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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는 지난 2일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해 계속하고 있다. 사진은 밀양시 단장면 단장리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장비 적치장' 앞의 모습.
 한국전력공사는 지난 2일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해 계속하고 있다. 사진은 밀양시 단장면 단장리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장비 적치장' 앞의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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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가 주말에 어디를 간다고 해서 가을 단풍을 보러 가는 줄 알았더니 밀양에 간단다. 밀양의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할머니들이 너무 오랫동안 고생을 해서 농사도 제대로 못 지어 먹고 살기 힘들어 할머니들의 농사를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경상도 부산에서 태어나 20살까지 살았던 내게 밀양은, 아침이면 물이랑으로 내밀한 영혼의 느낌이 온 세상에 감도는 분위기를 주던, 그래서 자주 물이랑을 보러갔던 친숙한 곳이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련한 곳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밀양에는 현대시문학에 등단하자마자 20대의 나이에 하늘로 떠난 셋째 오빠가 돌아가신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향 경상도는 20살까지만 살았고 그 이후로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오빠의 무덤도 이젠 흔적이 없어져서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한 밀양이 작년부터 다시 내게 가슴 아련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맞선 산 위의 할머니들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부터다. 평생 땅바닥에 엎드려 흙을 만지며 이 땅의 사람들의 먹거리, 자기 자손들의 먹거리만 소박하게 만들어가던 할머니들이 하나씩 둘씩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도시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할머니들에게 참 미안해졌다. 작은 물길을 살려야 큰 물길도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데 언제부터인가 큰 물길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작은 물꼬를 틀어막는 것이 공공연연하게 이루어진다. 그 큰 물길이 진실로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지금 곳곳에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대부분 도시 사람들은 밀양의 진실을 잘 모른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진실을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난 밀양에 사는 사람도 아니고 밀양의 송전탑과 관련된 이해 당사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이 밀양에서 세워지는 송전탑의 전기는 밀양 사람들이 쓰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사는 모든 도시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친구가 밀양의 할머니들을 위해서 농사를 도우러 내려간다고 했을 때 나는 이번 주말에 어르신들을 인솔해서 무심천 특설무대에서 사회적 기업 페스티벌 공연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최근 태어나서 처음으로 100만 원 보너스를 받았다. 단체를 오랫동안 운영하면 급여가 없는 사업주가 되어서 20여 명의 활동가와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준 적이 있어도 나는 받은 적이 없었다. 비정규직으로 6년 일하다가 올해 처음 정규직이 돼 받은 첫 100만 원 보너스였다.

이 보너스로 10년 이상 쓰다 보니 고장이 나서 돌아가지 않고  멈춰 있는 냉장고를 새로 살까? 아니면 직장 생활하느라 너무 지쳐 있으니 동갑내기나 비슷한 또래의 직장 싱글녀 세 명과 함께 앙코르 왓트로 여행갈까? 아니면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병원 2군데와 한의원을 들려 목 뒤 머리에 침을 맞고 사혈을 빼내고 살아가는 나의 건강을 위해 투자할까 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송전탑 반대 때문에 오래 고생하는 할머니들의 농사를 대신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르신들을 방문한다고 친구가 말했을 때 친구가 함께 떠나는 그곳에 송금했다. 하늘에서 내린 첫 100만 원 보너스이니 땅의 눈물을 닦는 데 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딘가 기부하고 송금하고 이런 일은 알리지 않는 게 미덕이지만 가급적 나는 알리고 싶다. 기부도 하나의 문화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누는 문화는 촛불을 나눠서 붙이듯이 그렇게 릴레이처럼 해야 효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양에는 이러한 나누는 문화가 바이러스처럼 퍼져야 한다. 왜냐하면 밀양은 많이 외롭고 할머니들은 점점 더 지쳐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집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새싹보다 더 약하고 예쁜  6살 아이가 송전탑 밑에서 살아야 하고 어떤 집은 친정 엄마가, 시어머니가 법범자가 되는 게 밀양의 현실이기 때문에...

크지 않은 돈이지만 그 위력은 쏠쏠하다. 왜냐하면 친구처럼 몸을 가지고 그 곳에서 좋은 일을 하지 않고 내 삶의 터전인 이 곳에서 평소에 하던 문화와 접목된 복지 일을 하지만 마음이라도 밀양에 간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태그:#나누는 문화, #밀양할머니 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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