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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터는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변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시간의 흐름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내레이터는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변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시간의 흐름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 코르코르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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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명언이 말하고 있듯이, 시간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다. 아직도 방학 첫날이면 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동그라미 모양의 시간계획표를 만들어 벽에 걸어두며, 수험생들은 시간 단위로 칸이 구분돼 있는 다이어리에 할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어른이 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오늘의 일정 목록을 띄워놓고 수시로 체크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낭비는커녕 아끼고 쪼개가며 시간을 사용하고 있건만,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에서는 시간이 없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왜일까?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창작뮤지컬 <시간의 사용>은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서른일곱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4명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넌지시 일러두고 있다. '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우연한 기회에 영원한 삶을 얻게 된 길잡이 '내레이터'와 함께 말이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창작뮤지컬 <시간의 사용>은 서른일곱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4명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담고 있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창작뮤지컬 <시간의 사용>은 서른일곱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4명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담고 있다.
ⓒ 코르코르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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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에 혜성처럼 등단했으나 20여 년간 변변한 작품을 내지 못한 채 명색이 무늬만 작가인 고병욱, 전대협 부회장 출신의 노동운동가로 7년째 고시공부중인 김준기, 인생의 목표가 오직 자유와 여행에서 사랑으로 우회한 후 연이은 실연의 상처로 심장이 조각나버린 임수지, 타고난 감각으로 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나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세상의 벽에 부딪힌 아티스트 전청. 반짝거리던 20대의 모습과 달리 30대 후반에서 만난 그들의 모습은 작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극심한 초조함에 시달리면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개성과 삶의 의미를 한꺼번에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극중극인데다 등장인물이 한 명이 아닌 여럿인 탓에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는 바로 내레이터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변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시간의 흐름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무대 위에 놓인 4개의 프레임 역시 시간여행의 흥미로운 도구로 사용된다.
 무대 위에 놓인 4개의 프레임 역시 시간여행의 흥미로운 도구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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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놓인 4개의 프레임 역시 시간여행의 흥미로운 도구로 사용된다. 프레임들은 각각의 장면에서 어떤 순간을 포착해 사진 속 하나의 앵글이 되는가하면, 여러 개의 프레임을 합쳐 구조물로서 이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벽과 감옥, 갤러리, 비행기 등 개인의 삶이 통과하는 공간으로서의 활용이 그것이다.

세수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봤을 때, 매일 보던 얼굴임에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작품을 보고난 후의 느낌이 그랬다. 시간에 늘 쫓기듯 살고 있으나 정작 왜 바쁜지 모른다는 건, 어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채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많은 이들이 물리적으로 잃어버린 시간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놓치고 있는 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이를 잇고 있는 경험으로서의 시간이 아닐까. 내레이터의 대사가 오래도록 귓전에 맴돈다.

"이 순간 이 장소를 단단히 기억하라! 미래는 남김없이 이곳을 지나쳐 과거로 몸을 던지나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지선의 공연樂서, #문화공감, #시간의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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