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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지난 27일 청와대 녹지원에서의 '문화융성의 우리 맛, 우리 멋_ 아리랑' 공연 관람을 마치고 춘추관 앞으로 나오니 귀가를 도와줄, 청와대에서 준비한 차량이 있었습니다. 함께 한 지인과 저는 그 버스를 타는 대신 걷기로 했습니다. 걷기 좋은 고즈넉한 삼청동길을 바로 발 밑에 두고 차를 탈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삼청로로 이어진 청와대로
 삼청로로 이어진 청와대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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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박이인 지인의 어릴적 집은 현재 세종로의 안정행정부 행정자료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60여년 전 경복궁 일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분입니다. 어릴 적에도 호기심이 많아 주변 동네의 골목을 낱낱이 훑고 다녔으니까요.

당주동, 도렴동, 사직동, 적선동, 내수동, 내자동, 통의동, 체부동, 창성동, 통인동, 효자동 등 경복궁의 서쪽은 물론, 삼청동, 팔판동, 화동, 소격동, 사간동, 송현동, 중학동, 수송동 등 경복궁의 동쪽도 선생님의 영역이었습니다. 삼청동에도 수십 년 동안 지인으로 지낸 분이 여럿 있습니다.

청와대로의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와 팔판동 팔판길을 가로질러 곧 삼청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삼청로 길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주목받는 특색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낡은 건물이 완전히 새롭게 개조되고 오래된 한옥들은 외양만 간직한 채 개성적인 비즈니스 건물로 거듭났습니다.

갤러리와 뮤지엄, 분위기 있는 카페와 음식점들, 옷가게와 액세서리숍 등은 곧 감각적인 젊은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데이트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광화문에서 걸어서도 10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곳에 이런 멋진 거리가 있다는 것은 도시민들에게 축복인 셈이지요.

삼청로는 최근 한옥과 낡은 양옥건물들이 개성있게 개조되어 비즈니스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특색있는 숍들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삼청로는 최근 한옥과 낡은 양옥건물들이 개성있게 개조되어 비즈니스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특색있는 숍들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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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급격한 거리의 변화들에 감탄하면서 오후 8시의 삼청로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저 한옥은 제 지인이 십수 년 전에 3억8천만 원에 산 집이에요. 얼마 전에 그 주인을 만났는데 38억 원을 준다고 했지만 안 판다고 했대요. 월세만 750만 원이라네요. 38평이라는데…."

도로변 작은 한옥은 고급 음식점으로 개조되어 있었습니다. 

"대관절 얼마를 팔아서 그 월세를 감당할 수 있대요?"

도대체 가늠이 안 되는 수치였습니다.

- 그렇게 많은 월세를 받는 주인은 대체 어떻게 사시나요? 매달 여행만 다녀도 되겠네요?
"그렇지 못해요. 돈 있는 사람이 도리어 여행을 못해요. 그 분은 여전히 좁은 집에서 돈을 많이 쓴다고 부인을 타박하면서 살고 있답니다." 

- 혹시 이태 전에 만났던 그 어른 아니십니까? 밥을 사준다고 국밥집에 가서 세 사람에 국밥 2그릇만 시킨?
"맞아요. 돈 많다는 자랑이나 하지 말든지……."

멋진 길과 아이디어들이 빛나는 예쁜 숍들에 감탄하던 대화는 곧 세속적인 돈 얘기로 흘렀습니다. 어쩔 수 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본능적 끌림이리라. 푸른 기와집의 우람한 규모도 보고, 인기 상가로 변화된 곳의 돈 버는 얘기에 잠시 정신이 홀렸던 우리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장기가 돌았습니다.

"바로 위에 유명한 수제비집이 있어요. 한 번 드셔보실래요?" 

지인께서 10여 년 전에 들렸었다는 곳으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 집 앞 인도에는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맛있는 곳이라면 이런 수고쯤은 감수해야 마땅한 자세로 우리도 줄을 섰습니다.

