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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에는 관심이 기본.여행자와 현지 사람들이 함께 부대낄 수 있는 좋은 공간.
▲ 버스 안 이해에는 관심이 기본.여행자와 현지 사람들이 함께 부대낄 수 있는 좋은 공간.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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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성큼성큼 종단하다 보면 비슷한 여정을 가진 여행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동수단에서는 더 그렇다. 버스 안에서 전에 봤던 사람을 다시 만난다든가 기차에서 낯익은 얼굴을 본다든가 하는 것은 대부분 루트가 겹치는 여행자들이다.

발리 섬을 가기 위해 버스로 달리는 중이었다. 보통 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뭍에서 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려야 할 것으로 보이는 버스 안에는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 꽤 보였다. 아마도 같은 장소를 공유했던 여행자들이리라.

버스의 좌석의 반 정도를 차지한 군인 승객들 그리고 꽤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 좌석에 사람은 다 찼는데 버스는 또 정차한다. 그리고 버스에 오른 네덜란드 남성, 바스는 심경이 꽤 불편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버스표를 살 때는 결코 예매한 좌석이 통로에 끼듯 급조된 의자에 앉아가야 한다는 것 몰랐을 터. 등받이 없는 둥그런 플라스틱 의자 위에 끼듯 걸터앉은 그는 당혹스러워 보였다. 통로에 끼어 앉은 자리가 내 옆이라, 그가 조금 진정이 되고 난 뒤 말을 텄다.

"이게 말이 돼? 난 좌석 있는 표를 예매했는데…. 이게 그 좌석이라니…."

"남자 친구 있냐?"는 질문... 어떻게 대응했을까

정류장에서든 공항에서든, 오랫동안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독서가 낯설지 않은 이름.
▲ 책 읽는 여행자 정류장에서든 공항에서든, 오랫동안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독서가 낯설지 않은 이름.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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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만을 토로하며 멋적게 웃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주위에 앉아있던 인도네시아 군인이 또 내게 말을 걸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타기 전부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던 그. 안타깝게도 이쪽은 인도네시아어가 되지 않고, 그쪽은 영어가 되지 않는다.

"보이 프렌드?"

옆 좌석에 앉은 동료군인이 영어를 조금 할줄 아는 듯, 이 남자는 끊임없이 그에게 단어를 물어보고 내게 질문을 던진다. 몇 번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남자친구 있냐는 물음이었다.

"남자 친구? 응! 물론 있지. 남편이 있어."

옆 남자가 듣고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거는 군인에게 설명해준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굳이 듣지 않아도 남편이 있는 여성이 어찌 이리 여행을 하고 다니느냐는 놀라움을 얼굴로 표현하는 것 같다.

차와 오토바이로 혼잡한 거리를 각 언어로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요하고 있다.
"보행자는 여기 교차"
▲ 거리 차와 오토바이로 혼잡한 거리를 각 언어로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요하고 있다. "보행자는 여기 교차"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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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내 말을 알아들은 남자의 반응. 짧지만 여운이 길다. 그리고는 연달아 사람들의 질문이 쇄도한다. 그들은 남편도 있는 여자가 어떻게 혼자 여행을 할 수 있는지 너무나 궁금해 했다.

옆에 앉은 바스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현지 남자가 끊임없이 말을 거는 걸 보는 게 꽤 흥미로운 듯 '통로의 좌석'으로 인한 짜증이 잠시 사라진 듯하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던진다.

"오, 네가 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어."

침묵하던 남자가 잠시 후,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민다.

"와이프, 와이프!"

와이프라며 보여준 그 사진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풀 메이크업과 프로필 사진과 같은 분위기로 보아 연예인 사진 같다.

"정말? 이 사람이 와이프야? 정말 아름답네. 당신은 행운아야."
"나도 사진 보여줄까?" 

그 남자의 옆에 앉은 영어를 할 줄 아는 군인이 잠깐 창 밖에 시선을 두고 있다. "포토? 포토?"라며 사진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루한 버스 안,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한 순간에 '연예인 남편'을 만들어냈다. 가뜩이나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있는 배우 송승헌의 사진이다.

"오…!" 

남자는 꽤 인상이 깊은 듯하다. 그리고 그 반응은 연신 이어지는 질문보다는 침묵을 택하는 걸로 대신한다.

각종 예배나 의식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흰두교의 장애를 제거하는 신 '가네샤'
▲ 가네샤 각종 예배나 의식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흰두교의 장애를 제거하는 신 '가네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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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지만 외국인임이 분명한 내게 현지의 사람들은 때로는 가열찬 호기심을, 때로는 호감을 보인다. 물론 이 남자처럼 끊임 없이 궁금증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남편은 왜 같이 안 왔느냐' '애는 있느냐' 등의 질문을 잇기도 하지만 이들의 호감은 늘 좋은 영향을 준다.

버스 안의 지루한 10시간을 한결 단축시키는 체감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인 '관심'. 내가 이들을 보면서 그곳을, 삶을 느끼는 만큼 이들도 자신의 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을 보고 새로운 것을 느끼고 생각한다. 세상은 홀로 고립돼 살기는 어렵다. 그것이 주위에 무관심하면 안 되는 이유다.

고요한 바닷가 마을에서 만난 '놀라움'

하나 둘 씩 켜지는 불빛이 밤바다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피로도 잊는다.
▲ 선착장 하나 둘 씩 켜지는 불빛이 밤바다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피로도 잊는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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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막혀 10시간이나 걸린 선착장까지의 여정은 고됐다. 하나둘씩 켜지는 불빛들이 바닷가 마을의 밤을 장식하고 있었다. 고됐지만 행복하다. 바닷가 마을의 고요함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소년들이었다.

선착장에서 바다로 다이빙 하던 아이들의 모습 때문이라면 좋았겠지만, 눈을 의심하게 한 것은 너무나 즐겁고 편안해 보이던 아이들의 '흡연' 모습이었다. 고작해야 10~11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담배 한 개피씩 피우고 있었다. 마치 담배 맛을 아는 듯 말이다. 다이빙 직전에 흡연 모습이 어찌나 놀랍던지! 나중에 현지 친구에게 물으니, "원래 그렇다"며 "나는 13~14세 때부터 시작했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인구의 90% 이상이 흰두교인 발리 섬.
▲ 발리임을 느낄 수 있는 것 인구의 90% 이상이 흰두교인 발리 섬.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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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당연스럽게 여겨지면 안 될 것 같은데, 현지인들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담배를 문 채, 친구를 보며 깔깔거리고 웃는 소년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내가 이상한 건지, 그들이 너무한 것인지 무척 헷갈렸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2년 4월부터 2013년 4월에 걸친 2회의 인도네시아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태그:#바뉴왕이, #인도네시아 종단, #발리 섬 육로이동, #세계여행, #배 타고 발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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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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