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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설립 취소 대응 법률 지원단이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교조 설립 취소 대응 법률 지원단이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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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드느니 마느니 하는 뉴스가 한동안 들려왔다. 전교조 경기지부에서 거의 매일 문자가 왔다. 결국 우리 학교 전교조 분회장 선생님은 분회원 전체에게 쪽지를 보냈다.

"우리 다 같이 점심 먹으면서 얘기해 봐요."

이렇게 쓰고 보니 문득, 지금 내가 무슨 말는 하는지 이해 못 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최근 학생 한 명도 대학입시 면접에서 필요하다며 내게 몇 가지 물어보러 왔다가 이런 말을 했다.

"샘, 전교조 없어져요?"
"없어지긴 뭘 없어져. 법외노조가 됐을 뿐이야."
"그게 뭔데요?"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전교조 규약 중 해직자 가입을 허용한 조항을 개정하고, 아홉 명 해직자를 전교조에서 내보내지 않으면, 노동조합법 및 시행령에 의해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겠다고 통고했다. 전교조의 해직 교사 조합원 인정은 현행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법외노조라.... 이런 용어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았다.

인터넷 기사를 읽어보니 법외노조는 일종의 노동조합이기는 하지만 법 밖에 존재하는 노조, 즉 마치 노조인 양 만들어진 임의 단체라고 한다. 법외노조가 되면 법적으로 노동조합 지위를 박탈당하기 때문에, 현재 전교조가 갖고 있는 노조전임자 휴직, 단체교섭권 등이 폐지된다.

전교조 규약 개정, 쟁점은 이랬다

지난 10월 15일 법외노조 문제와 관련해 우리 학교 전교조 분회원 회의가 열렸다. 아홉 명의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현재의 전교조 규약을 바꿔 그분들을 내보내면, 전교조는 계속 법의 보호를 받는 노조로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규약 개정을 거부하면 전교조는 고용노동부가 통고한 대로 법외노조가 된다. 전교조 전국대의원대회는 규약 개정 여부를 조합원 총투표에 부치기로 결의했고, 그런 차원에서 우리 학교도 회의를 연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분회 회의에 들어가기 전 내 의견은 이랬다. '김수영 시인이 풀이 눕느니 어쩌니 하며 쓴 시처럼, 상황이 엄혹하니 풀처럼 납작 누웠다가, 상황이 풀리면 다시 일어나는 게 낫지 않을까? 우선 살아남아야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회의에서 나는 당분간 눕자고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회의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나도 규약 개정 반대에 표를 던졌다.

규약 개정에 찬성하는 의견은 이렇다.

'규약을 개정해 해직된 아홉 분을 조합원에서는 내보내더라도 전교조에서 다른 형태로 고용하면 된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 당장 사립학교 교사들이 전교조 조합원으로 지내는 게 힘들어지고, 노조전임자로 파견 나간 교사들도 복귀를 거부할 경우 해직될 것이다. 법외노조가 되면 많은 교사들이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 전교조를 떠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까?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법외노조가 되어도 당장은 공립학교 교사인 우리들에게 별일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립학교 선생님들은 잘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시간이 더 흐르면 공립학교 교사인 우리도 잘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지금도 전교조가 그다지 힘이 없는데, 법외노조가 되어 더 불리해지면 투쟁은 고사하고 생존이라도 가능할까?'

규약 개정에 반대하는 의견은 이렇다.

'조합원의 자격을 국가에서 법으로 규정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부러워하며 항상 모범으로 삼는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미국 같은 주요 국가들은 은퇴자, 해고자 등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한다. 때문에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아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다는 일은 악법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규제하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국가인권위원회, 세계교원노조에서도 관련법 수정을 권고하고 있다.

작년 대선 후보 토론에서도 드러났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전교조를 해로운 단체로 본다. 이번 규약 개정 요구는 전교조 탄압을 위한 꼬투리 잡기일 뿐 규약을 개정한다고 해서 전교조를 가만히 놓아둘 리 없다. 전교조가 규약을 개정한다면 같은 조항을 가지고 있는 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대학교병원노동조합,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등의 노조를 압박하는 사례로 이용될 것이다. 따라서 규약을 개정하면 정부의 부당한 탄압에 굴복했다는 부끄러운 과거만 만들 뿐이다. 명분과 실리, 그 어느 것도 얻지 못한다.'

나는 소심한 전교조 교사

이런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용감하지도 투쟁적이지도 않은 소심한 소시민이다. 수업 시간에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가르칠 때면, 항상 그 분들의 불굴의 투쟁 정신에 감동하고 존경하게 된다.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전교조 조합원과 시민들이 전교조 탄압 박근혜 정권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촛불' 든 전교조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전교조 조합원과 시민들이 전교조 탄압 박근혜 정권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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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처럼 지조와 절개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에서 무릎 꿇은 전력은 치명적이다. 한번 무릎 꿇으면 그 뒤로는 어떤 옳은 주장을 해도 '비겁한 자들의 헛소리'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니 전교조가 규약 개정을 거부하고 부당한 탄압에 맞서는 것은 옳은 선택이다. 하지만, 소심한 나는 앞으로 펼쳐질 탄압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지조를 지킬 수 있을까?

여러 선생님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규약을 개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조합원 총투표 전국 개표 결과 투표율 80.96%에 수용 거부 68.59%, 수용 28.09%로 나왔다. 일부 언론은 '전교조가 법외노조를 선택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선택이 아니다. 수용 거부 외에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 나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잡으러 왔을 때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 나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유태인에게 왔을 때 /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 이제는 나를 위해 저항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마틴 니묄러의 시다. 나치가 탄압을 시작했을 때 남의 아픔에 눈감았던 과거를 반성하고 후회하며 쓴 시라고 한다. 세계사 시간에 제2차 세계대전 부분을 가르치면 항상 학생들에게 이 시를 보여준다.

나치는 사회에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혐오받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타인 받는 부당한 대우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만약 많은 시민이 처음부터 문제제기를 했다면 독일과 세계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불의에 저항하거나 제어하지 못했기에 독일과 유럽에서 큰 비극이 일어났다.

정부가 전교조를 첫 번째 목표로 삼아 법외노조로 만든 건 나치의 전략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전교조가 제거되면 어떻게 될까? 더는 제거되는 집단은 없을까?

비판과 다른 생각의 공존... 결국 사회가 발전한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조금은 두렵다. <오마이뉴스>에 이런 기사를 쓰면 '찍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정도 글을 쓰면서 두려움을 갖는다면 과연 이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떤 의견을 갖든 두려워하지 않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올바른 민주주의 사회가 아닐까?

현대 세계의 모든 국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 나와 다른 생각을 존중한다. 그것이 잘못된 판단을 예방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전교조도 다양한 의견을 가진 한 사회 집단으로 인정되는 사회, 전교조를 살려달라고 호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지금 한국은 그런 사회인가, 아닌가.


태그:#전교조, #법외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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