밤 8시의 늦은 시간에도 수제비집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만들어져있었습니다.
 밤 8시의 늦은 시간에도 수제비집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만들어져있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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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렇게 줄을 서는 곳이라면 집 아래에 벤치라도 두어 개 가져다 두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라도 앉을 수 있게 번호표라도 주지. 때로는 연로한 어르신들도 오실 텐데……."

차례를 기다리는 고객의 이런 마음은 저만이 아니었던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벽에 써 붙여두었습니다. 

"*** 수제비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가게는 번호표가 없습니다. 오신 순서대로 줄을 서 주시면 차례로 자리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번호표가 없다는 공지가 붉은 글씨로 붙어있습니다. 줄을 선 그집의 고객에 대해서 배려하는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번호표가 없다는 공지가 붉은 글씨로 붙어있습니다. 줄을 선 그집의 고객에 대해서 배려하는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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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가 없다는 부분은 빨간색으로 강조한 것을 보아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는 것으로 짐작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차례가 되어 문이 열리고 아저씨께서 들어오라는 신호를 주셨습니다. 내부는 사람들로 그득했습니다. 우리는 그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카운터 옆의 입구자리였고 주방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주문한 수제비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손님을 통제하고 있는 그 아저씨와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아주머님을 마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저씨는 마치 궁궐문을 지키는 수문장 같았습니다. 식사 마치기를 살피고 있다가 누군가가 일어서면 그 수만큼 바깥 손님을 잘라서 들여보냈습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그 권력을 행사하는데 익숙해져있었습니다.

부쩍 쌀쌀해진 삼청동의 저녁 공기 탓에 그 출입문안과 밖의 온도 차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손님은 냉기 속에, 그 아저씨는 실내에서 문을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줄을 선 잠재적인 이 집의 고객에게는 어떤 배려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유명 수제비집에서 그들은 단지 통제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문 입구에서 입장을 통제하고 계신 아저씨.
 문 입구에서 입장을 통제하고 계신 아저씨.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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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아주머님의 관심도 누군가가 일어서주기를 기다리는 초조한 표정으로 일관했습니다. 주방에는 많은 수의 아주머니들이 각각의 일로 분주했습니다. 바로 앞의 카운터 아주머님께 물었습니다.

- 직원이 몇 분이나 되세요?
"……."

저는 바빠서 질문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고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 함께 일하시는 식구 분들이 몇이나 되세요?
"왜 그러세요?"

그 아주머니는 대답대신 반문했습니다. 제가 직원 수를 물은 것은 이 이름난 수제비집 하나가 이렇게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존경받을 미덕인가? 하지만 그 아주머님에게는 세무공무원의 수상쩍은 질문으로 여겨졌나 봅니다.

항아리에 담겨 나온 2인분의 수제비
 항아리에 담겨 나온 2인분의 수제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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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 이 가게의 주인이 하나도 안 부럽지요?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세요. 단 한 사람도 얼굴에 웃음기가 없어요. 문을 지키는 아저씨와 돈을 받는 아주머니도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보일 거예요. 10년 전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저는 오늘이 이집을 출입한 마지막 날이에요. 이 주인보다 돈을 많이 벌진 못하더라도 제가 사람이 아닌, 돈으로 취급되는 것은 싫거든요." 

그 식당의 벽에는 TV 맛집 프로그램에 방영된 캡처 사진들이 액자로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삼청동'이라는 지명을 설명하는 동판이 붙어있었습니다.

이 집이 소개된 TV화면이 캡쳐된 사진들이 걸린 벽
 이 집이 소개된 TV화면이 캡쳐된 사진들이 걸린 벽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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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길(三淸洞)은 산이 맑고(山淸) 물도 맑으며(水淸) 그래서 사람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人淸). 가까이 있을 때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떠나기가 싫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서 뛰어가 보고 싶은 곳이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이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삼청이라고 불린다는 안내글이 담긴 동판. 하지만 오늘, 이 내용은 일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이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삼청이라고 불린다는 안내글이 담긴 동판. 하지만 오늘, 이 내용은 일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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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판의 내용을 바꾸던지 아니면 주인의 손님 맞는 태도를 바꾸든지, 둘 중의 하나는 바뀌어져야 사실에 부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청와대 나들이가 있었던 같은 날, 즉 삼청동에서 수제비를 먹은 날 아침, 저는 백호아빠를 만났습니다. 백호아빠는 가진 모든 것을 회사 동료들에게 밀린 월급으로 주고진돗개 한 마리와 무전여행을 나왔던 젊은 사업가(관련기사 : 파산한 사업가가 자살 대신 택한 무전여행)였습니다. 

