭 치거나 교복 가슴팍에 삐딱하게 달려있는 학교 배지를 툭툭 치며 잔소리를 해댔죠. 조회때 우리가 환호성을 지르거나 웃으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그 누런 이를 드러내놓고 어디서 소리내어 웃어?"라고 하며 호통을 쳤죠. 제가 학교에서 만났던 어른 가운데 제일 밥맛 떨어지는 인간이었어요. 학교에서는 교사도 학생도 다 행복해보이지 않았어요. 교장 선생님만 유일하게 화내며 명령할 권리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고3 담임 선생님이 교대를 가라고 했을때 전 말했죠.

"그게 뭐하는 대학인데요? 어디에 있는데요?"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가는 대학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전 세차게 고개를 저었죠. "싫어요!"

"선생님, 성공했어요"

그랬던 제가 이제 경력 만10년차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일수록 제가 다시 떠올려 되새기는 기억은 위에 언급한 위축되어 있거나 혼란스럽거나 힘들었던 순간에 따뜻하게 날 어루만져주었던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배변봉투를 집에서 해오지 못하자, 선생님은 결국 배변봉투와 젓가락을 쥐어주며 다시 해보라고 하셨죠. 전 성공했고 복도를 달려 교실 뒷문을 벌컥 열며 배변봉투를 흔들면서 "선생님. 성공했어요"라고 소리쳤고 수업을 하고 있던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축하한다"하셨죠.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으로부터 제가 온전하게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마 나도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때였어요.

아빠가 자동차 고치는 일을 하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린적이 있는데 자기소개서 학부모 직업란에 아빠는 '회사원'이라고 적어 보내셨어요. 선생님께서 조용히 다시 물어보셨고 난 우물쭈물 자동차 고치시는 일을 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아빠가 기술자구나.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계시네."

아빠가 하는 일이 어쩌면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는 선생님 말씀 한마디로 기분이 편안해졌죠. 중학교 2학년때 학교 뒷산에 물안개가 아련히 끼어있는 날. 복도를 지나가던 저를 손짓으로 불러 세워 어깨동무를 하시며 "저 물안개 좀 보렴. 예쁘지?"했던 선생님도 떠오르고, 중학교 3학년 엄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을때 장례식장에서 넋 놓고 앉아있던 저를 아무말 없이 감싸 안아주시면서 함께 울어주셨던 선생님도 떠오릅니다. 고등학교때 여름이었는데 주말에 학교 도서관이 문을 안열어 교실에서 문 열어 놓고 공부하다가 문 닫는 것을 깜빡하고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월요일 운동장 조회때 교장 선생님은 문단속도 안하고 가는 반이 있다며 호통을 치셨죠.

조회가 끝나자마자 저는 선생님을 정신없이 찾았고 교장실에서 나오는 선생님과 마주쳤죠. 선생님께 제 잘못이라며 용서를 빌었고 선생님은 그냥 웃으며 "괜찮다. 괜찮어. 신경쓰지 마라"하며 웃어주셨죠.

이제 학생이 아닌 교사로서 저는 학교를 다닙니다. 하루 하루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에 부딪힙니다. 학생들이 중앙계단을 쓰지 못하게 합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먼길을 돌아 교실로 와야합니다. 괜찮은 교사인지 안괜찮은 교사인지 동료교사에게 학부모에게 점수로 평가받으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익명으로 클릭해서 누군가에게 점수를 줍니다. 그럼 그 점수가 곧 내가 됩니다.

전국단위 일제고사로 인해 아이들은 문제집을 죽어라 풀어야 하고 교사는 죽어라 공부를시킵니다. 교실에서 교사도 아이들도 웃음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기준으로 우리를 평가해서 누구는 S등급 누구는 B등급. S등급 받는 선생님은 왠지 미안한 마음에 내가 S등급 소고기 한번 살게 하며 우스게 소리하던 것도 이젠 옛말 입니다. 하긴 지금은 소고기 한 번 사는걸로 만회 할 수 없을 만큼 받는 돈 차이가 너무 커져버렸네요. 출판사에서는 친일파를 옹호하는 내용으로 역사교과서를 버젓이 만들어내고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대선 국정원 개입 문제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단지 외칠 뿐입니다. 성과와 실적! 그것을 위해 뛰어라. 그렇지 않으면 넌 게으르고 무능한 교사다! 그리고 전교조! 너희들은 안돼.

등급과 성적으로 평가 받는 교사와 아이들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10월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전교조 조합원과 시민들이 전교조 탄압 박근혜 정권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전교조 탄압 박근혜 정권 규탄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10월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전교조 조합원과 시민들이 전교조 탄압 박근혜 정권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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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에서 자기몸 하나 지키기 버거워 하루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돌아보면 아름다운 순간들이 보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 적인양 하루도 싸우거나 소리지르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는 아이를 매일같이 남겨서 얘기 들어주고 보듬고 안아주며 교사 역시 느끼는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선생님을 봅니다. 그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도 그 아이가 무서워. 하지만 어떻게하니. 애가 딱해서. 나라도 안아줘야지."

몰아치는 업무에 꼬장꼬장한 교장 교감 때문에 정신 없이 컴퓨터에 코박고 일하고 있는데 똑똑 소리가 납니다. 복도 창문 너머로 따뜻한 차 한 잔 내밀어 주는 동료 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눈빛으로 힘내라고 어여 일하라고 하며 차만 건네 주시고 가십니다.

동료교사가 공개수업을 합니다. 수학 수업인데 교사가 설명하는 것을 어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위해 좀 더 쉽게 보충설명을 합니다. 지도안에는 없었던 계획이었고 결국 수업을 시간 안에 다 못마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생님이 그동안 수학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왔고, 그 아이들을 웃게 했는지 잘 알고 있기에 함께 웃으며 선생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교사들은 흔히들 말합니다.

"나는 그냥 회비(조합비)만 내지 뭐. 열심히 하는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그러면서 앞장서서 역할을 맡거나 때가 되면 집회나 행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미안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 하루를 아이들 성장을 위해 교사로서 행복한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선생님들이 있어 전교조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전교조를 결국에 법외노조화 시켰지만, 그래도 그 협박이 무섭지 않았던 건 현실이 빡빡하고 힘겹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전교조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교조 조합원입니다.


태그:#전교조, #법외노조, #참교육,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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