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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는이야기 다시 읽기(사이다)'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들이 최근 게재된 '사는이야기'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특산품인 사는이야기의 매력을 알려드리고, 사는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30일을 앞두고 마지막 고3 전국학력평가가 시행된 10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에서 학생들이 국어시험을 보고 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30일을 앞두고 마지막 고3 전국학력평가가 시행된 10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에서 학생들이 국어시험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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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입니다. 단 두 글자만으로 이렇게 긴장감을 던질 수 있는 낱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떨리는 날의 기억,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틀림없이 남게 마련입니다. 준비를 꼼꼼히 잘 하고 시험장에 가더라도 긴장 때문에 마음이 초조해지고 당황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물며 수험생의 필수품(?)인 시계를 놓고 갔다면! 수험생의 머릿속은 '멘붕(멘털 붕괴)'에 빠지고도 남지 않을까요?

전소현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수능날 손목시계 빌려준 낯선 여학생을 찾습니다"는 바로 그렇게 멘붕에 빠진 수능 날 아침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고3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역대 가장 불쌍한 수험생"이라 자평할 만큼 불행한 시간을 보낸 전소현 시민기자. 수능 날 아침에도 시계를 챙겨가지 않는 사건을 겪으며 절망을 경험하지만, 그 사건은 1년쯤 뒤 깜짝 놀랄 만한 인연으로 이어집니다.

글쓴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린 해에 고3 수험생이었습니다. 4강 신화를 이루며 여름 한철 온 국민을 광장으로, 텔레비전 앞으로 모은 그때, 글쓴이는 텔레비전 앞에도 가지 못하고 "다만 주변이 시끄러워지면 문을 빼꼼 열고 '골 넣었어?' 한마디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글쓴이의 불행은 계속됩니다. 1학기 수시모집에서 낙방. 자신만만했던 2학기 수시모집에서 또 낙방. 글쓴이는 "모든 친구들은 명성여고로 시험을 보러 갔는데 유독 나만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한양여고라는 엄청나게 긴 이름의 학교로 시험을 보러" 가면서 "이미 재수를 결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글쓴이는 시험장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누가 보아도 수험생 꼴로 지하철을 탔는데도 그 누구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는" 현실에 또 좌절하고, "학교 교문을 들어섰을 때, 동아리 후배 하나 응원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시 좌절합니다. 하지만 좌절의 '끝판왕'이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죠. 교실에 들어섰을 때, 자신만 시계를 안 챙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글쓴이!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답니다.

교무실로 달려가 선생님들한테 시계를 빌리려 했지만 실패하고, 글쓴이는 무작정 교문 밖으로 뛰어나가, 선배들을 응원 온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사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구세주가 있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다른 학교 후배가 "주저없이 시계를 풀어주고 (줄임) 나에게 초콜릿까지 주며 시험 잘 보시라고 했다"는 겁니다. 덕분에 시험을 잘 보고 대학에 진학한 글쓴이, 그리고 세월이 흘러 대학교 2학년 봄이 됐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있을까요? 연극 동아리 새내기를 맞이하는 자리에서 "'저 친구 참 위 아래 안 맞게 입고 왔네' 하며 쳐다본 한 후배의 얼굴에 2002년 11월 수능 날의 손목시계 주인 얼굴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수능 날 아침 시계를 빌려주면서 글쓴이의 전화번호를 받아간 그 후배는 그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년 하고도 4개월 뒤, 같은 대학 같은 동아리에서 기적처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 커... 속도 '강약' 조절 안 된 건 아쉬워

전소현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수능날 손목시계 빌려준 낯선 여학생을 찾습니다">
 전소현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수능날 손목시계 빌려준 낯선 여학생을 찾습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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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손목시계는 주인을 다시 찾았다. 대학생이 되어 좋은 새 손목시계를 선물받았다고 하며 다른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그녀에게 더 이상 그날의 손목시계는 필요치 않았지만 그 손목시계는 인연의 끈이 되어 그녀를 나의 가장 좋은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 인조가죽에 자주 끼던 구멍이 주욱 늘어나 있는 낡디 낡은 시계였지만 모르는 수험생에게 주저 없이 그것을 풀어주었던 그녀의 마음은 지금도 감사히 내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정말 너무너무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하고 후배에게 고마움을 직접 전하는 것으로 글은 마무리됩니다. 낯선 이에게 뜻밖의 호의를 겪고 그것을 고맙게 기억하고 있던 글쓴이. 그리고 정말 놀라운 인연으로 다시 만나 '절친'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 이야기 자체가 워낙 흥미로워서 별다른 장치나 기술적인 구성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느껴집니다.

① 수시모집 합격 실패와 사소한 불행의 연속 → ② 시계 없이 시험장에 갔다가 구세주를 만난 사건 → ③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거둬 대학에 진학하게 된 이야기 → ④ 놀라운 인연으로 후배를 다시 만나게 된 사건. 글은 이렇게 크게 네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핵심이 되는 두 가지 사건과 그 사건에 앞에 일어난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는데요,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이 모두 재미있어서 막히지 않고 잘 읽힙니다. A4용지 두 쪽 정도의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는이야기의 힘은 이야기에 있습니다. 이야기에 재미가 있으면 굳이 구성을 뒤틀거나 문장을 꾸며댈 필요가 없죠. 부실한 이야기를 가지고 억지로 글을 쓰려고 하면 불필요하게 이야기를 잡아 늘이게 되고 군더더기들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독자를 지루하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전소현 시민기자는 대체로 이야기를 빨리 빨리 진행시키면서 글이 늘어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야기의 속도를 대체적으로 빠르게 유지한 것은 참 좋지만, 글 속에서 속도를 늦췄다 빠르게 했다 하는 '조절'이 보이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습니다. 핵심 장면에서는 조금 더 상세하게 장면을 그려주는 것도 좋거든요. 핵심 장면은 위에서 붙인 번호로 말하자면 ②번과 ④번 이야기죠. 글의 첫머리에 나오는 2002년 월드컵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긴 느낌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①번과 ③번 이야기는 속도를 좀 빠르게 해서 지나가고 ②번과 ④번 이야기는 장면이나 대화를 상세하게 묘사해 집중시키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덧붙이자면 군데군데 '자기만 아는 이야기'가 '자기만 알도록' 표현된 것이 있어 독자를 살짝 불편하게 합니다. "태극전사들이 그라운드에 엎드려 미끄러지는 순간"이나 "누가 보아도 수험생 꼴로 지하철을 탔는데도" 같은 표현이 그렇죠. 독자들은 태극전사들이 왜 그라운드에 엎드려 미끄러졌는지, '누가 보아도 수험생 꼴'은 대체 어떤 꼴인지 잘 모르거든요. 경기에서 이긴 뒤에 한 '승리 세리머니'였다는 것을 말해주거나, 수험생의 꼴은 어떤지 간단하게라도 묘사를 해주는 것이 좋았겠다 싶습니다.

수능 날 일어난 황당한 사건이 기막힌 인연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 전소현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수능날 손목시계 빌려준 낯선 여학생을 찾습니다"는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힘을 잘 느끼게 해준 글입니다. 7일 수능시험을 보는 전국의 60만 수험생들에게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생길지 궁금하네요. 그들에게도 전소현 시민기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훈훈한 결말만이 찾아오기를 바라봅니다.

[요점 정리]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잔기술이 필요없다!


태그:#사는이야기, #사는이야기다시읽기, #생활글, #생활글비평,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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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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