그는 길 위에서 100여 일 동안 갖은 고행을 감내했습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희생자로 길을 떠나서 다시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던 진돗개가 사람의 폭행으로 부상당하는 일을 포함한…….  

그는 지금 한 기업인의 배려로 길 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그 분의 구상을 도우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관련기사 : 길가에서 만난 인연으로 배풀었더니...)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금전적으로는 가진 것이 전혀 없는 청년입니다. 

그가 여행 중에 사람에 의해 개가 부상당했다는 기막힌 사실에 아연해진 저의 한 이웃이 개 치료비에 해당하는 금일봉을 제게 기탁했습니다.

사람의 공격으로 부상당한 진돗개의 치료비를 대신 감당하고 싶다며 봉투를 전한 이웃의 따뜻한 온정
 사람의 공격으로 부상당한 진돗개의 치료비를 대신 감당하고 싶다며 봉투를 전한 이웃의 따뜻한 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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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과 백호에게 행한 모든 가해자의 입장을 대신 사과하는 마음으로 온정을 그 청년에게 전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날 제가 봉투를 받게 된 전후 사정을 말하고 그 봉투를 청년에게 전했습니다. 청년은 그 봉투를 받아도 될지에 대해 한참 동안 망설였습니다. 

"이 돈은 자네를 알지 못하는, 단지 자네와 백호의 사연만을 아는 분이 사람이 가해한 것에 대한 백호의 치료비로 내게 맡긴 것일세. 봉투 안에 그 분의 따뜻한 편지와 성경구절도 함께 있으니 이 봉투는 자네가 세상의 인심에 의구심의 들 때마다 그리고 자네 앞에 넘어야할 장애가 있을 때 마다 용기를 주는 부적으로 여기게. 그것이 그 분의 뜻일 거야. 그래서 자네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안정이 된 뒤, 언젠가 그 분을 직적 찾아뵙고 그 고마운 마음을 직접 전하기를 원하면 그 때 자네를 그 분께 안내하지. 그러니 지금은 이 봉투를 거절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 자네가 안정을 되찾고 세상을 긍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네."

저의 설득으로 그 청년은 어쩔 수 없이 그 봉투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제가 삼청동의 수제비집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저의 아내는 그 청년과 저녁식사를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저녁식사를 함께 할 때 그 청년이 아내에게 했던 말을 제게 전했습니다.

"오늘 제가 봉투를 받았습니다. 30만 원이라는 큰돈입니다. 하지만 현재 저는 이렇게 큰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신 안재영 사장님께서 제게 합당한 월급을 책정해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주신 분의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이 돈을 어찌해야할지 지금도 고민입니다. 저는 지금 안 사장님의 뜻에 따라 한 고등학교에 제품을 공급하고 그 마진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프로모션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생각은 제가 받은 그 봉투의 돈을 그 장학금에 보탰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청년이야말로 지금 돈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현재, 자기 소유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기때문이기도하지만 그것보다도 앞으로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마중물이 될 돈을 모아야하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저는 지금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루 동안 돈이라는 무생물에 영혼을 저당한 상황과 그것으로부터 완전하게 영혼을 되찾은 상황의 두 대척점에 있는 장면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두 상황의 목도는 제게 스쿠르지 할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 청년뿐만 아니라 삼청동의 수제비집 광경이 제게 얼마나 고마운지. 제가 스쿠르지 할아버지의 연세가 되기 전에 스쿠르지 할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셨으니…….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삼청동,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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