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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칠봉이(유연석 분)가 재혼하는 자신의 어머니의 삐삐에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25일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칠봉이(유연석 분)가 재혼하는 자신의 어머니의 삐삐에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 CJ E&M


지난 25·26일 방송된 tvN <응답하라 1994>(아래 <응사>)를 관통하는 정서는 '슬픔과 그리움'이었다. 그 시작은 처음부터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를 내뿜던 칠봉이(유연석 분)의 예기치 못한 고백에서였다. 잠실로 가는 차 안에서 칠봉은 자신의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지금 어머니가 재혼하는 결혼식장을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칠봉의 얘기를 들은 나정의 아빠(성동일 분)와 엄마(이일화 분)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칠봉은 의외로 담담하다.

서울 지리를 잘 몰라 헤매던 나정의 아빠 때문에 결국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칠봉은 연신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는 나정의 엄마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어머니는 자신이 결혼식장에 와도 잘 모를 거라는 이야기, 재혼 소식도 얼마 전에 알았다는 이야기 등.

나정의 엄마는 그런 칠봉을 다그치고 어머니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넣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내 칠봉은 어머니의 삐삐 음성 메시지를 듣고 울컥한다. 칠봉의 어머니는 자신을 '준이 엄마'라고 소개하고 있던 것. 이후 이어지는 칠봉이의 메시지는 어머니의 삶을 인정하는 철든 아들의 모습인 동시에 하나뿐인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 아들의 모습이었다.

<응사>는 당시 생소했던 이혼 제도를 칠봉이란 인물을 통해 드러내면서 이에 대해 익숙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칠봉도 부모의 이혼을 자신이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듯 보이며 그 이야기를 미리 전해들은 사촌 빙그레도 태연하기만 하다. 또한 마산에서는 잘 들어 보지 못했던 이혼 이야기에 나정의 부모 역시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지 머뭇거리는 모습이다.

하숙집 철부지들은 오히려 호들갑이다. 이혼을 드라마에서만 봤지 현실에서는 처음 봤다며 서울 사람들은 역시 다르다고 치켜세운다. 칠봉은 이에 부끄러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는 기색이 없다. 그저 이들의 이야기에 신기해하며 묻는 질문에 담담히 대답한다. 그가 자신의 그늘을 극복하는 방식은 남들 앞에 당당히 꺼내 놓는 것. 칠봉의 의도이든 아니든 그는 담담히 자신의 그늘을 이야기했다.

반면 나정(고아라 분)은 칠봉과 다르다. 나정은 그늘을 그늘로 두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의 그늘을 남이 알아채는 것이 슬프고 두렵다.

나정에게 '그늘'은 '죽은 오빠의 빈자리'다. 어떤 거짓말도 용서된다는 만우절에 나정의 오빠는 세상을 떠났다. 정말 거짓말 같은 오빠의 죽음. 전날부터 침울해진 분위기는 엄마가 제대로 다듬지 못하는 콩나물에서 감지된다. 그런 엄마를 아빠가 추스르고, 쓰레기(정우 분)는 나정을 다독인다.

 26일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쓰레기(정우 분)가 나정(고아라 분)의 이마를 짚어주고 있다.

26일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쓰레기(정우 분)가 나정(고아라 분)의 이마를 짚어주고 있다. ⓒ CJ E&M


그날의 아픈 기억이 저릿저릿하게 다가오는 새벽. 아빠와 엄마는 마산으로 내려갔고, 나정은 하숙집 식구들의 아침밥을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는 이미 자신보다 먼저 안쳐진 밥솥이 김을 뿜고 있었다. 쓰레기의 배려다. 설거지를 하는 나정을 쓰레기가 끌어안는다. 이런저런 농담을 던져본다. 하지만 그날이 무슨 날인지 알기에. 서로는 평소처럼 티격태격하거나 웃지 못한다.

나정은 자신의 그늘을 가리기 위해 하루 종일 많은 일을 한다. 식사 준비는 물론이고 청소, 빨래 등 한 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는다. 몸을 힘들게 해서라도 그날의 아픈 기억을 꺼내보고 싶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오빠와 찍은 사진 한 장을 보고선 쉬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나정은 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슬픈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아니, 그들이 모른 척 넘어가주기를 바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쓰레기가 나정의 이마를 만져보고는 누워 쉬라며 자리를 펴준다. 물개인형을 그의 머리맡에 포근히 받쳐주고 나정이 슬픔을 충분히 쏟아내도록 자리를 피해준다.

칠봉과 나정 외에도 <응사>의 모든 인물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스스로의 그늘을 안고 살아간다. 첫 회에서 혹독한 방식으로 서울에 상경했던 삼천포(김성균 분)가 그랬고 4회에서는 고향에서 터진 사고 뉴스 하나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어머니께 계속 전화를 하던 해태(손준호 분)가 그랬다. 외톨이처럼 다른 친구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윤진(도희 분)에게도 남들이 범접하기 힘든 그늘이 존재하고, 늘 밝아 보이는 모습의 빙그레(바로 분)도 지난 주 방송분에서 학교 가기를 싫어하며 유난히 TV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서서히 자신의 그늘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을 통해 <응사>는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그늘이 있다'고.

<응사>의 1·2회가 인물 소개와 90년대 추억 고증에 집중했다면 3·4회부터는 나정을 중심으로 로맨스가 구축되기 시작했고, 다양한 정서를 담은 에피소드들이 등장했다. 누가 나정의 남편 김재준인지 힌트를 흘리는 것은 물론, 각 인물들이 도드라질 수 있는 포인트들을 제시해 다음 이야기의 복선도 설계해 놓았다.

<응사>는 마냥 재밌지도 마냥 슬프지도 않게 드라마의 흐름을 조절하며, 우리가 겪었던 혹은 들었던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추억팔이가 아닌 '희로애락'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누군가는 <응사>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물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응사>는 그보다 진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1994년에 사랑만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응사>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때의 우리처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94 고아라 정우 유연석 손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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